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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열매로 알리라“내가 행한 일을 기억하사 복 주소서”(느헤미야 5;14-19)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09.24 22:56
▲ James Dabney McCabe, 「The Rebuilding of Jerusalem」 (1877) ⓒWikipedia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늘 평안을 선택하고 누리시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한 주간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까? 살려달라는 기도는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나의 이웃과 세상을 살려달라는 요청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기도에 하나님은 반응하십니다.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내가 이어지고, 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이웃, 하나님과 세상이 이어짐을 기억하시고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기도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 기도 제목에 우리 교단 총회도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단 총회를 다녀왔기에 잠시 보고를 드리자면, 이번 총회의 주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생명, 평화, 선교 공동체’ 였습니다.

총회 주제 선정 배경도 읽어보고, 주제와 관련된 말씀들도 미리 읽어보고 총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하기에 이런 주제를 어떻게 교단과 교회가 구현해 낼 것인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진행하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회의 안건과 이 안건과 관련된 토의 내용을 들어보면 어떻게 하면 ‘이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내가 ‘이익’을 볼 수 있는가에 온 관심이 집중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대한 무지를 온 총대 앞에서 드러내며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후배로서 이런 선배 목사들의 모습을 보며 낯뜨겁고 부끄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저도 이 범주 안에 포함이 됩니다만, 말씀과 삶, 선포와 삶이 목사님들에게서 괴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던 총회였습니다.

총회를 경험하고 돌아오면서 저를 포함한 목사들이 얼마나 큰 죄를 하나님 앞에 저지르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레미야 25:34-37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백성의 종교지도자, 권력자층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더 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34 백성의 목자, 민중의 우두머리들아 땅에 주저앉아 아우성치며 울부짖어라. 너희가 학살당할 날이 오고야 말았다. 너희는 수양들처럼 흩어지며 쓰러지리라. 35 백성의 목자, 민중의 우두머리들아 너희가 도망쳐도 난을 면하지 못하리라. 36 백성의 목자, 민중의 우두머리들아 아우성치며 울부짖는 소리가 나는구나. 야훼께서 목장을 휩쓰셨기 때문이다. 37 야훼께서 분노를 터뜨리시자 번성하던 목장이 쥐죽은듯 적막하게 되었구나.”(공동번역)

저를 포함한 목사들, 교회의 리더라고 하는 이들이 한 걸음 한 걸음을 조심스럽게 걸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널 수 있는 겸손함이 적어도 우리 교단의 목사들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자신들의 말과 행동이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목자가 되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 느헤미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함께 읽은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총독으로 있으나 녹을 받지 않았고, 총독으로서 공정하게 세금을 물었으며, 자신의 식탁에서 백오십 명이 함께 먹도록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4 나는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에 유다 땅 총독으로 임명을 받아서, 아닥사스다 왕 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 총독으로 있었지만, 나와 나의 친척들은 내가 총독으로서 받아야 할 녹의 혜택을 받지 않았다. 15 그런데 나보다 먼저 총독을 지낸 이들은 백성에게 힘겨운 세금을 물리고, 양식과 포도주와 그 밖에 하루에 은 사십 세겔씩을 백성에게서 거두어들였다. 총독들 밑에 있는 사람들도 백성을 착취하였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이 두려워서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16 나는 성벽 쌓는 일에만 힘을 기울였다. 내 아랫사람들도 뜻을 모아서, 성벽 쌓는 일에만 마음을 썼다. 그렇다고 우리가 밭뙈기를 모은 것도 아니다. 17 나의 식탁에서는, 주변 여러 나라에서 우리에게로 온 이들 밖에도, 유다 사람들과 관리들 백오십 명이 나와 함께 먹어야 했으므로, 18 하루에 황소 한 마리와 기름진 양 여섯 마리, 날짐승도 여러 마리를 잡아야 하였다. 또 열흘에 한 차례씩은, 여러 가지 포도주도 모자라지 않게 마련해야만 하였다. 그런데 내가 총독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녹까지 요구하였다면, 백성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었겠는가!”

느헤미야가 이렇게 부르짖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위 1-5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백성 사이에서 유다인 동포를 원망하는 소리가 크게 일고 있다. 부인들이 더 아우성이다. 2 더러는 이렇게 울부짖는다. ‘우리 아들딸들, 거기에다 우리까지, 이렇게 식구가 많으니,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살아가려면, 곡식이라도 가져 오자!’ 3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울부짖는다. ‘배가 고파서 곡식을 얻느라고, 우리는 밭도 포도원도 집도 다 잡혔다!’ 4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외친다. ‘우리는 왕에게 세금을 낼 돈이 없어서, 밭과 포도원을 잡히고 돈을 꾸어야만 했다!’ 5 또 더러는 이렇게 탄식한다. ‘우리의 몸이라고 해서, 유다인 동포들의 몸과 무엇이 다르냐? 우리의 자식이라고 해서 그들의 자식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그런데도 우리가 아들딸을 종으로 팔아야 하다니! 우리의 딸 가운데는 벌써 노예가 된 아이들도 있는데, 밭과 포도원이 다 남의 것이 되어서, 우리는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귀향한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 남아있던 유다인들을 착취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옆집에서는 자식까지 팔아야 하는 극한의 가난하고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도와주지 않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소식을 듣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6 그들의 울부짖음과 탄식을 듣고 보니, 나 또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즉시 귀족들과 관리들을 불러 모읍니다. 그래서 같은 겨레끼리 돈놀이를 하느냐고 호도게 나무라며 바로 잡아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8 귀족들과 관리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이방 사람들에게 팔려서 종이 된 유다인 동포를, 애써 몸값을 치르고 데려왔소. 그런데 지금 당신들은 동포를 또 팔고 있소. 이제 우리더러 그들을 다시 사오라는 말이오?’ 이렇게 말하였으나, 그들 가운데 대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들에게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9 내가 말을 계속하였다. ‘당신들이 한 처사는 옳지 않습니다. 이방인 원수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거든,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10 나도, 나의 친족도, 그리고 내 아랫사람들도, 백성에게 돈과 곡식을 꾸어 주고 있습니다. 제발, 이제부터는 백성에게서 이자 받는 것을 그만둡시다. 11 그러니 당신들도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과 집을 오늘 당장 다 돌려주십시오. 돈과 곡식과 새 포도주와 올리브 기름을 꾸어 주고서 받는 비싼 이자도, 당장 돌려주십시오.’”

그러자 귀족들과 관리들이 어떻게 응답합니까? “12 그들은 대답하였다. ‘모두 돌려주겠습니다.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않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나는 곧 제사장들을 불러모으고, 그 자리에서 귀족들과 관리들에게 자기들이 약속한 것을 서약하게 하였다.”

그리고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을 느헤미야는 고백합니다. 느헤미야가 먼저 솔선수범을 하였기에 귀족들과 관리들은 수긍하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만약 느헤미야가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권위나 말로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했다면 따랐겠습니까?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레위기 25:35-36 말씀에도 함께 살아가야 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35 너희 동족 가운데, 아주 가난해서, 도저히 자기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너희의 곁에 살면, 너희는 그를 돌보아 주어야 한다. 너희는 그를, 나그네나 임시 거주자처럼, 너희와 함께 살도록 하여야 한다. 36 그에게서는 이자를 받아도 안 되고, 어떤 이익을 남기려고 해서도 안 된다. 너희가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안다면, 너희의 동족을 너희의 곁에 데리고 함께 살아야 한다.”

느헤미야는 말씀을 자신의 생명을 걸고 지켰습니다. 레위기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오늘 본문에서도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함께 하는 이들도 죄를 짓지 않도록 인도했습니다.

이번 총회도 그렇지만 몇천 년 전이라고 돈이 그들의 핵심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니 가난함을 뻔히 알고, 자신의 자녀까지 노예로 팔아야 하는 상황을 알고서도 이자 놀이를 하며 자신들의 배를 불리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이들에게 가진 것을 다시 내놓으라고 하면 가만히 내놓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오늘날 당신들이 부당하게 취한 이득을 내놓으라고, 자신들의 권력을 내려놓으라고 하면 누가 이득을 내놓고, 권력을 내려놓겠습니까? 오늘 5장의 본문은 사실 오늘날은 당연하고 당시에도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입니다.

그럼에도 느헤미야의 말을 들은 귀족들과 관리들이 느헤미야의 말대로 행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느헤미야가 먼저 말한 대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동족들을 아끼고 보호하기 위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사는 삶을 보고서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은 법입니다.

얼마 전 한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노회를 가면서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는데, 어떤 목사님이 아주 좋은 차를 타고 노회에 오셨는데 몇 명의 목사님들이 그 차를 발로 차면서 ‘목사가 이런 차를 타고 다니고 말이야.’라고 하며 차를 타고 온 목사님의 흉을 보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차 주인인 목사님이 나타나자 흉을 보던 목사님들이 허리를 폴더처럼 접으면서 아주 상냥하게 인사하며 굽신거렸다는 겁니다.

아마도 저를 비롯한 목사들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하지만, 자신의 이익과 기득권 유지에만 관심이 있고, 하나님이 아닌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애쓰는 모습 등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느헤미야는 “19 "나의 하나님,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하는 모든 일을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고백합니다.

저는 느헤미야가 자신의 생명을 걸었기 때문에 이런 고백을 하나님께 했다고 믿습니다. 그냥 자신이 할 수 있는 조금 희생하면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 모든 것을 걸고 말씀대로 살려고 했기 때문에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동포, 형제자매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자신의 잇속만을 채우는 모습이 단지 귀족들과 지도자들만의 모습일까요? 우리들의 모습에서도 얼마든지 보고 만날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최선을 다해 불의한 삶이 아니라 의로운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낸 이후에 느헤미야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하는 모든 일을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보시고 은혜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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