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5광복절

몹시 힘든 2023년 여름이었다. 그러나 한반도엔 8월 중순이 되면 하늘은 높아지고 한민족은 8.15 해방절을 맞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잼버리 스카우트 세계대회 뉴스에 걱정된 국민 마음이 온통 집중된 탓에, 정작 뜻깊은 815 해방절의 의미가 실종된 듯한 느낌마저 받는 것은 필자 개인의 감정일까?

미완성의 해방: 출애굽 해방과 오순절 해방의 차이

구약성경과 이스라엘 민족사에서 가장 핵심 되는 사건은 출애굽 사건이다. 그것은 노예살이 하던 야곱의 열두지파 후손들과 ‘하비루’들이 고대 전제국가 애굽의 학정과 수탈에서 해방되는 집단 탈출 이었다. 출애굽 사건에 비견되는 신약성경과 초대 기독교 발생사에서 가장 핵심 되는 사건은 무엇일까? 그건 성령강림 체험을 하면서 예루살렘에 인종, 빈부, 국적, 언어, 문화, 사회 신분 차별을 넘어서서 신기하고도 신선한 인간 공동체가 출현한 오순절 해방사건 이었다.

우리 한민족과 교회는 1945년 8월 15일, 출애굽적 해방은 경험했을지라도 오순절적 해방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출애굽 해방은 정치적 억압에서 자유(liberty)를 획득한 외면적 경험이요, 오순절 해방은 인간성 근본악의 포승줄을 끊고 진정한 자유(freedom)를 맛본 내면적 인간 해방 사건이다.

출애굽기 성경 기사에서 보듯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정치적 해방을 맛본 야곱 후손들과 사회 바닥 무리들 ‘하비루’들은 결코 거듭난 새로운 무리들이 아니었다. 끄덕하면 원망 불평하며 하나님 계명을 우습게 여기고, 임시 지도자 아론을 부추겨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며,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위해 피비린 냄새나는 전쟁을 서슴지 않았다. 다윗과 솔로몬이 지배했던 이스라엘 황금시대 때도, 왕권 중심의 정치권력은 충성하는 초급장교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고, 사회의 빈부격차는 심했고, 법궤를 마음대로 이리저리 옮겨 종교를 정치권력의 시녀로서 쥐락펴락 했다.

사도행전 제2장에 기록된 것처럼, 오순절적인 진정한 내면적 인간 자유(freedom) 느낌과 감정은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을 극복하고, 언어 피부색 출신 지방의 고유성을 존중하되 ‘인류는 하나다!’라는 일체성을 공유하는 마음이었다. 요즘 정치계에서 많이 말하는 소위 ‘갈라치기 통치기술’과는 전혀 다른 자발적인 ‘한 몸 의식’이 지배하였다. 부자들은 그 이전엔 그 재산이 자기 개인의 소유물로만 알았는데, 자발적으로 나눔의 연대성에 동참하여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행2:45-46).

창세기 50장 내용 중 12장 이후부터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 관련된 족장설화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는 하나님의 사자의 질문은 얕본 강가에서 밤새도록 씨름하고서 결판이 나지 않자 신비한 그 어떤 존재가 야곱에게 묻는 질문이다(창32:27).

고대사회 일수록, 이름은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특정인에게 부여한 단순한 명칭이 아니다. 이름은 곧 그 이름을 지닌 자의 실체이며 정체성이었다. ‘야곱’이라는 이름은 어머니 리브가의 태중에서 나올 때, 먼저 나온 형 에서와 ‘형님 자리’를 놓고서 다투기라도 하는 듯 “발꿈치를 잡았다”는 뜻이다(창25:26).

다시 말하면 야곱은 경쟁자, 야망가, 권모술수자, 목적 달성을 위해 위장과 사기 치는 일도 서슴지 않는 품성을 지닌 자였다. 요즘 심리학적 인간 유형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야곱은 적극적 인간형, 진취적이고 야망을 지닌 인간, 아직 없지만 실현된 미래를 앞당겨 내다보고 거기에 투자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20여년 노동하여 라반을 능가하는 재산과 식솔을 거느렸다. ‘야곱 씨름’ 이야기는 야곱이 ‘자기 정체성’에 대하여 근본적 물음을 스스로 갖게 되었다는 말이다. 성공과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왔던 삶에 대한 자기성찰을 하며,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발언에서 특기할 사항으로서 그동안 저들이 사용하던 ‘남조선, 남측’ 등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대한민국’이라는 정식 국가 이름으로 호칭하는 일이다. 정치학자들의 공통적 견해는, ‘대한민국’이라는 호칭으로 변경하는 이유는 이념적 ‘남조선 해방논리’나 감상적 ‘우리 민족 끼리 논리’를 포기하고, 1991년 유엔에 동시 가입한 경제정치 체제가 다른 두 개 국가의 현실적 실체를 전제하고, 국가 대 국가의 보편적 국가관계로서 전환을 지향하겠다는 뜻이다. 북한 당국의 대남 호칭이 ‘대한민국’으로 변했다는 것은, 남한도 북한을 저들의 공식 국가 명칭인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불러야 한다는 쌍방적 변화를 요청하는 것이다.

에서와 야곱 형제의 ‘갈등 관계’ 발생의 단초가 ‘장자권’ 문제였듯이, 1945년 해방 직후 남북한에 설립된 두 개의 정부는 서로 민족의 주권과 역사전통의 진정한 계승자로서 장자권 싸움 곧 현대판 ‘국가 정통성 싸움’이었다. 에서는 들사람, 사냥꾼, 핵무기로 자기방어 하는 군사제일주의자요, 야곱은 차분한 계산형 인간, 기회주의자, 산업화 성공자, 현대판 경제제일주의자이다.

문제는 국가 공동체가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유, 평등, 박애’ 3가지 가치를 어떻게 골고루 동시에 실현하며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어느 나라도 위에서 말한 인류 공동체가 실현해야 할 과제를 성공적으로 성취하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야곱처럼 ‘기만자’가 되어있고 정치적 야망가들의 만만한 ‘먹잇감’들이 되어있는 것이다.

▲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에큐메니안

교회는 정치가 ‘자유, 정의, 진실, 평화’를
지향하도록 해야 한다

19세기 동아시아 시장판엔 깡패건달들의 행패가 더욱 심해지고 노골화되자, 이번에는 러시아, 일본, 청국, 그리고 요즘은 미국을 기둥서방으로 삼고 생존을 이어가려고 몸부림치는 가련한 사마리아 여인의 신세가 우리 모습이 아닌가? 눈을 크게 뜨고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1945년 8월 15일에 진정으로 한민족은 해방을 맞이했던가? 무릇 생명의 제일법칙은 ‘스스로 함’인데, 우리 민족 스스로 힘으로 쟁취한 해방이 아니었기에 우리 몸은 시장 바닥 깡패건달들에 의해 능욕당하고, 사마리아 여인처럼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 미국은 우방임에 틀림없고 대한민국 건국과 6.25 전쟁 시기에 선한 미국 시민들과 교회의 헌신적인 후원을 받아서 역사적 시련을 견디어 냈다는 건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오늘의 미국은, 자국의 정치·군사적 이익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패권주의로서 무장한 철저한 세속국가이지 한국민이 짝사랑하는 ‘남편’ 같은 이상적인 국가는 아니다.

요즘 한국교회의 위상은 한국사회와 정치에 대하여 “이래야 합니다!”라고 말할 권위도 위상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위기의식마저 없는 척 숨길 수 없다. 그래서 8.15 해방절을 맞아 여당과 야당, 진영논리를 떠나 진심으로 다음 몇 가지를 긴급하게 하소연 한다.

김경재 명예교수(한신대)  soombat19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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