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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예배가 예배다워지려면“지워지지 않는 죄”(예레미야 17:1-4)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9.03 23:52
▲ Jean Honore Fragonard, 「Jeroboam offering sacrifice to idols」 (1752) ⓒWikimediaCommon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평안은 개인이 경험하고 있는 상황과 상관없이 누릴 수 있습니다. 완전한 평안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안에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완전한 평안을 찾고, 선택하고,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주부터 대림절 전인 11월 마지막 주일까지 열세 주간 동안 창조절로 지킵니다. “창조절은 세계의 22억 그리스도인들이 창조 세계를 위해, 창조 질서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돌보도록 초대받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그 본래의 뜻에 따라 보호하여, 온전하게 다음 세대에 전하려는 목적으로 제정되었습니다.

그래서 창조절은 창조 세계를 돌보기 위해 다양한 행동을 하는,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전 세계 기독교 가족을 일치시키는 기도와 행동의 전례 절기입니다. 강단을 보시면 알 수 있듯, 창조절의 전례색은 녹색입니다.

“세계교회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 회복에 관심을 가진 것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983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제6차 총회는 처음으로 ‘창조 질서의 보전’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이처럼 세계교회에서는 주요한 관심사였던 ‘정의와 평화’와 함께 창조 질서가 주요 이슈로 부각 되기 시작했고,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엄청난 재앙을 통해 창조 세계 파괴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공동책임을 중요하게 묻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여러 사건을 통해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기독교 교단에서 우리 교단은 더 길게 지키지만, 9월 1일에서 10월 4일 사이를 ‘창조절’(창조세계의 시간이라고도 함)로 기리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주간 주일 말씀을 통해 섬김 받으려고 하는 왕이 아닌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이 찾는 의인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과 무관하게 또는 무관심하게 여기며 신앙생활 하는 곳이 아닙니다. 개인의 안녕이나 개인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신앙생활 하는 곳은 더더욱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 땅으로, 세상 한가운데로 침투하셔서 개인과 세상을 바꾸어 가셨듯 교회와 성도는 나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어가기 위해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늘 교회와 성도는 신앙생활에서 이런 우선순위가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6:31-33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32 이 모든 것은 모두 이방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모스 5:21-27 “21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22 너희가 나에게 번제물이나 곡식 제물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제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진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23 시끄러운 너의 노랫소리를 나의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의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24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먼저,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주중에 성도님들과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하면서 삶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목사인 저마저도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지금 성도님들한테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중지를 위한 기도나 행동을 해야 한다고 해야 할 처지가 맞나?’

성도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늘 개인 삶의 문제와 상황은 성도가 불순종하도록, 불의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 버리곤 합니다. 신앙이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삶의 문제는 늘 우리를 저 밑바닥으로 끌어 내립니다. 삶의 문제도 그렇지만 개인적인 목적과 욕망도 마찬가지 역할을 합니다. 거룩한 삶을 향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도록 뒤로, 뒤로 잡아당깁니다.

우리의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는 내 안에서도 이런 목소리가 들리곤 합니다. ‘네가 먹고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교회를 나간다고? 네가 그렇게 한가해?’, ‘지금 네 상황이 남 처지를 신경 쓸 상황이냐? 창조 질서 회복?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삶이 힘들어지면 오히려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빼는 시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됩니다. 교회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겠다는 것이고, 내 생각대로 살고, 내 힘을 의지해서 살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도는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앞서 읽어드렸던 마태복음으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힘들어지는 상황이 되면 더 개인적인 신앙생활에 몰두하게 됩니다. 나 자신만 보이는데, 결국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을 보려 하지 않거나, 보이지 않게 됩니다. 

앞서 읽어드렸던 아모스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 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성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오늘 예레미야의 본문에서 ‘유다의 죄’에 대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1 유다의 죄는 그들의 마음 판에 철필로 기록되어 있고, 금강석 촉으로 새겨져 있다. 그들의 제단 뿔 위에도 그 죄가 새겨져 있다.” 이 말씀은 유다의 죄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십니다. 얼마나 지독한 죄를 지었기에 또는 죄의 역사가 오래되었기에 이렇게까지 말씀하실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심히 예배를 드렸고, 제물도 드렸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예배와 제물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더 깊게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예배와 제물이 하나님을 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검은 속내가 더 커지는 동기부여가 되는 예배가 될 뿐이었습니다.

“2-3 자손은 그 기록을 보고서, 조상이 지은 죄를 기억할 것이다. 온갖 푸른 나무 곁에, 높은 언덕에, 들판에 있는 여러 산에, 그들의 조상이 쌓은 제단과 만들어 세운 아세라 목상들을 기억할 것이다. 네가 나라 구석구석에서 지은 죄의 값으로, 내가 네 모든 재산과 보물을 약탈품으로 원수에게 넘겨주겠다.”

예배도 드리고 제물도 드렸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예언자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한 말입니다. “사무엘이 나무랐다. ‘주님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사무엘상 15:22)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는 삶입니다. 개인을 넘어 세상, 하나님의 장조 질서를 회복하고 보존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입니다. 순종의 삶입니다.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4 그리고 너는, 네 몫으로 받은 땅에서 쫓겨날 것이며, 네가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끌려가서, 네 원수를 섬기게 될 것이다. 너희가 나의 분노를 불처럼 타오르게 하였으니, 이 분노의 불이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 자신을 위해 했던 모든 행동의 결과는 더 참혹할 뿐이었습니다. 그 행동이 어려움을 극복하려고 했던 열심이건 아니면 목적을 이루려고 했던 열심이건 상관없이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렇다고 이 방법이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습니다. 익히 들어왔던 말씀들이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입니다. “5 ‘나 주가 말한다. 나 주에게서 마음을 멀리하고, 오히려 사람을 의지하며, 사람이 힘이 되어 주려니 하고 믿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6 그는 황야에서 자라는 가시덤불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소금기가 많아서 사람이 살 수도 없는 땅, 메마른 사막에서 살게 될 것이다.’ 7 그러나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다. 8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뿌리를 개울가로 뻗으니, 잎이 언제나 푸르므로, 무더위가 닥쳐와도 걱정이 없고, 가뭄이 심해도, 걱정이 없다. 그 나무는 언제나 열매를 맺는다.”(예레미야 17:5-7)

또 다른 한 가지는, 예배가 중심이 되는 삶입니다. “21 나 주가 말한다. 너희가 생명을 잃지 않으려거든, 안식일에는 어떠한 짐도 옮기지 말고, 짐을 가지고 예루살렘의 성문 안으로 들어오지도 말아라. 22 안식일에는 너희의 집에서 짐도 내가지 말아라. 어떠한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에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23 그러나 너희 조상은 아예 듣지도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순종하지도 않았고, 교훈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으며, 고집을 꺾지도 않았다. 27 그러나 너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나의 말을 듣지 않고, 안식일에 짐을 옮기며, 예루살렘의 성문 안으로 짐을 가지고 들어오면, 내가 이 성문에 불을 질러, 예루살렘의 궁궐을 태워 버릴 것이다. 아무도 그 불을 끄지 못할 것이다.”(예레미야 17:21-23, 27)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방법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의지할 때, 예배를 떠나 살아갈 때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할 뿐 아니라 불순종한 삶을 살아가게 될 뿐입니다.

그런데 요즘 시대를 보면 순종이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지독하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요즘엔 하나님보다 정치적인 입장이 더 우선입니다. 하나님보다 민주당이 더 위에 있고, 하나님보다 국민의힘이 더 위에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당의 정치인들을 구원자처럼 여깁니다. 정치인들은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움직입니다. 야당이든 여당이든 그들에게 창조 질서의 회복이나 보존이 의미가 있겠습니까? 자신들의 상황이나 위치에 따라 말을 바꿀 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보다 정치적인 입장이 더 우선이 되니 해야 할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려 있는 창조절에 성도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초도제일교회 공동체는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 회복과 보존을 위해 기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특별히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중단을 위해 그리고 이미 방류된 오염수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기도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이 결정은 반드시 중단되어야 합니다.

사람이 만든 것 중에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늘 자신들의 결과물에 자신만만하던 인간들은 체르노빌 원전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뿐만 아니라 겪어서는 안 될 재앙들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선택과 행동은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곳곳에서 지워지지 않을 죄의 결과를 우리 자신과 후손들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어그러진 개인의 삶과 어그러진 창조 세계를 볼 때마다 우리 자신과 후손들은 부모 세대와 앞선 세대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의 문제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또는 외면했던 성도의 역할에 대해 다시 직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창조하시고 좋다고 말씀하신 세상의 관리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소명입니다.

‘네가 먹고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교회를 나간다고? 네가 그렇게 한가해?’, ‘지금 네 상황이 남 처지를 신경 쓸 상황이냐? 창조 질서 회복?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이런 어리석은 목소리들을 분별하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 예배가 중심이 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이 귀한 창조 절기에 어긋난 삶의 결과로서 지워지지 않을 죄가 곳곳에 새겨지는 대신, 좋다고 말씀하신 아름다운 세상이 우리와 후손들에게 펼쳐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행동하는 성도, 초도제일교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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