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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와 대속에서 자유로운 이들도마복음 구자만 박사의 《도마복음》 풀이 (6)
구자만 박사 | 승인 2023.11.30 02:41
▲ Annibale Carracci, 「The Madonna and Sleeping Child with Saint John the Baptist」 ⓒWikimediaCommons
예수는 말씀하셨다. “여러 날을 보낸 나이를 먹은 자도 태어난 지 7일이 된 갓난아기에게 생명의 자리가 어디 있는가 물어보기를 주저하지 말지니, 그리하면 그는 살 수 있으리라.”(도마복음 4장 1절)

분별하는 나이 먹은 자(ego)가 물어볼 7일이 된 순수한 갓난아이(본성)는 원죄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가치가 전도된 무분별의 생명 자리(One)이다. 갓난아이는 죄가 없기 때문에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십자가의 대속, 죄와 용서의 교리는 의미를 상실함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분별이 사라진 갓난아이와 같은 불교의 ‘무아(無我)의 자리’와 장자의 무기(無己)의 자리’(참나)는 모든 종교의 결론이다. 모든 현상은 하나님(참나) 안에서 일어나는 불가분의 현현(顯現)이며 겉모습이다. 갓난아이(진리)와 같은 생명의 자리인 예수(靈, 요 8:58)를 깨달은 나이 먹은 자는 자신의 영원한 본성(생명)을 망각한 ‘죽은 자’(ego) 가운데서 부활하여 살아있는 자’(One)가 되어 삶과 죽음의 분별심(ego)에서 벗어나는 영생을 누린다.

갓난아기는 지극한 도道인 ‘둘이 아닌 하나’의 진리(천국)와 “나는 육체다”고 하는 거짓 믿음과 이원적 사유의 분별심이 사라지고 영원한 신성(성령)인 ‘하나님의 성품만 남은 자’(참나)를 비유한다. 하나님의 성품이란 낡아지는 겉사람(ego)이 아니라 날로 새로워지는 비이원적인 속사람(One)이다(고후 4:16).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ego)이 아니라 둘이 아닌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참나)이다(엡 4:22-24). 따라서 우리는 신성한 하나님의 성품으로 바뀌는 자가 되어야 한다(벧후 1:4).

‘진리와 하나 된 자’(One)는 예수의 “비판하지 말라”(마 7:1)는 말씀대로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가려서 선택하지 않으므로 화해하는 마음을 상실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비와 선악을 가리는 표준이란 시대·환경·조건 등에 따라서 달라지며, 절대인 진리(法)는 상대의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유마경). 분별하는 거짓 나(ego)를 버리고, 참나(생명)인 순수한 갓난아기의 성품을 되찾아 ‘내일을 염려하지 않는 무위의 길’(마 6:34)을 가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된다(마 8:35).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無爲)는 하나의 생각에 불과한 죽음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자(One) 이며, 자유자재(自由自在)한 행복을 누리는 각자(覺者)이다.

노자(老子)는 “성인(聖人)이란 갓난아이의 마음을 가진 자이며, 덕(德)을 두텁게 머금은 자는 갓난아이와 비슷하며, 벌, 전갈, 독사가 쏘지 않고, 사나운 짐승이 덤비지 않으며, 사나운 새가 공격하지 않는다”(도덕경 55)고 하였다. 맹자孟子는 “대인은 갓난아이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당나라의 조주 스님은 “7살 어린아이라도 나보다 나으면 그에게 배울 것이며, 100세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하면 내가 가르쳐 줄 것이다”고 하여 나이 먹은 존재라는 상(相), 즉 나이에 집착하여 분별하는 수자상(壽者相)을 버릴 것을 강조하였다. 진리 깨달음으로 분별하는 거짓 나(ego)를 버리고 갓난아이의 마음인 참나(생명)를 찾는 자(One)는 자기 속에 있는 그리스도(부처)에 눈을 뜨고, 이 몸 그대로 둘이 아닌 그리스도(부처)가 되어 버린다(卽身成 佛, 골 3:11). 이때 분별에 의한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원망하며 불안한 마음 등이 사라지고 평안한 마음이 되어 본래 구원(영생)을 받고 있는 자신을 자각한다.

기독교인들은 “오직 예수만이 우리를 구원하신다”(행 4:12)는 구절을 통하여 타종교의 구원(영생)을 부정한다. 그러나 예수는 유한한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우주에 충만한 영(靈)인 우주적 예수이다(고후 3:17). 만물이 말씀(예수)으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기(요 1:3) 때문에 모든 것에 시공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예수(神性)가 현존하고 있다(롬 1:20, 골 3:11). 이러한 진리(One)의 예수를 ‘오직(개체성)’이라는 표현으로 한정 지을 수가 없다. 아인슈타인은 “모든 것은 에너지다”(E=mc²)라고 하나의 진리를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보편적 사실인 진리(생명)는 천지 우주의 모든 곳에 편재함으로 특정한 기독교만이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없으며, ‘오직 예수’라고 하는 것은 인류의 평화를 위한 종교다원주의의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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