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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통장(commons) 이야기평화를 짓는 농부 이야기 2
유대은(기장 총회사회선교사) | 승인 2023.08.05 02:21
▲ ‘서계 땅’이라 부르는 마을 공유지 ⓒ정아롬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는 ‘서계 땅’이라는 땅이 있다. 옛날에 마을에 서당이 있던 시절, 서당을 운영하기 위한 계를 조직해서 농사를 지었던 마을의 밭과 논을 지칭하는 말이다. 마을 어르신들 말에 따르면, 땅을 필요한 사람에게 임대를 주거나 농사를 지어 거기에서 나온 수를 받았다고 한다. 수나 농산물은 서당을 위해 사용했다고 한다. 학교가 생기고 서당이 밀려나면서 이런 활동도 땅과 함께 사라졌다. 그럼에도 이렇게 마을이 관리하고 공적인 목적으로 사용된 땅이 있었다는 게 매우 흥미로웠다.

마을공유지에 대해 간략히 공부해보니, 마을마다 다른 형태로 이런 마을 공유지가 있었다고 한다. 농사로 먹고 살아야 했던 시절에 농사지을 땅이 없다는 건 매우 힘겨운 일이 었을 것이다. 마을 공유지는 마을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굶어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생계 유지 장치였다.

땅이 부동산 자본으로 내세워지면서 이런 마을 땅들이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하여 현재는 마을 공유지를 찾기 힘들어졌다. 땅이란 게 먹고 살 수 있는 ‘생존’의 의미에서 사고 파는 ‘부동산’의 개념으로 바뀌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 같다. 마을마다 있었다던 마을공유지는 지금 얼마나 남아 있을까? 다행히 우리 마을은 ‘서계 땅’이라 부르는 한 필지의 밭이 마을 공유지로 남아 있다.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없이 홀로 사시는 아재께서 짓고 계신다.

나는 올해부터 마을에서 마을의 상수도를 관리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종자신청부터 마을의 장례절차까지도 신경써야 하는 이장님이 일이 많아 물관리를 분담하기로 하셨다. 그래서 마을에서 가장 젊은 사람인 나에게 맡기신 것이다. 나도 흔쾌히 수락했고 이장님께 배우면서 관리를 하고 있다.

마을 수도는 군에서 들어오는 상수도시설이 들어오기 전부터 마을 자체 수도 시설이었다. 이 물이 연결되어 식수, 생활용수, 하우스 수도까지 마을 곳곳에 필요한 곳에 사용되고 있다. 이번 장마 기간에 폭우성으로 비가 몇 번씩 내렸다. 마을 상수도원은 마을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계곡에 있는데 1주일에 두, 세 번씩 취수구가 막혀 뚫으러 올라가기도 했다. 아직 k-water라고 부르는 군 상수도를 사용하지 않는 가정도 있어 마을 상수도를 빨리 작업을 해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상수도 보호구역이라 차로 갈 수 있는 부분에서 100m 정도는 걸어서 가야 한다. 깊은 산 속에 있는 취수원을 갈 때마다 멧돼지를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올라간다. 키우는 개와 같이 올라가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풀숲에 있는 뱀을 만나는 건 자주 있기에 삽으로 땅을 두드리며 지나간다. 취수구는 계곡물 안쪽에 있어 관을 찾다보면 온 몸이 젖게 된다. 한여름이지만 산골의 계곡물은 그야말로 얼음물이다. 걸어 올라오는 동안 흘린 땀을 한꺼번에 씻겨주기도 한다.

취수구의 거름망을 흔들어 낙엽과 작은 가지들을 청소한다. 취수구 앞에 쌓인 흙과 모래, 잔돌들도 삽과 발로 치우다보면 옷과 몸은 이미 물에 다 젖어 있다. 계곡에서 내려와 상수도관을 통해 넘치는 물을 확인하면 안심이 된다. 마을수도만 사용하는 가정들이 걱정 없이 물을 쓰는 것을 보면 나름 뿌듯함도 느낀다. 이 물도 마을 사람들 모두가 사용하는 공공의 요소이다. 수도세를 따로 내지 않고, 마을의 공동경비로 마을 수도를 관리한다.

유두절을 앞두고 주변 마을 이장님들의 방송소리가 우리 마을까지 들린다. 유두절을 맞아  회관에서 모여 함께 밥먹자는 내용이다. 마을에는 함께 밥 먹는 문화가 있다. 마을의 1년 살림살이를 보고하는 회의인 동계, 여름철 무더위를 함께 나는 유두절, 복날 뿐 아니라 칠순, 팔순 생신을 마을에서 축하할 때도 있다. 밥을 먹는다는 건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이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모임이자 마을의 크고 작은 소식을 나누는 자리이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대다수의 마을이라 보이지 않으면 걱정을 하는 것이다. 마을 아짐들은 회관에서 매일 점심을 함께 드신다. 순번을 정해 밥을 하신다고 한다. 집에서 혼자 밥을 해먹기도 힘들고 한 끼를 함께 드시면서 서로의 상황을 돌보시는 것이다.

▲ 마실장의 모습 ⓒ정아롬

장흥에는 ‘마실장’이라는 대안장터가 열린다. 면소재지의 오일장이 있었지만, 도로사정이 좋아지고 읍소재지의 장터가 커지면서 오히려 면단위 오일장의 유동인구가 급격히 줄게 되었다. 힘이 없어진 장이 된 곳을 몇몇 분들의 모의를 통해 장터를 열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농사지은 가지, 호박, 고추나 포도밭에서 키운 닭의 알, 손수 만든 밀크티, 토스트, 막걸리를 가지고 나온다. 집에서 키운 밀로 직접 빻아 만든 빵과 쿠키, 먹거리 등 여러 가지 물품을 가지고 나온다.

장터의 특징이라고 하면 ‘돈’으로 거래되는 물품 뿐 아니라, 물물교환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화폐경제 뿐 아니라 다양한 경제형태를 맛볼 수 있다. 즉, 돈이 없어도 노래 한자리 하고 술 한잔 마실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이를 ‘지갑 없이 장보기’라고 한다. 돈이 있어야 마트에서 먹거리나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아내는 우리 집에서 농사지은 밀로 빵을 만들어서 나간다. 빵을 팔아 아이들을 위해 다른 먹거리나 옷, 장난감 같은 물건을 사오거나 교환해 오기도 한다. 기업이나 개인의 공간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형태다. 공유 공간에서 함께 만들어가는 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매력이다. 운영을 위한 회의도 공간의 청결을 위한 청소도 같이 한다. 모두가 함께 돌보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는 커뮤니티이다.

장마가 지나면 논둑을 베는 시기이다. 다랑논의 윗논과 아랫논 사이의 논둑은 매우 넓다. 그래서 보통 윗논에서 3분의 2를 깎고 아랫논에서 3분의 1을 깎는다. 정확히 3등분을 나눠 어떻게 하겠는가. 먼저 깎는 사람이 조금 더 다른 논을 위해 더 깎아 주며 서로 배려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엔 상대방이 고마운 마음에 조금 더 깎아주는 식이다. 암묵적인 배려이지만 그 모습으로 논둑은 깨끗이 된다. 선물처럼 제공되는 행동이지만 공짜는 아니다. 받은 대로 똑같이 되갚을 필요는 없지만 호혜성을 가진 것이다. 마치 빚진 자처럼 고마움을 다시 자신의 방식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영어로 ‘commons’는 우리말로 공공의 지식, 관계, 공간 등을 말하는 단어이다. 다양한 단어로 쓰임새에 따라 번역되지만 정확한 한 단어로 특정하긴 어렵다. 그래서 이를 ‘공통장’이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런 공통장이 지속되는 농민의 사회이길 바란다.

유대은(기장 총회사회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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