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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은 너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예수의 증인(아모스서 3,1-2; 9,7; 사도행전 1,6-8)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3.08.16 23:56
▲ Frederick Arthur Bridgman, 「Pharaoh’s Army Engulfed by the Red Sea」 (1900) ⓒWikimediaCommons

성령강림은 우리가 잘 알 듯이 초기 교회에 성령이 임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온 세계에 퍼지게 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교회는 그 존재 이유를 실현해 갑니다. 오늘 신약 본문에서 보듯이 교회는 땅 끝에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됩니다. 당시는 로마를 땅 끝이라 생각했지만, 그 땅 끝은 새로운 땅이 발견될 때마다 계속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 끝에까지’는 어떤 특정한 지명을 가리킨다기보다는 ‘모든 사람에게’와 같은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는 다시 “땅에 사는 모든 사람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는다”라는 아브라함의 약속과 맞닿아 있으며, 따라서 성령강림은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약속 실현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복음은 어떻게 예루살렘을 벗어나 땅 끝에까지 이를 수 있었을지요? 다시 말해,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은 어떻게 온 세상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 되실 수 있었을지요? 물론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 모두와 모든 생명을 지으신 분이지만, 이스라엘 신앙은 그 민족적 한계를 깨고 어떻게 우리의 신앙이 될 수 있었을지요? 우리는 이 과정을 아모스서에서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아모스서 3,1-2은 심판 말씀의 일부로 여기서 예언자는 먼저 출애굽이야말로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사건임을 천명합니다. 많은 민족들 중에서 야훼의 특별한 은총을 받은 선민인 만큼 그다음 기대할 수 있는 말은 구원의 기쁜 소식일 것이나 심판 선언이 이어질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선택된 백성으로서 그 특권을 누릴 생각만 했지 그에 따른 의무는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의무란 아모스서 전체에 걸쳐 나오는 야훼의 계명 준수로, 이스라엘은 권력과 폭력으로 약자와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고 수탈하며 이 야훼의 계명을 무시했습니다.

아모스 시대의 이스라엘(유다)은 국내외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가 부흥하고 교역이 증대하여 문화도 꽃피는 시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그에 따라 그들의 종교와 신앙은 민족주의적이고 배타적이게 되었습니다. 예언자 아모스는 이러한 때 사람들의 인식과 기대를 흔드는 이와 같은 심판을 선언합니다.

더 나아가 아모스서 9,7은 이스라엘이 그들 민족의 역사적 토대로서 유일한 사건으로 보았던 출애굽이 다른 민족들에게도 일어났던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말일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사람이나 이스라엘 사람이나 야훼에게는 마찬가지고,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냈듯이 블레셋을 크레타에서, 시리아를 기르에서 이끌어 냈다고 야훼는 말씀하십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 왕국 초기 사울 왕정의 숨통을 조였었고, 시리아도 이스라엘 왕국 역사 내내 위협이 되었던 원수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야훼께서 그들의 출애굽도 주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심판 말씀의 맥락에서 언급되고 있으나,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그 역사에 대하여 국지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인식을 깨고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을 지니게 하는 단초를 그 안에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인식은 이후 포로기를 지나 온 세상의 하나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인식으로 정착되어 갑니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 이스라엘 종교는 다시 배타적으로 변질되어 갔지만 예수께서는 그 단단한 껍질을 깨는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이스라엘이 무시해 왔던 야훼의 정의와 사랑의 계명을, 평등과 평화의 계명을 실현하는 복음입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눈먼 자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억눌린 자들에게 해방을 선사하는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복음을 땅 끝에까지 온 세상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선포하며 예수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맘몬의 증인도, 권력의 증인도 아닌 예수의 증인입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의 증인이 되길 빕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사랑과 평화가 넘치고 공평과 정의가 세워지길 빕니다. 연약한 우리가 그리 되길 애쓸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늘 힘과 용기를 부어주시길 빕니다.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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