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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의 질문한국 교회의 위기: 반공, 반통일 그리고 반동성애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 승인 2023.07.30 02:36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입학 면접에 등장한 반동성애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 이 질문이 과연 신학대학원 입학을 바라는 예비 신학생들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었을까.

1989년 3월 25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상임고문인 문익환 목사와 유원호, 재일작가 정경모 선생이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같은 시기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대변인 소설가 황석영도 평양에 도착했다. 4월 2일 문익환 목사 일행은 김일성 주석과 두 차례 회담을 가진 후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9개항에 이르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4월 13일 정부는 김포공항으로 귀환한 문익환 목사 일행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문익환 목사 방북 사건이었다.

당시 문익환 목사 방북은 한국 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공안정국의 신호탄이 되기도 했다. 당시 한국 교계의 주류는 문익환 목사의 방북을 극력하게 비난하였다. 한국 교계의 최대의 관심은 문익환 목사의 방북에 집중되었고 교회의 반통일적 생각은 더욱 굳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반도 통일의 가장 큰 적은 “한국 교회”라는 지적을 받을 만한 행태를 보였다.

1989년 5월 중순경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목사고시가 실시되었다. 1989년 2월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 영락교회 전임전도사로 재직하고 있었던 나는 목사고시 응시생이었다. 당시 목사고시는 헌법, 교회사, 설교, 성경과 면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필기시험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면접을 치러야 했다.

면접 순서를 기다리면서 당시 목사가 되어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불타는(?) 사명감으로 가득 차 있던 나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나의 사명감에 대해서 물으면 어떻게 답변해야 나의 소명의식과 사명감에 대해서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답변할 수 있을 가를 고민하면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면서 면접을 하는 담당 목사 앞에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면접 목사는 질문을 던졌다. 나는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당시 면접 목사의 이름과 표정 그리고 목소리를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 만큼 충격이 컸던 까닭이다.

“문익환 목사, 아니 목사도 아니지. 문익환 방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사실 나는 문익환 목사의 방북이 당시 얼어붙어 잇던 남북관계와 통일을 향한 새로운 길 모색에 있어서 큰 전환점을 마련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눈치를 보니 긍정적으로 답변하면 면접에서 낮은 점수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당황했다.

그러나 그런 기색을 내보이지 않고 면접관에게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자 면접관은 내 답변은 듣지도 않고 자기 혼자 흥분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물론 문익환 목사의 방북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그리고는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잘 하라.”는 말과 함께 면접을 끝냈다.

나에게는 이런 면접관의 질문과 태도는 충격 자체였다. 목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 소명과 삶의 자세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묻지 않고 오직 문익환 목사의 방북에 대한 의견만 묻는 면접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문 목사의 방북에 대하여 나름 찬성 혹은 반대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것에 대한 견해가 목사가 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마음에 깊은 실망을 안고 끝난 목사고시였다. 그리고 나는 첫해 고시에서 낙방을 하고 그 다음해에 목사고시에 합격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만 34년 전의 일이다.

34년이 흐른 오늘 예장 통합 목사고시 면접 현장에서 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34년 전 나에게 발생한 일이 떠올랐다. 지금도 충격으로 남아 있는 그 일이 오늘 또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 다만 그 질문이 반공에서 “동성애”라는 내용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다르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수십 년 동안 한국 교회를 휩쓸었던 반공의 유령(?)이 오늘은 ‘동성애’라는 또 다른 유령으로 나타나서 한국 교회를 미치게 만들고 있다. 표현은 다르지만 ‘반공’과 ‘반동성애’를 전면에 내걸고 이를 통하여 신앙의 순수성 혹은 진정성을 가늠하고자 하는 모습은 그 내용이나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다.

그런데 ‘반공’ 혹은 ‘반동성애’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은 아니지 않은가? 본질은 방치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그리고 가변적이고 다양한 해석과 적용이 가능한 주제를 신앙의 진정성의 잣대로 삼는 종교는 결국 소멸되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와 인류는 다양성과 개방성을 향하여 진보하고 있는데 교회가 계속해서 획일성과 폐쇄성이라는 역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교회를 향한 사회의 신뢰도는 점차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사회로부터 완벽하게 외면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의 소멸의 가능성은 이미 많은 통계자료에서 예견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사회적 신뢰의 하락은 한국 교회의 반공, 반통일 그리고 반동성애를 비롯한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신앙의 모습으로 인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한국교회의 교권주의자들은 ‘좌파, 공산주의 사회주의 그리고 동성애’가 교인 감소의 절대적 이유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들의 현실인식이 한심스럽기까지 하다.

이번 통합측 목사고시 면접에서 발생한 동성애에 대한 질문은 우리 모두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고 통합 교단은 물론 한국 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도대체 통합 교단은 어떤 목회자를 양성하려고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오늘의 현대 사회에서 폐쇄적이고 분리적이며 인간의 존엄성을 교리 혹은 자신의 생각의 잣대로 가늠하며 사회와 소통하지 않는 목회자를 영성하고자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통합 측의 경우는 목사고시 면접 뿐만 아니라 신학대학원 입학 시에 동성애 반대 서약에 서명하게 한다는 사실은 참담할 뿐이다. 다양성을 상실한 신학대학교가 학문과 경건의 전당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 가를 우리는 분명하게 지적하고 물어야 한다.

2018년 예장 통합 제103회 총회는 명성교회 세습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던 총회로 기억된다. 결국 세습반대의견이 주류를 이루어 명서의 세습이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린 총회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것이 그 다음해인 2019년 제104회 총회 시 수습결의안이 채택됨으로서 오늘 세습이 용인(?)되고 급기야는 제108회 총회장소로 명성교회를 택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런데 2023년 오늘 목사고시 면접 사건과 관련하여 2018년 제103회 총회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 하나가 발생한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오늘 통합 교단과 장로회신학대학의 반동성애적 행위를 결정한 사건이 발생한다. 총회 소속 7개 신학대학의 보고시간에 각 대학의 총장들이 앞으로 나와 총대들에게 인사하는 시간이었다.

여수노회 고만호 목사(그는 후일 자신이 담임하던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하는 문제로 말썽이 나자 교단을 탈퇴하였다.)가 발언을 통하여 총장들로 하여금 총회 석상에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힐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총회장의 중재로 총장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직접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총회장의 “반대하시죠?”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무마되었다.

아마도 이 사건은 신학대학 역사에서 최악의 치욕 사건으로 기억될 것이다. 후일 이 사건은 2021년 제106회 총회석상에서 당시 장로회신학대학의 김운용 총장의 “동성애는 죄라고 확실하게 믿고 있으며 우리 교수들이나 직원·학생들도 동성애는 죄라고 믿고 있다”라는 공개 발언으로까지 발전한다.

당시 총대로 참여하고 있던 나는 고만호 목사의 의견에 반대표시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기회 삼아 전년도 제102회 총회에서 통과된 ‘동성애자와 그 지지·옹호자는 교회 및 신학대학교의 직원이 될 수 없다’는 헌법시행규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결국 발언을 하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부끄럼과 치욕감으로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괴롭다.

당시 명성교회 세습 문제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었고 나도 세습 반대에 앞장을 섰으며 총회에서 세습반대 발언까지 했었다. 그러나 당시 세습반대에 앞장서고 있던 우리들은 세습 반대 운동이 동성애 문제와 연관되어 반대운동이 약회 혹은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동성애에 대한 의견을 극도로 제한하고 자제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세습반대 운동세력이 모두 동성애에 대해서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이런 연유로 결국 총회 석상에서 반동성애 발언과 정책이 채택되는데도 한 마디 다른 의견도 제시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세습반대 운동과 반 동성애 광풍저지 운동이 결코 다른 것이 아니었음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이것은 전략적 실패를 넘어서서 우리의 무지와 성찰 부족 그리고 무엇보다 비겁함으로 인한 것임을 자인하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행위는 세습을 저지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동성애 광풍 앞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며 무기력하게 무너져 버리고 젊은 신학생과 그 외 많은 통합 목회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피해를 입게 하는 결과로 귀착되고 말았다. 이런 의미에서 당시 총회의 일원이었던 나는 통렬한 반성과 피해를 당한 신학생들에게 사과와 용서를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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