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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들, 희망과 새시대의 초석남겨진 사람들(열왕기상 19,9-18; 유다서 1,17-23)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3.09.21 05:38
▲ Schnorr von Carolsfeld, 「Elijah Kills Prophets of Baal」 ⓒWikipedia

세상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복잡합니다. 삶의 조건과 환경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니 복잡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갈갈이 찢겨진 것과 같지는 않습니다. 조화로운 공존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이유는 각기 다 다르다 할 수 있는 것들을 그래도 어느 정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힘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힘들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의 믿음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어떤 것이든지 시각을 아래로 향하면 차이가 드러나기 때문에 다름이 부각되지만 위로 향하면 공통된 것이 발견되기 때문에 동일성이 강조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하나하나 뜯어놓고 보면 다 다르구나 하겠지만, 묶어놓고 보면 그래도 같은 것이었구나 할 수 있습니다.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공통된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꼭 복잡하고 다른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 수 있고 공동체가 존재하고 유지될 수 있습니다. 공통된 것이 부정되고 차이만 강조될 때는 그 반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통된 것으로 묶을 수 없는 차이들이 있고 그것들이 갈등할 수 밖에 없는 경우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참과 거짓, 정의와 불의 등이나 친일과 애국, 종속과 독립, 맘몬과 하나님 등이 이에 해당할 것입니다. 상대를 부정할 수밖에 없는 대립적인 것들이기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엘리야와 바알 예언자들의 대립도 일차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들의 대립은 권력과의 대립으로 이어졌고, 이 때문에 엘리야는 광야로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도망치는 길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가 줄곧 생각했던 것은 왜 내가 도망쳐야 하는가 였던 것 같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충성된 예언자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히 또 성공리에 마쳤는데, 왜 죽음의 위협을 당하고 도망쳐야 겨우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처지에 놓여야 하는가라는 물음일 것입니다.

그가 동굴 속에 들어간 것도 죽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찾아와 너 왜 여기 있니 하고 물으셨을 때, 나는 특별히 열심히 야훼를 섬겼고 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나만 남았는데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불평합니다. 그래도 차라리 죽게 해달라고 앞서 기도했던 것과 달라 나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달라지지 않는 그에게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해 아람 왕 하사엘과 예언자 엘리사의 칼을 준비하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맞추지 않은 칠천명의 사람들을 남기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미래형이지만 미래를 가리키는 것으로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남기겠다는 것은 지금 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 이상의 사람들이 있어야 칠천명을 남기겠다는 말이 성립됩니다. 그들은 지금도 무릎을 꿇거나 입을 맞춘 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엘리야가 말하듯이 엘리야 한 사람 남았는데 칠천을 남기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 믿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보존하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엘리야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이 드러납니다. 혼자만 남았다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칠천이나 남아 있는데 무슨 말이냐고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이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이어서 그랬을까요? 그들이 엘리야를 직접 편들지 않아서였을까요?

작은 사람들, 엘리야는 그들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나만이라는 독단적 생각과 그 밑에 깔려있는 억울함이 그 원인일 것입니다. 그들을 볼 수 없었던 엘리야는 하나님의 설득에도 자기를 굽힐 수 없었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거대한 속이 아니라 작은 자들 가운데 계셨습니다. 거대한 소리와 현상들이 아니라 작은 소리 속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소리로 작은 자들을 대변하십니다. 힘에 눌려 말 한번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그들 속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남기겠다고 하시는 것은 지금 믿음을 지키고 있는 저들이 그 믿음에 배반당하지 않게 그들을 지키겠다고 하시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지키고 남기시겠다고 하는 작은 사람들! 그들에 의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는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은 그의 역사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저 작은 자들이 있어서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희망입니다. 이들이 하나님께서 새역사를 준비하고 새세상을 여실 충분한 이유입니다. 하나님께 희망을 둔 작은 자들, 이들이 하나님의 희망이고 새시대의 초석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남기실 자들은 지금 남아있는 자들이고 또 하나님께서 지키실 자들입니다.

유다의 짤막한 편지를 받은 공동체도 엘리야 시대의 저 작은 자들과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유다는 이 공동체가 믿음을 지키며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편지를 씁니다. 공동체에 들어온 어떤 사람들 때문에 공동체는 혼란을 겪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공동체가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다가 편지를 써야 했다면 그들로 인한 위기가 장기화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을 방종한 생활의 도구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 등입니다. 도저히 공동체에 들어올 사람들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들어왔고 공동체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들의 영향력으로 보아 그들은 상당한 지위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사랑의 공동식사를 자기 배 채우는 자리로 삼으로써 식탁을 더럽히고 언제나 투덜대고 불평하고 자기네 욕심대로만 사는 자들입니다. 허풍을 떨고 잇속을 챙기기 위해 아첨을 합니다. 욕정을 따라 살며 분열을 일으키는 이들입니다. 신앙적으로나 실천적으로 공동체를 파괴하는 이들에 대해 공동체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유다는 그들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들과는 다르지만 가까이 하지 말며 두려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불쌍히 여기라고 권고하는 부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고귀한 믿음의 터 위에 자기를 세우라고 합니다. 이를 위해 해야 하는 것들이 여럿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를 찝어 성령에 힘입어 기도하라고 권고합니다.

기도는 남겨진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지키는 길입니다. 기도로 우리 믿음의 터가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물라고 권고합니다. 저 어떤 사람들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누구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 머물 수 있게 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그리스도의 자비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희망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물게 합니다.

짤막한 서신 속의 평범한 말들이지만(그리스어 원문을 따라 문장과 문장의 관계를 문법적으로 고려할 때) 그 구절들은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안겨줍니다. 남겨진 자들에겐 믿음의 터를 굳게 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 중요한 두 가지 과제가 될 것입니다. 이 과제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영원한 생명 이르게 할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릴 때 수행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남겨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희망을 이루실 것입니다. 기도와 희망으로 우리의 믿음이 견고해지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우리 사랑의 폭이 더 넓어지고 그 깊이가 더해지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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