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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교단 어느 총대님, 무엇을 원하십니까(성)소수자와 그리스도교 22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 승인 2023.10.13 02:26
▲ 성적지향이라는 단어에 대한 논쟁으로 한국기독장로회 총회가 준비한 제7 문서 채택이 불발되었다. ⓒ이정훈

1.

지난 9월에 있었던, 저도 소속되어 있는 기장 교단의 총회에 참석하셨던 어느 총대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총대님의 성도, 이름도, 하물며 총대님께서 목사이신지 장로이신지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총대님이 총회에서 이런 발언을 하셨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한 총대는 “‘성적 지향’의 차별을 금한다는 내용은 애매하고 반성서적이다. 성서와 우리 헌법 제3장 ‘인간과 죄’에도 ‘사람은 남녀로 창조됐다’고 돼 있는데 이를 위반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비슷한 이의제기를 하신 총대님이 몇 분 더 있으셨기 때문인지, 이 총회에서 채택될 예정이었던 기장 교단 제7문서가 초안에 저 성적 지향이란 용어를 담았다는 이유로 채택이 보류되고 임원회로 넘어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총대님의 저 발언을 읽고 이 글의 제목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총대님. 대체 무엇을 원하십니까. 물론 총대님이 제7문서에서 성적 지향이란 용어를 빼기를 원하신다는 거야 당연히 알겠으니 그거에 관해서 질문드리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질문드려야 되겠다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성적 지향의 차별을 금한다는 게 ‘반성서적’이라고 생각하신다는데, 그게 ‘반성서적’인지 아닌지는 일단 제쳐 두고라도, 성적 지향의 차별을 금한다는 내용을 빼자는 말씀은 대체 무엇을 원하셔서 하신 말씀입니까.

2.

성적 지향의 차별을 금한다는 내용을 빼자라고 한다면 이 말의 의미로 당장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이런 말이 될 겁니다.

‘성적 지향의 이슈로는 차별해도 된다.’

총대님. 설마 이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까? 총대님이 기장 교단의, ‘개독교’ 소리 듣는 게 익숙한 한국 교회에서 그나마 낫다는 교단의 총대가 아닌 그냥 일반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아니 그냥 일반인이라도 하더라도, 어떤 이유가 있다면 사람이 사람을 차별해도 된다는 말씀을 하신 겁니까? 그건 설마 아니겠지요?

그렇다면 혹시 이런 뜻이신 겁니까? 성적 지향이란 건 실제 존재하는 게 아니라서 거기에 관련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성적 지향의 이슈로 차별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그런 내용은 빼도 된다 혹은 빼야 된다고 말씀하신 겁니까? 그런데 설마 그러셨을 리도 없는 것이 성적 지향에 관련된 사람들, 이른바 성소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버젓이 있지 않습니까.

동성애자라고 하든, 트랜스젠더라고 하든, 양성애자라고 하든, 그냥 퀴어라고 하든 간에,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자신의 삶의 중요한 속성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지요.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를 차별하는 것은, 예를 들면 그 동안 한국 사회에서 전라도 사람들을 차별해 온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어떤 이유가 있다면 사람을 차별해도 된다는 말도 아니고, 성적 지향에 관련된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라면, 총대님의 말씀은 이제 다음과 같은 뜻이 되는 겁니까? 성적 지향 운운하는 성소수자라는 사람들은, 성적 지향이란 것이 존재한다고 속고 있거나, 성적 지향이란 것이 존재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하다는 뜻입니까? 혹은, 속고 있는 것도 아니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더라도, 그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치는 집단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에 대한 대우는 차별이란 용어를 개입시켜 다룰 것이 아니란 뜻입니까?

이런 뜻이시라면 이건 성소수자 집단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가 아닐 도리가 없을 겁니다. 이런 혐오를 하면서 소위 “사랑하니까 반대한다”는 말을 한다면 (그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건 둘째 치고라도) 거짓말이 될 수밖에 없겠구요.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한다는 건 이런 혐오를 하지 말자는 뜻일 텐데, 그게 반성서적이라고 하셨으니 이런 혐오를 하는 게 성서적이란 뜻도 되겠군요.

성서적이라는 명분이 어떤 집단을 혐오하는 걸 가능하게 한다면, 그리고 “사랑하니까 반대한다”는 어불성설이자 거짓말인 말까지도 정당화한다면, 그런 의미에서의 ‘성서적’이야말로 반성서적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한국 교회의, 그리고 세계 교회의 한 몸을 같이 이루고 있는 성소수자 신자들을 혐오한다는 이야기도 동시에 되니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해치는 일이 된다는 말까지도 할 수 있겠구요.

3.

총대님. 지금까지 이 글을 읽으시면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글을 기독교 신자의 지평에서만 썼습니다. 신자와 비신자가 함께 사는 동료 시민의 지평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 지평에서라면 특정한 시민 집단에 대해서 속고 있다느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느니,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지는 집단이라느니 혐오를 하는 것 자체가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일일 터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 전제해 놓고 이제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립니다. 사회적으로 질문과 대답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권력과 정당성의 문제와 관련되는 경우가 많지요. 말하자면 사회적인 질문이라는 게,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이미 추인받은 입장에서 질문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당신이 하는 말도 정당하다고 인정해 주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지금 여기, 성적 지향과 관련한 부분으로 끌고 오면, 총대님 같은 분은 동료 시민의 지평에서는 당연히 질문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 대답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될 겁니다. 성적 지향을 왜 차별금지 이슈에 넣어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입장이 아니라, 왜 빼야 하는지를 대답하는 입장이 되어야 할 거라는 말입니다.

혹시 신자의 지평에서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입장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앞에서 살펴 본 ‘반성서적’ 이야기라든가 교회를 해치는 일 이야기 등을 생각하면 여기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성적 지향이 왜 차별금지 이슈에서 빠져야 하는지 총대님 같은 분이 대답을 하셔야 할 거라는 말입니다. 신자의 지평에서도요.

물론 저는 총대님 같은 분이 동료 시민의 지평에서건, 신자의 지평에서건, 대답을 하신다고 해 봤자 성소수자에 대한 공공연한 혐오 외에 다른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사실상 대답을 안 한 것이나, 아니 못 한 것이나 다름없을 겁니다.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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