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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내가 아니다“말씀이 우리 삶의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신명기 6:1-9)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10.16 00:58
▲ 솔로몬이 완성한 성전 상상도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우리가 평안하지 못하다면 어떤 이유 때문이겠습니까? ‘괜찮아, 다 잘 될 거야.’와 같은 긍정적인 마음이나 믿음이 우리에게 없어서입니까? 아닙니다. 삶이 내 뜻대로만 흘러가기를 바라기 때문에, 평안하지 못하고 불안하고 두려워합니다.

사택에 와보신 성도님들은 아시겠지만, 거실 창문을 열면 바다가 시원하게 보입니다. 처음 사택에 왔을 때, 바다를 보면서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다를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이유는 사택 건너편으로 건물이 없는 공터이기 때문입니다. 사택 앞을 제외하고는 다른 곳에 다 건물이 있습니다. 사택 앞에만 건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감동하면서도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공터에 건물이 올라가면 안 되는데.’

만약 제가 거실 창문을 열 때마다 바다를 보며 감동하기보다 ‘아… 저 공터에 건물이 올라가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만 하며 안절부절, 불안해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겠습니까? 오히려 창문을 여는 게 고통이 될지 모릅니다.

이처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마치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거나 내 뜻대로만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을까 불안해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함으로 평안을 누리려 하면 할수록 더 깊은 불안과 두려움에 빠질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외부에 시선을 둘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내 안에 주어진 완전한 평안으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성령님께 평안을 요청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그 순간 저와 성도님들이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이 평안을 언제나 선택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창립 40주년을 맞으며, 성도님들께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지 몇 주간을 고민했습니다. 고민 끝에 우리 교회가 지금 집중하고 있는 흐름에 맞는 설교를 하면 되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교회가 올해 무엇에 집중하고 있습니까? 성경 필사와 매일 말씀 묵상하기입니다. 말씀을 읽고 쓰며 말씀이 중심이 되는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당연하고도 단순한 신앙생활이 잘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며 40주년을 맞아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말씀이 중심되는 삶, 말씀을 살아내는 삶을 사는 초도제일교회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종살이하던 이집트 땅에서 출애굽 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였습니다. 이제 강 하나를 넘어가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를 통해 광야에서 태어난 신세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광야 생활을 회고하며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을 여러 차례의 긴 설교를 통해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이 긴 설교가 신명기이며, 오늘 본문은 이 신명기 내용의 일부입니다. 함께 읽은 오늘 본문은 신명기의 핵심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셨습니다.

“1 이것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가르치라고 나에게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입니다. 당신들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이것을 지키십시오. 2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경외하며, 내가 당신들에게 명한 모든 주님의 규례와 법도를 잘 지키면, 당신들과 당신들 자손이 오래오래 잘 살 것입니다. 3 그러니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이 모든 말을 듣고 성심껏 지키면, 주 당신들 조상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당신들이 잘 되고 크게 번성할 것입니다.”

단순한 내용이지 않습니까? ‘내가 당신들에게 명한 모든 주님의 규례와 법도를 잘 지키십시오.’입니다. 모세는 반복해서 말합니다. ‘이 모든 말을 듣고 성심껏 지키십시오.’ 그러면 당신들은 잘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은 가나안 땅 앞에 섰던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많은 성도가 말씀을 하나의 견해로 보는 듯합니다. ‘아~ 성경은 이렇게 말하는구나. 다른 사람은, 다른 인터넷에서는 어떻게 말하지?’ 말씀이 하나의 다른 견해에 불과하기에 말씀을 자기의 취향에 따라 지키게 되었습니다.

또는 어떤 성도들은 성경을 부적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부적처럼 여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말씀을 읽고, 묵상하지 않고 가지고만 있어도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이스라엘 백성들도 했습니다. 사무엘상 4장을 보면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사천 명의 전사자를 기록하며 크게 패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에서 패한 후 고민합니다. ‘우리가 왜 전쟁에서 졌을까?’ 그러다 이런 고백을 합니다. “3 이스라엘의 패잔병들이 진으로 돌아왔을 때에, 장로들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가 블레셋 사람에게 지도록 하신 까닭이 무엇이겠느냐? 실로에 가서 주님의 언약궤를 우리에게로 모셔다가 우리 한가운데에 있게 하여,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하여 주시도록 하자!’”(사무엘상 4:3)

언약궤를 들고 오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앞세워 블레셋 사람들과 다시 전쟁합니다. 전쟁의 결과가 뒤바뀌었겠습니까? “10 그런 다음에 블레셋 사람이 전투에 임하니, 이스라엘이 져서 제각기 자기 장막으로 달아났다. 이스라엘은 이 때에 아주 크게 져서, 보병 삼만 명이 죽었다. 11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이 때 전사하였다.”(사무엘상 4:10-11)

하나님이 임재하는 언약궤만 있으면 전쟁에서 100% 승리하리라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놓친 것이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언약궤 때문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였다는 사실입니다. 전쟁의 승리는 이런 언약궤와 같은 물건이나 하나님을 소유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만이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런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십자가 목걸이를 두른다고 해서, 차에 십자가를 걸어둔다고 해서, 성경책을 신주 단지 모시듯 한다고 해서 은혜를 입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신앙의 겉멋이 아니라 삶에서 치열하게 말씀을 살아내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성전을 지어 하나님이 그 장소에 계시도록 하려는 다윗에게 성전이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며, 내가 언제 그런 집이 필요하다고 말 한 적 있느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지어 하나님을 소유하려고 했습니다. 성전만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는 좋은 날만 있을 것이라는 헛된 꿈을 꾸었습니다.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성전이라는 건물을 의지하며 불순종하자 하나님은 직접 바벨론을 통해 성전을 파괴해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8:19-20 “내가 [진정으로] 거듭 너희에게 말한다. 땅에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건물이 아니라 보이는 어딘가에 나타나시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두세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하나님은 계시며, 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모세는 오늘 본문 4절 이하에서 전심으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4 이스라엘은 들으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5 당신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고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고린도전서 6:12-13 “누구나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해서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과연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자유가 있읍니다. 그러나 나는 그 무엇에게도 얽매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이것도 저것도 다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 몸은 음행을 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몸을 돌보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너희 몸이 성전이다.”

계속해서 고린도전서 6:19-20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의 성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은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모시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바울은 인생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우리 인생의 목적이라고 말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한다는 건, 우리의 몸으로 최선을 다해 말씀을 살아내는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오늘 본문에서 모세는 끊임없이 말씀을 보고 또 볼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권면합니다. “6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7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십시오. 8 또 당신들은 그것을 손에 매어 표로 삼고, 이마에 붙여 기호로 삼으십시오. 9 집 문설주와 대문에도 써서 붙이십시오.”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에 어떤 말씀이 적혀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알기 위해서 스스로 최선을 다해 방법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름길은 없습니다. 단순한 방법이지만 매일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살아내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내 삶에 길잡이가 되고,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내 뜻대로 살아가는 삶이 아닌, 하나님이 가리키시는 방향으로 삶이 향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말씀이 우리 삶에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은혜 받고, 말씀을 살아냄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읽은 교독문은 헌당 예배 때 읽는 교독문입니다. 교회 건축이 끝났을 때 드리는 감사와 다짐의 예배. 건물이 완공되고 일체의 부채(빚)를 정리한 다음 온 교회가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충성을 다짐하는 것이 헌당예배입니다. 40주년을 맞아 우리가 예배당을 헌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이는 건물이 아닌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헌당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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