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교계·교회 인터뷰
“정말 야훼가 다 죽이라고 명령했을까?”곽건용 목사가 말하는 ‘야훼’와 ‘구약성서’ 그리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정체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 승인 2023.10.29 01:02
▲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구약을 공부한 곽건용 목사는 이번 책에서 현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구약성서의 난제들을 풀이해 보려고 노력했다는 설명했다. ⓒ홍인식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또 전쟁을 벌이고 있다. 둘 사이에는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번 전쟁은 규모가 커서 사람들의 걱정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관련국들과 국제기구가 중재에 나섰지만 좋은 결과를 낳을지는 확실치 않다. 이 분쟁의 뿌리는 매우 깊다. 정교분리가 현대사회의 원칙이지만 중동국가들에게는 종교가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도 그런 나라에 속한다.

두 나라 간의 분쟁이 본격화된 때는 1948년에 시온주의자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했던 때다. 이스라엘이 느닷없이 몰려 들어와 깃발 꽂고 나라를 세웠으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성서가 원인이다?

종교가 국가와 손잡으면 이데올로기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유대교는 이스라엘이란 나라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경전인 구약성서(유대인은 ‘타낙’이라고 부른다)에 따르면 야훼 신이 지금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해서 거기 살라고 이스라엘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그 땅은 빈 땅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헷 족과 기르가스 족과 아모리 족과 가나안 족과 브리스 족과 히위 족과 여부스 족이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 구약성서 여호수아서는 야훼가 남녀노소 불문하고 그들을 모조리 죽이고 그 땅을 차지하라고 명령했고 이스라엘은 그 명령을 그대로 실행했다고 적었다.

이 이야기에는 역사성과 윤리성,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역사성 문제는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고, 윤리성 문제는 어떻게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이 종족말살을 명령할 수 있냐는 데 있다. 성서학자들은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다양한 답을 내놓았는데 대부분 성서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변증적이고 호교적 성격이 강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스라엘과 필레스타인 전쟁과 연관되어 기독교인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책이 발간되었다. 미 국로스엔젤레스에서 목회하며 구약을 연구하는 곽건용 목사가 쓴 “정말 야훼가 다 죽이라고 명령했을까?”(꽃자리)가 화제의 책이다.

이 책은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답변들과는 다른 답을 내놓는다. 곽건용 목사는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생산한 세대가 왜, 어떤 목적으로 그렇게 서술했는지를 텍스트를 근거로 해서 개연성을 갖고 추정한다. ‘추정’해야 하는 이유는 근거가 충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저기에 다양하게 흩어져 있는 조각들을 맞춰보면 저자의 추정에는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그 동안 이 이야기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크게 둘로 나뉜다. 야훼 신이 그렇게 명령했다고 하니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학자들과 반대로 역사적으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이 이야기는 픽션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로 나뉜다.

저자는 둘 다 문제라고 본다. 전자는 맹목적이어서 문제이고 후자는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성서가 그렇게 서술하기 때문에 그걸 읽는 신자들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문제다. 저자는 그 동안 학자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왔는지를 살펴보고 자신의 답을 내놓았다.

이스라엘의 반성의 산물

이 책은 여호수아서가 전하는 가나안 정복 이야기가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쓰였는지를 살펴보고 그것이 그 세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떤 기능을 했는지를 추정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오늘날에는 어떻게 읽고 이해하고 적용해야 할지를 묻고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가나안 정복 이야기의 비윤리성에 곤혹스러워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책의 내용 가운데 매우 흥미로운 부분을 소개해 본다.

“구약성서에는 현대인이 이해할 수 없고 수긍할 수도 없는 내용이 많다. 그 중 가장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 야훼가 가나안 일곱 종족을 남녀노소 막론하고 모두 죽이라고 명령했고 이스라엘이 그대로 실행했다는 얘기다. 구약성서가 특정 종교의 ‘경전’이 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유대교나 기독교에 호의적인 사람도 이 이야기는 수긍하기 어렵다.

헤렘이 뭘까? 정말 가나안 종족을 말살하라는 명령일까? 이스라엘에만 있던 독특한 관습일까, 아니면 고대중동문화권에서 널리 퍼져있던 관습일까? 구약성서에서 헤렘은 동사와 명사로 모두 51회 사용됐는데 그 중 31회는 신명기-열왕기하에서 사용됐다. ‘헤렘’은 번역하기 힘든 단어다. 우리말로는 한 단어로 옮기기도 어렵다. ‘헤렘’은 정복 전쟁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단어로서 문맥에 따라서 다양하게 사용됐으므로 문맥을 살펴서 의미를 따져야 한다.”

저자는 이렇게 질문한다. “숨 쉬는 것은 하나도 살려두지 말라고?” 그리고 이렇게 답한다. “숨 쉬는 것은 하나도 살려두지 말라는 명령은 모두 다섯 번 나온다. 일종의 전쟁교본과 같은 신명기 20장 16-18절,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 남쪽 지역을 정복했을 때 한 번(10:40), 북쪽 지역을 정복했을 때 두 번(11:11, 14), 그리고 바아사가 여로보암 가문 사람들을 몰살했을 때 한 번(열왕기상 15:29)이 전부다. 하지만 이 모든 경우, 실제로는 사람 포함, 숨 쉬는 것 모두가 죽지는 않았다. 가나안 남쪽 지역과 북쪽 지역에 살던 주민 모두가 죽지는 않았다. 여로보암 가문도 대가 끊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니 숨 쉬는 것은 하나도 살아남지 않았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의도적인 과장으로 봐야 한다.”

에큐메니안이 한국을 방문 중인 저자 곽건용 목사를 만났다.

어제의 책이 아니라 오늘의 책이야

▲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그동안 구약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교회 목회를 하면서 교인들에게 성경에 있는 내용을 가능한 한 있는 그대로 잘 설명하고 가르쳐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교회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이야기들이 나온단 말이죠. 현대인의 윤리 감각하고는 맞지 않는 이야기들은 아무도 다루려는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그중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이야기는 ‘다 죽여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다 죽여라’라는 명령이란 말이에요. 그 명령을 야훼 하나님이 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걸 그대로 실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읽는 기독교인들은 참 난처해하면서도 과연 하나님이 그렇게 명령을 했다 했까? 과연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 그런 명령을 했을까라는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렇게 쓰여 있으니 아니라고도 말할 수 없는 그런 입장이잖아요. 거기에 대해서 만족할 만하고 설득이 될 만한 대답을 못하는 경우들이 많아요. 그런데 실제로 그 이야기 가난한 정복 이야기가 어떤 성격의 글인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서술돼 있는지를 학자들이 설명을 다 해 놓았지만 그 내용을 접할 수 있는 목회자나 교인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알기 쉽게 소개하겠다는 뜻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교인들에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실제로 벌어졌는지 그리고 왜 벌어졌다고 서술돼 있는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이 책을 썼습니다.

▲ 그런데 정말 야훼가 ‘다 죽이라고 명령했나요?’(웃음)

(웃음) 한마디로 얘기하기 힘들겠고 두 마디로 얘기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야훼 하나님이3200년 전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런 명령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어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그렇게 명령했다고 믿었던 겁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그런데 저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명령을 받았다고 생각한 것도 그렇게 믿게 된 것도 후대의 일이라는 얘기예요. 기원전 7세기 말인데 그때 생각한 겁니다. ‘우리가 그때 그런 명령을 받았었다. 그러나 그렇게 못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지경이 됐다.’ 이렇게 신학적인 반성을 하게 된 거죠. 신학적인 반성을 하게 된 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생각해낸 것이 ‘헤렘’이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실행 못했다. 말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못했다.’라고 생각하게 된 거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훨씬 나중에 만들어진 과거를 신학적으로 회고하면서 그때 그랬어야 되는데 그렇게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런 야훼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다. 그래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고 완전 망했다고 본 겁니다.

현대인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이런 명령을 내렸을 리가 없다.’라고 믿을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가 갖고 있는 자료만 가지고 판단해 본다면)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야훼로부터 그런 명령을 받지 않았다’라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입니다.

그 당시 상황에서는 그렇게 해석을 하지만 오늘의 삶에서는 다른 해석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미국 대통령 부시기 ‘중동 전쟁을 일으키면서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듯이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중동에 쳐들어가라는 계시를 받았다’는 듯이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그거 다 가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명령을 ‘21세기를 사는 우리들한테 내릴 리가 없다. 그런 명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 가짜’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오늘의 시대에서 그렇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 곽건용 목사의 『정말 야훼가 다 죽이라고 명령했을까?』 (꽃자리, 2023)

▲ 어리석은 질문 같지만, 오늘 진짜 야훼로부터 그런 명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행해야 하나요?

(웃음) 안타깝게도 그런 사람들이 사람들이 있어요. 지금도 있습니다. 지금도 살아있어요. 그들은 “명령을 이행해야 된다 이행해야 된다. 야훼가 명령했다면 그렇게 해야 된다.”라고 지금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한테 이렇게 되묻곤 합니다. “야훼가 명령했는지 어떻게 압니까?” ‘헤렘’ 명령은 백보 양보해서 성경에 그렇게 써 쓰여 있으니까 그렇다고 치지만 지금 21세기에 그런 명령을 받았다면 당사자의 주관적인 경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주관적인 경험의 객관적 타당성을 어떻게 입증하겠습니까. 저는 입증 못한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그렇게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인 윤리의식과 도덕심 그 후에 신앙적 그리고 비폭력 저항의 전통 등등과 연관하여 판단을 해야지 그저 ‘옛날에 그렇게 명령했으니까 지금도 얼마든지 반복할 수 있다.’라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도 한국도 갈 길을 잃어버렸다

▲ 책이 발간된 시기가 묘합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책을 발간했는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탄인이 전쟁을 하고 있는 순간입니다. 책 발간과 묘하게 접촉점을 이루고 있는데 한국교회는 대부분 이스라엘 편에 서 있어요. 미국 정부도 이스라엘 편에 서 있고요. 말할 것 없이 기독교인들은 특별히 이스라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명령을 이런 식으로 이해를 하고 있는데 이때 마침 이 책이 발간됐어요.

이 책을 준비한 것은 한 6~7년 전부터입니다. 지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그런 일이 아직까지 분쟁이 많았지만 지금같이 이렇게 상당히 대규모의 전쟁이 일어날 것은 생각도 못했죠.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겁니다. 한마디로 얘기해서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이스라엘과 지금 유대인은 다른 나라입니다. 그다음에 지금 아랍 사람, 팔레스타인 사람하고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지금 가나의 일곱 족속은 전혀 다른 종족이에요. ‘둘 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똑같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우리 믿음의 조상이라고 그러면서 본받아야 할 사람처럼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팔레스타인 사람들하고 옛날에 가나안 일곱 족속하고 똑같은 족속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들을 적대시할 이유가 없어요. 어떤 상황에서 지금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지 분쟁이 왜 벌어졌는지 누가 책임이 있는지 이런 거는 면밀히 따져봐야 되지. 지금부터 3천 년 전 얘기를 끌어들여가지고 그냥 같이 판단해버리는 건 잘못하는 것입니다.

▲ 매년 한국을 방문하시기는 하지만 한국을 떠나신지 오래 되었잖습니까? 다시 말하면 한국 교회 목회현장에서 오래동안 멀리 떠나 계셨는데, 멀리서 보시는 한국 교회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시죠.

한국을 떠난지 벌써 30년이 됐어요. 이런 이유로 제가 한국교회를 아는 폭이 좁기 때문에 제가 전반적으로 뭘 판단한다는 것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단편적으로 느끼는 것을 말씀 드릴 수는 있어요.

제가 느끼는 것은 이렇습니다. 그러니까 예전의 한국교회는 상당한 존재목적 의식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교회가 ‘우리는 무엇을 한다.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 우리 교회가 왜 여기 존재하고 있는가’를 물었고 작은 교회이건 큰 교회이건 ‘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있다.’라고 믿고 그다음에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일을 추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간접적 혹은 단편적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한국교회가 목적 의식이 많이 흐려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이런 것은 해야 된다.’ 혹은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다.’라는 이런 의식이 많이 약해지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교회 뿐만 아니라 미국 교회와 유럽 교회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거의 비슷한 현상들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한국교회보다 훨씬 더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고요. 미국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미국 교회를 더 이상 한국교회가 본받아야 할 점이 없다고 생각해요. ‘아예 거기는 쳐다보지 말아야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유럽교회는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는 그런 형편이거든요. 그런데 한국교회는 아직은 그렇지 않아요. 그런데도 한국 교회는 여전히 미국 교회를 바라보고 미국 신학자들의 신학을 여전히 따라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합니다.

신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에요. 신학이라고 하는 학문이 한국 사람에게는 새로운 학문이고 전통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고 그러니까 초기에는 외국의 신학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많이 배웠죠. 그런데 지금은 좀 얘기가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서양 신학을 이제는 우리 것을 할 만큼은 배웠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 형편에 맞는 우리 신앙과 우리의 성서 해석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해요.

▲ 오랜 시간동안 인터뷰에 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에큐메니안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저는 에큐메니안은 기독교 언론 중에서도 독특하고 그리고 매우 소중한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적 담론을 꾸준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추구하는 것을 보면서 감탄을 합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정진해 주실 것을 제작진들에게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 에큐메니안을 귀중하게 생각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저의 인터뷰와 책을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한국을 방문 중인 곽건용 목사를 초청해 순천서남교회와 순천 NCC가 북 토크를 진행한다.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