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chelangelo, 「David and Goliath 02」 (1506) ⓒWikipedia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 어디서나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그 사건 자체가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둘 사이의 현격한 차이만 강조하는 일종의 비유로 사용됩니다. 세계적인 비유의 껍데기를 넘어 그 속에 들어있는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것은 요즘 같은 세상에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같은 양상이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종과 국경의 차이를 넘어 세상의 많은 다윗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일으키셨던 사건을 오늘 다시 일으키시기를 기도합니다.

골리앗 군대가 신생 이스라엘을 유린하고 있을 때 다윗은 전쟁에 나간 형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우연히 전쟁터에 가게 됩니다. 징집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니까 다윗은 아직 20세 미만의 청년이었습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전쟁터에 이르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골리앗 앞에서 도망치는 이스라엘을 보았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에 따르면 골리앗을 이기는 자에게는 포상이 걸려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상금 외에도 왕의 사위가 되고 집안의 세금을 면제하는 것이 포상의 골자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출세가 보장됩니다. 그 내용을 다윗이 재차 확인하는 걸 보면 다윗도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때 한 말 가운데 사람들이 하는 말과 다른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골리앗 앞에서 겪는 이스라엘의 치욕을 이야기하는데, 다윗은 거기서 한걸음 더나아가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가 당하는 치욕이란 말을 덧붙입니다. 작은 말 한마디지만 다윗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골리앗 앞에서 도망치는 액면 그대로의 이스라엘만 보았을 수 있습니다. 그 너머에는 하나님의 군대로서의 이스라엘이 있었지만, 다윗만 이를 보았습니다.

다윗의 이 말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우선은 그의 형에게서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 다윗은 교만한 놈인 동시에 전쟁을 구경하는 놈입니다. 이것은 골리앗 앞에서 기가 죽어 도망치는 자신들을 다윗이 비웃는 것처럼 받아들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군대 갈 나이도 안된 어린 자에게 그런 말을 듣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다윗을 잘 아는 형이기에 쉽게 그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울에게 이런 자가 있다고 보고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때문에 다윗은 사울의 허락과 지원을 받고 골리앗과 맞서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은 다윗이 말한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가 무슨 의미였는지 보여줍니다. 거인 골리앗과 그가 하는 모욕적인 말들 앞에서 그에게 압도당한 사람들은 다른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마치 눈 앞의 산 때문에 그 뒤에 있는 더 높은 산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한발 물러서 있었던 다윗은 더 큰 산을 보고 지금 그보다 작은 산 앞에 서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또 말한 대로 골리앗 앞에 서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사울이 내준 모든 장비를 내려 놓고 목동 차림으로 골리앗 앞에 갑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야훼의 구원은 칼과 창에 있지 않고 전쟁은 야훼에게 속해 있다.”

우리는 수많은 현실의 골리앗들 앞에서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하나님을 보고 다윗처럼 고백할 수 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처럼 새로운 용기와 지략으로 우리 앞의 골리앗들에 맞서고 그것들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로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로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다윗의 막대기와 돌팔매처럼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지만,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골리앗을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약자와 약한 나라를 적대시하고 평화를 파괴하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현대의 골리앗들, 이들에 맞서 약자 편에 서서 외치고 증언하는 것이 작은 다윗들에게 위임된 일입니다. 하나님이 이 일에 동행하시며 용기를 주시고 외침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현대의 골리앗들은 사람들을 멋대로 지배하고 억압하면서도 은인으로 행세합니다(눅 22,25). 그들 때문에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고 있는 이 세상을 향해 주님은 우리에게 그 악자들을 섬김으로 골리앗들에게 저항하라 하십니다. 억압당하는 약자들 편에 서는 것은 억압하는 골리앗들에게 실질적으로 저항하는 것입니다. 섬김이 곧 저항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 다윗과 골리앗이 바뀌어 있을 뿐 정세는 동일합니다. 이스라엘과 그 배후의 미국과 서방은 멋대로 세계질서를 유린하면서도 은인인척 구원자인척 행세하는 거대한 골리앗인데, 그들에게 짓밟히고 파괴되고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팔레스틴에게는 다윗이 없습니다.

하지만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은 외침과 기도가 전부일지라도 지금 팔레스틴과 연대함으로써 우리들은 팔레스틴의 다윗이 될 수 있습니다. 약자들 가운데서 생존과 안전을 보장하는 평화체제가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외치는 것이 다윗의 돌팔매처럼 거대한 골리앗들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이길 골리앗들은 없습니다.

작은 다윗들로 새 세상을 이루기 위해 주님은 약자들을 응원하고 약자들을 섬기는 이로 약자들 가운데 계셨고, 우리들을 불러 그의 길을 가게 하십니다. 이 부름에 응답하고 주님과 함께 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힘과 용기를 주시고 가는 발자욱 발자욱 마다 위로와 기쁨을 새겨줄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다윗의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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