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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부르는 울부짖음“잇는 성도”(시편 85:7-13)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9.18 01:48
▲ 리비아 데르나 지역 상류에 위치한 두 댐이 무너지면서 급류가 쏟아졌고 거리 전체가 바다로 씻겨 내려갔다. ⓒReuter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우리 안에 주어진 완전한 평안,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빼앗을 수도 없는 완전한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시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몇 주 전 설교 때 말씀드렸지만 인간의 편리, 탐욕으로 인한 파괴행위가 기후 위기, 기후 재앙을 불러왔고 그 결과로 전 세계의 수많은 곳에서 죽음과 고통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땅은 늘어나 2022년에는 3,000만 명 이상이 기후재난으로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난민의 숫자를 우리는 보게 될 것입니다.

얼마 전 모로코에서는 지진 때문에 3,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리비아 대홍수로 인해 11,3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었고, 앞으로 2만 명까지 사망자가 늘어날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고성군민 전체가 사라져 버리는 것과 비슷한 인원의 숫자입니다.

이로 인해 발생 될 난민의 숫자는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멀리서 일어난 일이라 ‘어휴, 다행이다. 우린 그런 일 안 생기겠지.’ 하며 안심하시겠습니까? 멀리서 일어난 일이라 나와 상관없다고 여기시겠습니까?

오늘날에는 많은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나 혼자만 잘 살 수 있거나, 나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닙니다. 다 함께 고통을 겪거나, 다 함께 잘살 수 있거나 두 가지 선택지 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상생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나라에서 혹은 우리나라에서 더 비참한 소식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특히 성도는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뉘묄러가 히틀러 정권 당시 나치의 횡포에 침묵하던 사람들을 향해 내뱉은 시가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 왔을 때’라는 제목입니다.

“나치는 우선 공산주의자를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사민주의자를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민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노동 조합원을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동 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유대인을 잡으러 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다. 그런데 아무도 나서 줄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나를 위해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은 타인의 잘못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내 삶이 문제라고 마르틴 니묄러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도 많은 사람이 대재난과 사건 사고 등을 보면서도 ‘나만 아니면 상관없어.’라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또는 이건 더 절망적인 소식입니다만, ‘체념’하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한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보았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도시에 가면 핵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거나 중지하라는 플래카드를 볼 수 없다고 말입니다. 이유는 일본 국민이 방류를 찬성하거나 좋아해서가 아니라 아무리 반대를 해도 소용이 없기에 체념해 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차피 해도 안 되는걸’ 이런 생각으로 살게 되면, 사람과 사람이 더 단절되고 맙니다. 상생의 길이 아니라 각자도생의 길로 가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더이상 각자도생의 길은 망하는 길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체념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체념은 결과를 염두 하고 있기에 발생합니다. 결과는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기에 체념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는 결과에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을 하면 그만입니다.

지난주까지는 성도님들께 하나님을 열심히 알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와 평화를 원하시기에 이런 삶을 지향하고, 행함이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님들께 이렇게 말을 던져 놓기만 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각 성도님의 형편에 따라 각자 할 수 있는 것을 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당부드립니다. ‘한다고 되겠어?’라는 체념이 아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예수님의 이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구현되어야 할지 성도님들께서 깊이 고민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제 여신도회 동지구회 모임을 오가면서 또 동지구회 모임 장소에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과 타 교회 성도님들의 최대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추석에 무엇을 먹일까?’였습니다. 예배 전에도 이 이야기였고, 예배 후에도 이 이야기였습니다. 예배 중에 이 이야기를 안 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겠습니까? 

나 혼자 먹거나, 배우자와만 먹으면 아무렇게나 먹어도 상관없는데 자녀들이 오고 친척들이 오고 하니 뭘 만들어 먹어야 하나, 만들어 먹는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고민이 많으셨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려고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을 위한 마음이 책임감이든, 사랑이든 마음이 있으니 고민을 하게 되고, 고민이 결국 행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온다는데, 뭘 먹이기는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렇지 않습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삶’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바로 이런 고민입니다. ‘세상이 망해간다는 데, 뭘 하기는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렇지 않습니까?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망해가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코 앞으로 다가왔을 때 예언자들, 믿음의 선배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살려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오늘 저와 성도님들이 절망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을 두고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소리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무엇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우리를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십시오. 이 소리 지름이 우리가 해야 할 고민의 첫 발걸음입니다. “하나님, 우리 좀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나 좀 살려주십시오!’가 아닙니다. ‘우리 좀 살려주십시오!’입니다.

오늘 본문 7절의 말씀입니다. “7 주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주님의 구원을 베풀어 주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도 먼저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와 너의 고통이 너무 커서, 그 고통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저 소리를 질렀습니다.

출애굽기 2:23-25 “그 뒤 오랜 세월이 흘러 에집트의 왕이 죽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역을 견디다 못하여 신음하며 아우성을 쳤다. 이렇게 고역에 짓눌려 하느님께 울부짖으니 하느님께서 그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과 맺으신 계약을 생각하시어 이스라엘 백성을 굽어 살펴 주셨다.”(공동번역)

우리도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그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울거나, 울부짖으려 도와달라고 소리 지를 뿐입니다. 이 소리 지름의 영역이 나와 내 가족을 넘어 ‘우리’로 확장해야 합니다. 세계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리 지름을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도우셨듯, 오늘날 우리도 도우실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과 나를, 나를 통해 하나님과 세상을 잇습니다.

시편 기자는 “7 주님,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 주십시오. 우리에게 주님의 구원을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기도한 뒤 어떻게 말합니까? “8a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내가 듣겠습니다.” 

“우리를 살려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두 손 두 발 다 든 뒤 간절함의 끝에서 우리는 들을 수 있게 됩니다. 즉, 우리 자신을 비운 뒤에야 들을 수 있는 준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든지, 내가 듣겠습니다.’

듣고 행하는 것과 동시에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고백했습니다. “8b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약속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 주님의 성도들이 망령된 데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9 참으로 주님의 구원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가까이 있으니, 주님의 영광이 우리 땅에 깃들 것입니다. 10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11 진실이 땅에서 돋아나고, 정의는 하늘에서 굽어본다. 12 주님께서 좋은 것을 내려 주시니, 우리의 땅은 열매를 맺는다. 13 정의가 주님 앞에 앞서가며, 주님께서 가실 길을 닦을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말씀 아닙니까? ‘진정한 평화를 줄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 기자의 고백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도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희망의 선포를 말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세상을 이어주는 역할을 쉽지 않습니다. 이 잇는 역할을 저와 성도님들이 해야 합니다. 나의 삶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의 삶을 위해 시편 기자처럼 소리 지를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제108회 총회 주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생명 평화 선교 공동체’입니다. 예배를 회복하자는 내용과 회복된 예배의 지향점은 생명, 평화, 선교로 향해야 함을 담은 주제입니다. 우리 교단과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절망으로 향하는 이 땅과 하나님을 이어 생명과 평화가 살아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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