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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개신교에만 존재하는가개신교의 개교회주의와 가톨릭교회의 교구 제도의 구조적 차이
허호익(전 대전신대 교수) | 승인 2023.08.07 14:20
▲ 목회자의 이중직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며 개신교의 개교회주의에 대한 회의론이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Getty Images

최근 이재철 목사가 목회자의 이중직에 대해 설교한 내용이 SNS를 통해 큰 파장과 찬반 논란을 일으켰다. 목회데이터연구소, 예장 통합, 예장 합동이 함께한 ‘이중직 목회’ 조사 결과 분석(<고신뉴스> 2021.9.11.)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50명 이하 교회 담임목사 3명 중 1명이 실제로 이중직을 하고 있고, 한국 교회가 이중직을 인정해야 한다는 데는 86.4%가 찬성했고, 목회자 97.7%는 ‘이중직 목회자가 점점 많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생계를 위한 이중직이 아니라 전문적 직업을 가지면서 목회를 하는 사람이 한국 교회에 더 많아져야 한다’는 문항에도 85%가 동의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목회자 55.5%는 ‘교회 재정 상황이 넉넉해지면 이중직을 그만두겠다’고 했지만, 39.5%는 ‘교회 재정과 상관없이 이중직을 계속하고 싶다’고 답했다. 목회자들은 교단에 바라는 지원 정책으로 ▲ 목회자에게 적합한 이중 직종 개발(50.5%), ▲ 이중직에 대한 교단 헌법 완전 허용(48.2%), ▲ 이중직에 대한 정보 제공(38.6%), ▲ 이중직에 대한 신학 정립(33.6%), ▲ 개인에게 적합한 이중직 상담 및 코칭(32.3%) 등을 요구했다.
 
2018년 말 통계로 보면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 목사 20,506명 중 무임 목사는 1,694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의 8.3%에 달하는 수치로 2001년 622명과 비교해 볼 때 세 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이다(<한국기독공보> 2019.12.24.).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그의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하여 아직까지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교회를 세습한 교회가 명성교회뿐 아니다. <뉴스앤조이>의 조사에 의하면 2022년 3월 현재 지도에 올라 있는 ‘세습 교회’는 총 314곳이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예장 합동 교단 소속 8,637개 교회 중 3,690 교회가 연간 예산 3,500만 원 이하의 미자립 상태였다고 밝혔다. 예장 통합 측은 교회의 평균 자립률을 65%로 보고했다. 기감의 경우 2019년 현재 미자립교회의 비율은 48%라고 한다(<기독교신문> 2019.12.122).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의 경우 목회자의 이중직 뿐 아니라 무임 목사와 목사직 세습과 미자립 교회 문제가 생기는 원인에 대해 역사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대 교회는 바울이나 베드로의 카리스마에 의해서 도처의 교회가 세워졌을 것이다. 사제의 개인적 카리스마나 역량과 지역적 특성에 따라 교회가 크게 성장하기도 하고, 또 그렇지 못하기도 했을 것이다.

콘스탄틴 황제의 개종과 기독교의 공인(313)으로 인해 가톨릭교회는 로마의 시(市)나 주(州)의 행정 구조와 일치하는 교구제를 도입하여 공교회로서의 행정적인 구조와 골격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로마의 주에 속하는 도시에 있는 교회의 주교를 점차 대주교로 부르게 되었다. 로마의 행정 제도를 모방한 교구 제도는 교구(Diocese), 대교구(Archidiocese), 관구(Province), 총대주교구(Patriarchate)라는 상명하달식의 위계 구조로 발전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1세(재위 590-604)는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자신을 가리켜 ‘세계 총대주교’라고 칭하자, 베드로가 세운 로마교회가 모든 교회의 우두머리라는 로마 주교의 수위권을 주장하고 그리고 교황과 황제 중, 교황이 보다 중요한 영적인 문제를 관장하기 때문에 황제라 할지라도 그가 교인인 이상 궁극적으로 교황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전 세계의 모든 교회는 교황의 관할 하에 있는 ‘하나의 교회’를 이어 오고 있다.

한국 천주교의 경우 한국 천주교회는 3개의 교회 관구로 연합되며 3개의 대교구(archidiocese)와 14개 교구(diocese)로 구성되어 있다. 천주교의 경우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독신을 서원하고 전국에 7개 신학교 중에 입학하여 7년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친 후 1년간 성당에 파송되어 사목 실습을 받은 후 서품을 받게 된다. 따라서 천주교의 경우 소수 정예의 사제 양성으로 질적 평준화가 어느 정도 가능하며 각 교회에서 필요한 수 만큼의 신학생을 배출하기 때문에, 목회자 과잉 배출과 무임 목사나 이중직 목사 구조적으로 있을 수 없다.

천주교의 경우 소속 교구의 사제로 서품을 받기 때문에 다른 교구로 이적할 수 없으며, 교구의 주교의 명에 따라 사목지가 결정되고 또 그 사목지도 주교의 명에 따라 수시로 교체된다. 주교가 교구 내의 모든 교회와 선교 사역을 감독하기 때문에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출중한 사제라도 주교의 통제 하에 사목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따라서 개신교와 달리 천주교에서는 제도적으로 자유롭게 교회를 개척할 수 없으며, 교구를 옮겨 다른 교구로 갈 수 있으며, 자신의 개척한 교회에 위임 목사가 되어 항존직으로 70세까지 목회하다가, 아들에게 세습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종교개혁자들의 개인의 신앙의 억압하는 교황제도나 교구 제도를 개인들의 신앙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개교회주의를 지향하였다. 종교개혁 초기에는 개신교가 교육의 질은 낮지만 소명감이 투철한 다수의 목회자를 양산하였고, 가톨릭의 교구 제도의 틀에 매이거나 주교의 파송이 없이도 자발적으로 어느 곳에서나 교회를 설립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급속한 교세 성장이 가능하였다. 개신교는 목사 개인의 카리스마적 역량과 개교회의 자율적인 역동성을 바탕으로 교회를 경쟁적으로 성장시켜 나갔다. 따라서 선교 지역의 선점이 필요하였고 해외와 오지와 벽지에서 선교가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교황이 통제하는 하나의 교회에서 벗어난 개신교는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추구한다는 명목으로 무수한 교파 분열을 야기하였고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각 교파들은 교세를 확장하기 위하여 경쟁적으로 신학교를 세우고 목회자를 양산하는 것이 선교의 지름길이라고 내세웠다. 우후죽순으로 신학교가 생기고 통신신학교 무인가 신학까지 남발되면서 목회자의 양산되었고, 목회자의 질적 저하와 더불어 목회자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양산된 목회자들은 교회를 개척하여 이웃 교회와 무한 경쟁 속에 내몰리게 되었고, 도시화로 인한 인구 집중과 교통의 발달로 인기 있는 목사의 교회로 교인이 몰리는 것이 불가피하였다. 교인이 늘어나면 자연이 기존 교회를 허물고 늘어난 교인을 수용하기 교회를 여러 차례 새로 건축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명동성당은 1892년 기공한 후 한 차례도 헐고 새로 증축하지 않았다. 교인이 늘면 교구 내의 다를 성당을 세워 교인을 분산시킬 수 있는 교구 제도 덕분이다. 그러나 새문안교회는 언더우드 목사가 1887년 자신의 집에서 교회를 시작한 후 교인수 가 늘 때마다, 다섯 번이나 기존 건물을 허물고 2019년 여섯 번째 뉴모더니즘 양식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따라서 대형 교회와 소형 교회의 양극화가 생겨났다.

반면에 가톨릭의 경우 주교의 통제 하에 있는 교구 제도라는 구조 안에서는 성당들끼리 경쟁할 필요가 없을뿐더러, 개별 성당이 사제 개인의 카리스마적인 능력에 의존하여 설립되고 운영되고 성장하는 구조가 아니다. 특정 사제가 능력과 의욕을 발휘하여 교구 내 지역 성당을 크게 성장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공적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따라서 개신교는 어느 교회하면 그 교회의 목사 이름이 떠오르지만, 가톨릭의 경우는 어느 성당 하면 그 성당의 신부가 떠오르는 일이 없다. 따라서 교회 세습은 불가능한 구조이다.

이처럼 천주교는 성직자가 독신이고 사제의 생계는 교구가 책임지기 때문에 가족의 생계나 자녀의 교육 문제로 목회자가 이중직에 내몰리는 경우도 없고, 사제 수급의 수요와 공급과 교회 개척과 건축과 사제의 파송을 교구에서 조정하고 통제하기 때문에 이중직이나 무임 목사, 교회 세습이나 미자립교회 자체가 제도적으로 있을 수 없는 구조이다.

허호익(전 대전신대 교수)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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