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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너의 발걸음을 조심하여라”(전도서 5:1-3)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7.17 00:27
▲ 우리가 직면하는 걱정의 이면에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Getty Image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외부의 상황에 따라 누리게 된다거나,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은 언제나 외부의 상황과 상관없이 나의 밖이 아닌 나의 안, 즉 내면에서 이루어지고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부분 드리는 기도의 출발점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상황이 우리 기도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데’ 그래서 기도를 시작한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기도의 출발점은 ‘두려움’입니다. 나의 지식과 경험적 한계라는 틀에서 이렇게 되지 않으면, 저렇게 되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삶이거나, 패배자의 삶이거나, 평안할 수 없는 삶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제가 몇 년간을 카톡 프로필 배경으로 삼고 바꾸지 않고 있는 한 책의 문장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이 문장은 제가 성도님들께 읽어드린 적이 있기도 합니다.

“너는 마음의 평화가 아닌 다른 것을 원하지만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_<기적수업>

사실은 우리가 구하고 누려야 할 것은 마음의 평화인데, 헛된 것을 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헛된 것을 구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구하고 있는지조차 생각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입니다.

정말 내가 구하려고 하는 것, 바로 잡으려고 하는 상황 등의 간구가 나와 타인, 또는 공동체에 정말 중요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고, 질문한 뒤에는 늘 ‘그렇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의 지식과 경험에 비추어 살려고 했던 ‘나 중심’에서 다시 꽉 쥐었던 손과 긴장했던 어깨를 풀고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서게 됩니다. 삶을 내가 생각하는 대로 휘두르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게 됩니다.

지금, 이 시간에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내가 그렇게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는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드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을 들려줍니다. 내가 중심이 되는 예배가 아닌,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예배를 드릴 방법을 알려줍니다. 첫째는, 발걸음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1 하나님의 집으로 갈 때에, 발걸음을 조심하여라.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제물이나 바치면 되는 줄 알지만, 그보다는 말씀을 들으러 갈 일이다.”

여기서 ‘발걸음’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의 삶, 삶의 방향성을 의미합니다. 잠언의 말씀입니다. “아이들아, 그들이 이렇게 말하더라도, 너는 그들과 함께 다니지 말고, 네 발을 그들이 가는 길에 들여놓지 말아라. 그들의 발은 악으로 치달으며, 피 흘리는 일을 서두르기 때문이다.”(1:15-16)

잠언에 기록된 다른 한 구절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발로 디딜 곳을 잘 살펴라. 네 모든 길이 안전할 것이다. 좌로든 우로든 빗나가지 말고, 악에서 네 발길을 끊어 버려라.”(4:26-27)

읽어드린 두 잠언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으로 나오기 전 내 삶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떠한지를 살펴야 합을 알게 됩니다. 삶은 불순종으로 가득하고,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나를 중심으로 살아왔으면서, 제물이나 바치며 자신의 의무를 다한 것처럼 굴 것이 아니라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말씀을 들으러 갈 일이다.’라고 권면합니다. 성도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의 목적, 이유,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삶을 위해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내 삶이 움직여야 합니다. 이 우선순위가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은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가서 6:7-8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 줄기를 채울 올리브 기름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내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이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너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사무엘상 15:22-23 “사무엘이 나무랐다. ‘주님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을 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버리셨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성도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까? 제물이 아니라 먼저 나의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제물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함부로 입을 열지 말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 앞에서 말을 꺼낼 때에, 함부로 입을 열지 말아라. 마음을 조급하게 가져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 위에 있으니, 말을 많이 하지 않도록 하여라.”

현대성서주석 ‘전도서’ 편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물어야 하는 이유를 과격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의에서 저지르는 말의 실수는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킬 뿐이다(5:6). 인간이 자신의 생각과 호소를 하나님께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것은 그를 업신여기는 일과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단지 호소자의 모든 욕망에 종속되는 인간 조종의 도구로 전락 되기 때문이다.”

앞선 구절에서 ‘말씀을 들으러 갈 일이다.’와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아라.’는 말씀은 같은 목적을 갖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목적입니다. 전도자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함부로 입을 열지 말아야 하는 근거로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 위에 있으니’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성경의 다른 구절들을 통해 확인해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6:7-8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만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

시편 139:1-6 “주님, 주님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님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나의 앞뒤를 두루 감싸 주시고, 내게 주님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는 의미는 ‘하나님은 나와 우리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시다.’는 것을 뜻합니다. 나보다 더 넓고, 멀리, 깊게 바라보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인간은 땅에 있어 시야가 좁고, 넓게, 깊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헛된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려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침묵하라고 권면합니다. 오히려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님께 들어야 할 것입니다.

좀 전에 읽어 드린 시편 기자의 고백,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처럼 우리 역시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이며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침묵하지 못하고, 나의 삶을 살피려 하지 않고, 말씀을 들으려고 하기보다 ‘나’를 먼저 앞세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절 말씀입니다. “걱정이 많으면 꿈이 많아지고, 말이 많으면 어리석은 소리가 많아진다.”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걱정은 ‘두려움’에서 비롯합니다. 이 두려움 때문에 헛된 것을 꿈꾸게 되고, 헛된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헛된 생각과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조금함이 결국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드러납니다.

“1 하나님의 집으로 갈 때에, 발걸음을 조심하여라. 어리석은 사람은 악한 일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제물이나 바치면 되는 줄 알지만, 그보다는 말씀을 들으러 갈 일이다. 2 하나님 앞에서 말을 꺼낼 때에, 함부로 입을 열지 말아라. 마음을 조급하게 가져서도 안 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 위에 있으니, 말을 많이 하지 않도록 하여라.”

제물을 바치면서 내 기도나 들어달라고 요구합니다. 삶의 행실을 고치려 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려 하지 않고 그저 내 욕망을 채우려고 하나님을 도구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떠올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 살피려 하지도 않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사실상 살아갑니다.

두려움은 결국 믿음 없음에서 발생합니다. 그래서 전도서 저자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7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걱정, 두려움이 일면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중심으로 신앙생활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죄이고, 악이고, 잘못된 모습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고,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저와 성도님들은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두려움이 나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끌어 가고 있습니까?

발걸음을 조심하십시오. 우리의 입을 조심하십시오. 예배드리기 전 나의 삶이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이 나에게 무어라 하시는지 듣기 위해, 말씀을 위해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관자이심을 인정하며 침묵으로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며, 나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게 되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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