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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교회론이야두 개의 늪: 한국교회 세습문제 (1)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 승인 2023.08.28 02:15
▲ 세습문제로 한국교회의 위기를 부채질한 명성교회 ⓒ위키피디아

우리 말에 “늪에 빠지다.”라는 표현이 있다. 빠져나오기 힘든 상태나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실 늪은 습지의 일종이다. 축축한 진흙이 깊은 땅을 늪지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늪이라는 말을 관용어로 사용하면서 서서히 빠져들어 헤어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을 위협하는 경지를 ‘늪에 빠지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늪은 매우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연유로 늪이라는 말을 주로 “이미 답이 없는 상황”을 표현할 때 사용하기도 한다. ‘도박의 늪’, ‘사채의 늪’, ‘유혹의 늪’ 등이 예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교회는 두 개의 늪에 빠져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다. 이 늪은 우리로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 늪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모든 것은 결국 이 늪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늪은 명성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세습의 문제이며, 또 다른 하나는 동성애를 중심으로 하는 성소수자 문제의 늪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 늪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기독교가 전하고자 하는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메시지가 무엇인가의 문제와 연관된다. 우리는 어떻게 이 두 가지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개의 늪이 주는 의미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세습의 늪이다. 최근 통합 교단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일이 있다. 하나는 9월에 열리는 108회 총회장소가 명성교회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하나는 NCCK 총무로 김종생 목사가 선출된 사건이다. 통합총회바로세우기 연대(대표회장 양인석 목사, 집행위원장 이승열 목사)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또 다른 목회자 모임도 이에 대하여 명확하게 반대 의사를 표현하였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사건은 다른 것 같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두 사건 가운데는 명성교회의 담임목사 세습이라는 사건이 도사리고 있다. 김종생 목사의 경우에는 김 목사의 인간 자체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발언과 의견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의 인격과 삶의 모습에 대해서 직접적인 언급은 조심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그럼에도 김 목사의 명성교회와의 관계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며 결국 그가 명성교회 세습의 정당성을 앞서 홍보한 사람이 아닌가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총회 장소의 문제와 NCCK 총무 자격의 문제가 세습이라는 고리를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형국이다. 이렇듯 세습 문제는 마치 블랙홀처럼 통합은 물론 최근의 한국 교회의 모든 이슈를 흡입하고 있다. 세습 문제만큼 온 한국교회를 흔들리게 만든 주제는 없었다. 그런데 담임목사 세습의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세습의 한 복판에는 맘몬주의, 다시 말하면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돈-물질 우상숭배’가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돈을 숭배하고 그 돈을 따라가면서 발생한 것이 담임목사 세습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돈이 없는 교회, 작은 교회, 농어촌 산골 교회, 개척교회 등의 담임목사직 세습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이나 비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고난의 세습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이론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도 가난하고 작은 교회의 담임목사 자리도 찾기 어려운 요즘과 같은 열악한 상황에서는 우리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고 힘을 잃는다. 작은 교회, 심지어는 미자립 교회라고 해도 돈을 넘어서 권력(?)의 자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세습의 문제가 돈과 권력의 문제만 일까? 과연 교회 담임목사 세습의 핵심적 주제는 무엇인가?

세습의 늪은 오늘 기독교회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성찰하게 해 준다.  우리는 <예수따르미>와 <예수인>으로 살아가면서 그리고 예수교회로 모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교회로 모여 살면서 사회를 향하여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우리가 주장하는 예수를 통한 구원의 의미는 무엇인가? 오늘의 사회에서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개교회들은 어떤 비난과 비판이 있더라도 세습을 감행할 것이다. 여수은파교회의 경우와 같이 교단을 탈퇴하면서까지 세습을 감행 할 것이다. 세습 해당교회가 교단을 탈퇴하면 그것으로 문제가 끝나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갖은 방법을 쓰더라도 세습은 강행 될 것이고 개척교회 혹은 미 자립 교회에까지 세습의 물결은 밀어 닥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세습은 어찌 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 담임목사직 세습의 문제는 이를 강행한 명성교회를 비롯한 해당 교회들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행위를 넘어서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향한 접근이 필요하다. 왜 교회는 세습을 감행하려고 하는 것일까?

세습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안정과 지속적인 성장이다. 물론 배후에는 맘몬 숭배라고 명명할 수 있는 욕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습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다는 것은 명확하다. 이들의 메시지는 항상 교회가 중심이 된다. 마치 예수를 믿는 목적이 교회에서 교인으로 살고 그리고 교회성장과 안정인 것처럼 오해될 정도이다.

그런데 이들 뿐일까? 거의 모든 교회에서 외쳐지는 메시지는 교회중심이다. 메시지가 교회중심인 이상 어떤 교회도 세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교회를 위한 일은 모두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교회를 전하기 위해 <예수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나라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오직 하나님나라를 향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만일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방해가 된다면 과감히 오늘의 교회를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에 앞설 수는 없다. 교회는 영원하지 않다. 그것은 일시적인 조직일 뿐이다. 그러므로 세습 문제는 단순한 부와 권력 승계의 문제를 넘어선다. 세습 문제는 오늘 기독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문제이다. 특히 ‘교회론’의 문제이다. 교회는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담임목사직 세습은 맘몬 우상숭배를 넘어선다. 그것은 메시지의 문제이며, 그 메시지는 ‘교회론’의 문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여기에는 교회를 절대적 존재로 간주하고 있는 우상적-이단적-억압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교회를 영원하고 절대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존재인 교회는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된다. 교회의 확장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다. 교회의 안정적 번영은 하나님 나라의 번성을 의미한다.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교회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전력을 다해야 한다. 교회를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나름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힘을 갖기 위해 교회는 돈과 권력도 필요하지 않겠는가. 교회가 안정되고 힘을 갖기 위해서 세습은 당연시되고 정당화 된다. 교회를 하나님나라와 동일시하는 교회론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세습은 하등의 문제될 것이 없다.

이렇듯 교회담임목사직 세습은 맘몬주의를 넘어서서 교회가 무엇인가의 교회론적 메시지와 연결된다. 세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세습 문제를 맘몬주의, 즉 돈을 우상 숭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습은 돈과 권력의 세습이므로 돈과 그리고 그 돈으로부터 나오는 힘을 숭상하는 맘몬주의 즉 우상숭배라는 것이다. 당연하다. 세습은 분명히 맘몬주의이며 우상숭배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세습반대 운동에서 보아왔듯이 정작 세습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맘몬주의에 입각한 반론은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명성교회를 비롯한 세습을 감행한 교회들이 어려운 사람들과 교회를 위해 많은 돈을 사용해 왔다라고 강변한다. 돈을 우상숭배 한다면 이렇게 자선 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반론을 펼치기도 한다.

세습문제는 맘몬주의와 우상숭배를 넘어서 <교회론>의 문제로 집약된다. <교회론>의 메시지가 변화되지 않는 이상 한국교회는 세습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과연 오늘 우리에게 교회는 무엇인가? 오늘 한국 교회는 코로나 이후 교회는 무엇인가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갖고 있다. 사회적 신뢰를 잃은 한국 교회는 기존의 교회론에 대하여 철저한 성찰을 해야 한다. 이미 사회로부터 신뢰를 상실한 기존의 교회론을 넘어설 새로운 교회론을 창출해 내야 한다.

기존의 교리에 의해 전통적이고 정통이라고 여겨져 왔던 기존의 교회론을 처음부터 다시 뒤집어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회적 신뢰 상실이 목회자를 비롯한 기독교 지도자들과 교인들의 도덕적 타락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지금까지 지탱해 왔던 교회론의 문제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보아야 한다. 세습 문제는 우리가 갖고 있는 교회론의 결과적인 모습일 뿐이다. 과연 우리는 “세습의 늪”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성찰하고 보여주어야 할 교회론에 달려 있을 것이다.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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