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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필요하다면“나를 통해 이곳을 축복하소서”(열왕기상 4:20-30)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3.10.23 03:26
▲ 무너진 이스라엘 사회에서 느헤미야의 삶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Getty Image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우리가 만약 평안하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 등 외부적인 조건들에 ‘모든’ 삶의 목적과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런 외부적인 조건들에 많은 관심을 쏟으며 살아갈 때 우리는 성도답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내 뜻과 상황을 말하거나 바꾸려고만 하게 됩니다. 이런 신앙생활은 잘못된 방향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나 또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는 헛된 종교 생활이나 자기만족만 하는 헛된 종교 생활이 될 뿐입니다.

외부가 아닌 내부, 나의 안으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이미 우리 안에 완전한 평화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습니다. 이 평화를 선택하고 누리셔야 합니다. 이 평화를 누릴 때 성도는, 성도라는 이름에 맞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평화를 언제나 선택하고 누리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난주 느헤미야라는 인물을 통해 성도가 하나님께 축복을 구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이 축복은 나 자신을 넘어 타인에게로 그리고 공동체로 흐르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하는 모든 일을 기억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느헤미야 5:19)

하나님께 축복을 구하려거든 먼저 타인과 공동체를 향한 애타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애타는 마음을 가질 때 그들을 위해 “살려달라”는 중보기도를 하게 되고, 결국 기도를 넘어 타인과 공동체를 향한 사랑의 행위를 하게 됩니다. 이 사랑의 행위를 통해 성도는 하나님께 축복을 구하는 기도가 가능해집니다.

느헤미야가 동족을 위해 헌신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의무감 때문이었습니까? 자신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였습니까?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울부짖음과 탄식을 듣고 보니, 나 또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다.”(느헤미야5:6) 느헤미야는 동족이 처한 상황, 동족의 탄식과 울부짖음을 듣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놀랍게도 느헤미야 한 사람으로 인해 질서도 없고, 엉망이었던 예루살렘이 바뀌었습니다. 느헤미야 한 사람의 기도, 느헤미야 한 사람의 헌신, 느헤미야 한 사람의 사랑으로 사람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공동체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도 그렇습니다. 단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한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결단하자 온 백성이 평안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은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린 영화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다시 읽어드리겠습니다.

“20 유다와 이스라엘에는 인구가 늘어나서, 마치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사람이 많아졌지만, 먹고 마시는 것에 모자람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잘 지냈다. 21 솔로몬은 유프라테스 강에서부터 블레셋 영토에 이르기까지, 또 이집트의 국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왕국을 다스리고, 그 왕국들은 솔로몬이 살아 있는 동안, 조공을 바치면서 솔로몬을 섬겼다. 22 솔로몬이 쓰는 하루 먹거리는 잘 빻은 밀가루 서른 섬과 거친 밀가루 예순 섬과 23 살진 소 열 마리와 목장 소 스무 마리와 양 백 마리이고, 그 밖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진 새 들이었다. 24 솔로몬은 유프라테스 강 이쪽에 있는 모든 지역 곧 딥사에서부터 가사에 이르기까지,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모든 왕을 다스리며, 주위의 모든 민족과 평화를 유지하였다. 25 그래서 솔로몬의 일생 동안에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유다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기의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았다. 26 솔로몬은 전차를 끄는 말을 두는 마구간 사만 칸과 군마 만 이천 필을 가지고 있었다. 27 그리고 솔로몬의 관리들은 각자 자기가 책임진 달에, 솔로몬 왕과 솔로몬 왕의 식탁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부족하지 않게 먹거리를 조달하였다. 28 또한 군마와 역마에게 먹일 보리와 보리짚도 각각 자기의 분담량에 따라서, 말이 있는 곳으로 가져 왔다. 29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과 넓은 마음을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한없이 많이 주시니, 30 솔로몬의 지혜는 동양의 어느 누구보다도, 또 이집트의 어느 누구보다도 더 뛰어났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백성의 수가 많아지고, 먹고 마심의 모자람이 없고, 이웃 나라들과 평화를 이루며 살았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력, 무력, 재력, 정치력 등이 이들이 누린 평화의 이유였습니까? 성경은 어느 한 군데서도 그렇게 기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에 이들이 평화를 누렸다고 기록합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욕망을 구하지 않고, 겸손하게 듣고자 하며, 타인을 향한 섬김의 마음을 하나님께 표현했을 때 하나님은, 구한 그 한 사람에게뿐 아니라 그 한 사람을 통해 많은 이들이 평안할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성경은 한 사람의 변화, 한 사람의 영향력에 관해 많은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한 사람에 관한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해 온 세상이 구원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바울 한 사람으로 인해 이렇게 열린 구원의 길이 구체적으로 이방인에게까지 흘러갔습니다.

어제 “추석날 ‘땅 문제’로 조카 얼굴에 흉기를 휘두른 70대 검거.” 소식을 뉴스로 접했습니다. 흉기를 휘두른 70대, 흉기를 맞은 조카만으로 이 사건의 영향력이 끝나지 않습니다. 이들의 온 가족에게 넓게 그리고 길게 이어질 좋지 않은 영향력입니다.

우리는 흉기를 휘두른 70대도 될 수 있고, 솔로몬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70, 80대가 될 때까지도 우리 안의 끝없는 욕망을 추구한다면 언제라도 흉기를 휘두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중심이 아닌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중심에 두고자 한다면 솔로몬처럼 될 수 있습니다.

‘성도로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이런 고민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근래에 저에게 많은 영감을 준 책 한 권이 있습니다. 일본인 저자 텐도 아라타가 쓴 <애도하는 사람>입니다.

애도하는 사람은 죽은 자를 위해 슬퍼한다는 의미의 제목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한 젊은이는 자신의 과거에 있었던 죽음들에서 죽음이 기억되지 못하고, 잊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타인의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하며 다니게 됩니다.

그런데 이 애도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모습이 있었습니다. 선과 악을 따지지 않고 죽은 사람을 애도했으며, 죽은 이와 관련해서 애도할 때는 “누구에게 사랑받고, 또 누구를 사랑했는지, 어떤 일로 누가 그분에게 감사를 표했는지 아십니까?”(49페이지)를 묻고, 기억한 뒤에 애도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사람을 애도하고 있어요. 죽는 순간, 그저 숫자가, 유령이 되어버리고, 가까운 사람을 제외하면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았는지 잊어버리는데, 이 남자는 죽은 자가 지나온 삶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습니다. 그 인물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소박하게나마 기리고 있습니다.”(566페이지)

“죽은 아주머니가 특별한 사람이었어요? 그냥 평범한 주부라고 들었는데.”, “그래요, 특별한 사람입니다. 평범한 주부란 없답니다. 일반 시민일 뿐인 사람도 없답니다. 특별한 사람이 죽었답니다.”(616페이지)

소설의 주인공, 애도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특별하게 여기고, 악과 선을 따지지 않고 선의로 죽은 자들을 애도했습니다. 이런 모습에 많은 이들이 위로받았다고 소설은 기록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마태복음 5:43-48의 예수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43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 46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너희가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리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자매들에게만 인사를 하면서 지내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이방 사람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책을 읽으며 그리고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모든 이들을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를 통해 이곳에 축복이 흐르게 하소서.’라고 어디서든 기도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휴가로 일본 여행을 가면서 처음으로 일본 국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보자마자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불편한 마음을 축복으로 돌리고자 일본과 제가 있는 곳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정화의 기도였습니다. 이들의 마음과 삶이 더욱 정의로울 수 있기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이 될 수 있기를,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며 바로잡을 수 있는 용기가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일본의 큰 실수 즉,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를 하는 이런 중차대한 시기, ‘아, 이런 시기에 내가 이곳을 잘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을 향해 원망하거나 저주만 했을 텐데, 오히려 일본을 위한 기도를 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축복하는 사람으로, 이런 성도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더 깊이 각인하고 온 시간이었습니다.

타인을 위해 “살려달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 목숨을 걸고 타인을 살리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 겸손함으로 하나님 축복의 통로가 되어 타인을 복되게 하는 사람이 오늘까지 포함해 지난 3주간 드린 말씀입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성도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어떤 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기도하고 살아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로 인해 많은 것이 변합니다. 나로 인해 많은 이들이 사랑과 축복을 경험케 됩니다. 우리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느헤미야처럼, 솔로몬처럼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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