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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의 기억평화를 짓는 농부 이야기 3
유대은(기장 총회사회선교사) | 승인 2023.09.09 14:24
▲ 다양한 색을 가진 토종벼 ⓒ정아롬

절기상 선선한 바람이 분다는 처서를 지나고 있다. 저녁 잠자리에 누우면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이 시기 토종벼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논에는 형형색색의 벼들이 춤을 춘다. 왕겨에 붙어있는 까락(꺼럭)이라는 수염이 바람에 흔들리면 파도가 치듯 멋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버들벼의 하얀색, 보리벼의 분홍색, 멧돼지찰의 검은색 등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6년 전, 처음 벼농사를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 본다. 300평의 논에 농촌진흥청에서 개량하여 보급했던 ‘호품’과 토종벼 ‘주먹찰’을 심었다. 먼저 귀농한 분들에게 논농사를 배우며 종자를 얻어 처음 심었었다. 그때는 개량종, 토종벼라는 단어들이 낯설어 그냥 모두 다 같은 벼가 아닌가 하고 지나갔다.

한 해 두 해 벼농사를 짓고 나니 개량종과 토종종자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는 것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 개량종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교배를 하여 육종한 것인데 보통 4~5년 정도가 지나면 퇴화되어 소출이 좋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면 종자 전체를 바꿔야 한다.

처음 심었던 호품도 퇴화되어 더이상 자가채종으로 종자로 잇기가 어려워져 대체 할 수 있는 종자를 찾을 때였다. 소농두레의 한 가정에서 햅쌀을 거뒀다고 솥밥을 해오셨다. 지금까지 먹어 본 밥 중에 단연 최고였다. 밥이 너무 맛있어서 이것을 심어야겠다, 싶어 여쭤보니 ‘다마금’이라는 종자라고 하셨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들어온 일본품종 중의 하나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밥맛이 좋아 이미 키우기로 마음먹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품종이라는 말에 멈칫했다. 하지만 볍씨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벼종자에 대한 공부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수탈과 쌀증식을 목적으로 한반도 전국토의 벼를 조사했단다. 그 결과로 ‘조선도품종일람’이라는 책이 완성되었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조선 반도에서 재배하고 있던 토종벼는 무려 1451종이었다. 각 지역마다 맛과 멋과 키가 서로 다른 벼들이 자랐다. 재배환경이 다른 만큼 다양한 품종의 벼가 존재 했었다.

지금은 추수 때가 이른 논을 보며 의심 없이 ‘황금들녘’이라고 부르지만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아마 한가지 색 황금들녘이 아니라, 각양각색의 들녘이었을 거라 추측한다. 그런 땅에 일본은 일본의 우량 품종을 들여왔다. 조선의 풍토에 맞게 개량된 품종들이었다. 그렇게 들여온 벼가 다마금, 조신력 같은 것이었다.

다마금은 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전남 대부분의 논에서 재배하였다. 처음에 농부들은 왜놈들 벼를 심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소출이 많고 밥맛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마금을 적극 도입했다. 많던 토종벼는 일본의 개량 품종벼에 빠르게 밀려났다. 그 바탕에는 산미증식계획이 있었다. 광복 후, 일제는 사라졌지만 그와 함께 우리나라 고유의 종인 1451종의 토종벼도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먹을거리가 없던 시절, 통일벼와 같은 수확량 위주의 개량종들이 대부분의 논을 차지하면서 그마저도 많이 소실되었다. 다행히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동안 묵묵히 토종종자를 보존하고 꾸준히 씨앗을 받아온 분들이 있었다. 그렇게 토종벼가 500여 종 정도 복원되어 재배되고 있다. 현재 전국에 토종벼 농사를 짓는 농부들도 조금씩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장흥에는 오랫동안 토종종자를 수집하고 키워오신 농부 이영동 선생님이 계신다. 어머니께 받은 소중한 토종씨앗들을 지금까지 지켜오셨다. 선생님의 말씀 중에 중요한 내용이 생각난다.

“1451종이라는 벼를 지금까지 이어 왔다면 아마 지금의 벼 종류는 2000종이 넘을 거예요.”

벼는 99% 자가수분 작물이다. 바로 옆에 있는 벼와도 쉽게 섞이지 않는다. 하지만 간혹 환경과 기후에 따라, 자연의 선택에 따라 드물지만 변이종이 생긴다. 우리나라에 토종벼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키워져 왔다면 다양한 환경에 적응된 벼들이 조금씩 더 늘어났을 거라는 말씀이다.

▲ 벼꽃이 피는 모습 ⓒ정아롬

변이가 일어난다고 해도 그것이 새로운 품종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발견해서 선별하고 증식하는 데는 농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씨앗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육종하는 것도 농부의 사명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 내 손으로 키우고 있는 벼는 15종 정도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다마금’, 토종벼인 ‘버들벼’(버드나무처럼 모가 축늘어짐), ‘북흑조’(평안도지역에서 재배됨), ‘자광도’(임금님 밥상에 진상된 쌀), ‘대궐찰’(궁에서 먹던 약성이 있는 찹쌀) 그리고 자연변이된 종자를 농부의 손으로 육종해서 고정시킨 ‘흑향찰’, ‘적토미’, ‘멧돼지찰’ 등이다.

개인적인 목표는 각 도마다 재배되었던 벼들과 장흥 지역에서 키워왔던 토종벼들을 수집하여 키우는 것이다. 그리고 채종포에서 자연변이종을 발견해보고 싶다. 토종벼는 까락이 긴 것이 많은데 도정과 건조에 다소 불편함을 준다. 키가 큰 토종벼도 많다.

그런 벼들은 바람에 넘어가기 쉽다. 그럼에도 내가 토종벼를 주로 키우는 이유는 호기심이 많기 때문이다. 수확량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다양한 맛의 밥을 먹어보고 싶었다. 출수기 때의 멋진 풍경도 좀처럼 포기할 수 없다.

또, 벼농사를 짓다 보면 종자의 특성이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버들벼가 버드나무처럼 쳐지는 모양이 이듬해 사라지기도 하고 까락이 긴 벼들이 해마다 까락이 짧아 지기도 한다.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긴 반응일 것이다.

마을 아재들께 들은 바로는 옛날 우리 동네에서는 ‘붉은 차나락’이라는 벼를 심었단다. 바닷 바람이 강하게 부는 곳이라 넘어가지 않도록 키가 많이 크지 않는 벼를 키웠다고 하셨다. 지역의 환경에 맞는 종자를 선택한 것이다.

쌀은 씨앗이다. 씨앗은 살아있다. 씨앗은 수백 수천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가물 때, 물이 많을 때, 박할 때, 기름질 때, 바람이 많이 부는 때, 폭염일 때, 그늘 질 때, 짐승의 피해를 입을 때,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데이터를 쌓아왔다.

기후위기시대인 지금 기댈 수 있는 것은 씨앗이 지닌 기억들이다. 그것은 역경을 헤쳐 오늘까지 이어온 증거이자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그 기억을 되살리고 싶다.

유대은(기장 총회사회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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