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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연대하나님의 약속은 폐할 수 없습니다(에스겔서 20,21-22; 로마서 10,1-4)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3.11.30 02:37
▲ Georg Pencz, 「The Conversation of St. Paul」 (1549) ⓒhttps://www.imj.org.il/en/collections/578720-0

바울은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을 염원하며 큰 슬픔과 고통 속에 있습니다. 마치 성령이 우리와 모든 피조물을 위해 탄식하며 간구하고 계신다고 바울 자신이 말했던 것처럼 그 성령 안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을 위해 탄식하고 간구합니다. 심지어 바울은 이스라엘을 위해서라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감수하겠다고 말합니다.

저주를 받아 끊어진다는 것은 사실 바울이 자신의 동족에게서 경험한 일입니다. 예수와 함께 바울을 거부하고 박해했던 그들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의 파멸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저주로부터 구해 내기 위해 자신이 저주를 대신 받고자 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 나가기를 바랍니다. 이는 단순히 극단적인 표현이라기보다 타인을 위해 정죄와 저주를 받은 예수의 고난에 연대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바울의 동족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모시는 영광이 있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 있고, 율법과 예배가 있고, 약속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또한 우리가 받은 이것들은 이미 이스라엘은 받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받은 것들을 저버리고 그리스도를 거부했습니다. 또는 하나님의 약속이 예수를 거부한 이스라엘의 반대에 부딪혀 실패로 돌아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파기되지 않았다는 바울의 말(9,6)은 하나님의 약속이 이스라엘에게서 지켜지지 못한다면, 그 약속이 우리에게서 어떻게 유지되고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물음은 오늘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도하며 기다리는 우리와 무관한 물음이 아닐 것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성찰하며 물음에 대답하고자 합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을 강탈한 자이고 에서는 장자일 뿐 아니라 야곱보다 훨씬 더 고귀한 성품을 지녔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야곱을 약속의 상속자로 택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부름받은 자의 어떤 행위나 충실함이 아니라 전적으로 부르시는 분께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파라오와 같이 하나님의 계획을 반대하고 막아선 자들은 그들의 의도와 달리 하나님의 목적에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선택은 신체적, 사회적 우선순위에 기초하지 않고, 행위나 윤리적 우선순위에도 기초하지 않으며, 하나님 자신에게 속한 민족의 반대조차도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봉사하게 될 것이라고 따라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바울은 주장합니다.

이처럼 바울이 하나님의 약속의 신뢰성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그것은 정의의 문제를 남겨 놓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를 통해 시작된 정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또한 그 나라는 우리의 참여와 정의로움을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그 나라의 시민다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이 자신의 정의를 세우려고 힘쓰면서, 하나님의 정의에는 복종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즉, 그들은 자신의 정의를 위한 다른 기초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그들에게 요청하는 것과 다른 기초였습니다. 생명의 법을 죽임의 법으로 바꾸어 약자들을 차별하고 무시하고 죄인으로 만드는 굴레로 둔갑시켰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정의의 율법을 추구한다고 했지만 정의에 이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랑과 자비가 율법의 완성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을 완성하는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정의의 토대가 무엇인지 보여주시고 우리를 그 위에 세우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고 율법의 시대를 종결하셨지만, 그 율법이 지향하는 정의와 사랑이라는 목표는 여전히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롭게 여겨지지만, 우리는 그 토대 위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랑과 정의의 삶을 살아갈 책임이 있습니다.

에스겔서 20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자신에 대한 배반과 모독의 역사로 규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고 해방하고 율법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시작하게 하셨지만, 그들은 당혹스러울 만큼 빠르게 하나님을 저버리고 끊임없이 우상을 따라갔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실천하면 살 수 있는 생명의 법을 주셨지만, 그들은 그 생명의 법을 무시하고 죽임의 법으로 뒤바꾸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배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때까지 역사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배반에 직면하여 하나님은 심판을 결심하지만 그 심판을 철회하기를 반복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회개나 어떤 행위에도 근거하지 않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의 응답과 행동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회고는 이스라엘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미래를 시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역사의 동력과 토대가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에 있으며, 그것이 정의와 평화의 삶을 향한 부르심임을 깨달아아야 할 것입니다.

악이 득세하여 해방과 평화의 역사가 뒷걸음질치고 온 창조세계가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오늘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계속되고 약속이 완성을 앞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요? 그럼에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믿음의 요구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희망을 볼 수 없는 곳에서도 사랑과 정의와 생명의 길을 갈 수 있기를 빕니다. 그 길을 저버리지 않고 계속 가며 하나님 나라를 오늘 살고 오시는 하나님 나라와 만날 수 있기를 빕니다. 하나님 나라의 희망으로 정의의 씨를 뿌리고 키우며 악을 이기는 우리의 하루하루가 되기를 빕니다.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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