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껄끄러운 예수그 밥이 내 입에 맞을까?(눅2:34-35)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 승인 2023.12.03 04:34
▲ 생명을 위해, 삶을 위해 먹어야 하는 음식과 같은 예수. ⓒGetty Images

1.

오늘 창조절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이제 다음주 대림절이 시작됩니다. 창조절 마지막 주일인데, 왜 벌써 예수님 이야기냐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창조의 완성은 <예수의 창조>입니다. 예수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최고의 작품입니다. 우리 인간이 최고의 기술을 다 합쳐서 컴퓨터도 만들고 스마트폰도 만들고, 인공위성도 만들고 로켓도 만들고 하듯이, 하나님의 모든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작품이 예수입니다. 그래서 창조절은 예수님 이야기로 마쳐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예수를 쉽게 파악할 수 없다. 예수님 안에 구현되어 있는 하나님의 기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의지.. 이런 것들을 한 번에 알아내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묵상해야 합니다. 묵상한다는 것은 그저 감상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고민하는 것입니다. 이상함을 느끼고 질문하고, 나름의 답을 찾아보고, 다른 사람의 답과 비교해보고, 그렇게 하나님의 뜻에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림절을 맞이하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섬기고, 구주로 고백하고, 따르자고 하는데, 그 예수가 누군지, 어떤 분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믿고 섬기고 따르면 안 됩니다.

2.

누가복음 2장에 예수님 탄생 이야기를 보면,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포대기에 싸서 어디에 뉘어 놓나요? 구유에 눕혀 놓습니다. 구유가 뭐죠? 말 밥통입니다. 그 밥통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밥입니다. 비유적으로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이 세상에 ‘밥’으로 오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예수님은 항상 ‘나는 이 생명의 떡이다. 나를 받아 먹어라’ 하시는 말씀을 항상 하셨습니.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세상 모든 생명을 먹이는 밥이 바로 예수님이구나!’ 하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밥을 안 먹으면 우리는 죽습니다. 어떤 형식이든 밥을 먹어야 합니다. 그 밥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되었건, 가르침이 되었건, 기적이 되었건,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셔야, 그냥 모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소화시키고 내 삶의 에너지로 삼아야,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사실 살아있는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살삽니다. 우리가 먹고 있는 모든 양식이 실은 다른 생명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생명이란 먹는 생명이 있고, 먹히는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면 살리는 생명이 있고, 사는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는 그런데 그중에 어떤 생명입니까? 바로 살리는 생명이고 먹히는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은 먹는 생명이 좋고, 내가 사는 생명이 대단하다고만 생각합니다. 실로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먹어야 내가 이기고, 그렇게 먹고 살아야 된다고 합니다. 거꾸로 먹히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먹히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합니다.

지난 주일 말씀에 이런 이야기를 드렸어요. “내가 누군가를 제물 삼아서, 밥으로 삼아서, 나를 살리고 나를 행복하게 하고, 그렇게만 살려고 하는 것은 안 된다. 그건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다. 내가 밥이 되려고 하지 않고, 누군가를 밥으로 삼아 살아가려고 한다. ‘넌 내 밥이야~!’ 하면서 군림하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게 오는 사람을 하나도 물리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다 와서 ‘나를 먹어라’ 하십니다. 세상 모두가 ‘나는 밥이 되기 싫다’고 외치는 그 세상 한복판에서 ‘아니다. 나는 밥이다. 다 나를 먹어라’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3.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봅시다. 새로운 질문은 이렇습니다. “그런 예수, 밥이신 예수를 기쁜 마음으로 먹을 수 있습니까? 예수라는 밥을 나의 주식으로 삼아서 예수로 만족하고, 예수로 배부르고 예수로 기쁘고 예수로 충만하게 그렇게 살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시므온이 예언을 합니다. ‘실제로 앞으로 이런 일이 얼어날 거야’ 하고 신비한 예언을 했다기보다는, 예수의 삶을 다 경험하고 체험하고 함께 한 사람들이, ‘예수는 이런분이야!’ 하고 고백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므온이 그들을 축복한 뒤에, 아기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으며, 비방 받는 표징이 되게 하려고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요약하면 세 가지 입니다. 1) 예수는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것이다. 2) 예수는 많은 사람의 비방을 받을 것이다. 3) 그러나 반대자들의 속셈을 폭로할 것이다.

첫째로 예수는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으키기도 하신답니다. 넘어지려면 먼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 일어서 있어야 합니다. 일어선 사람이 넘어질 수 있습니다. 살면서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 방법이 있답니다. 아예 누워있기만 하면 결코 넘어지지 않는답니다. 거꾸로 일으킨다는 것은 넘어진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신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서 있는 사람들은 누구며, 넘어진 사람은 누구인가? 돈 많은 사람들, 권력 있는 사람들, 로마정권에 친밀한 사람들, 종교지도자들, 바리새인들, 율법학자들, 존경받는 사람들, 학식 있는 사람들, 서기관들... 뭐가 되었든 한가지씩 자랑할만한 것이 있고, 그럴듯한 구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넘어진다!

잘 서 있는 사람이 그냥 맥없이 넘어질 수 있을까요? 버티고 서 있는 바로 그 힘을 없애버려야, 딱 버티고 있는 그 기둥이 무너져야 넘어집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기둥을 무너뜨리신다는 말입니다. 나를 지탱하는 돈, 권력, 학식, 권세, 종교의 힘, 존경, 사회적 지위... 이런 모든 것을 붙들어봐야 넘어질 수밖에 없는,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럼 넘어져 있는 사람은 누굴까요? 병든 사람, 배고픈 사람, 멸시받는 사람, 배운 거 없는 사람, 실패한 사람, 죄지은 사람, 못난 사람, 여자들, 어린이들... 어디 무엇하나 내세울 것 없고 움츠러들어 있고 주눅들어 있는 사람들. 혹시라도 누가 뭐라고 할까 눈치보며 사는 사람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럼 누가 예수님을 좋아하게 될까요? 일으켜 세워진 사람들이 예수님을 좋아하겠지요. 그럼 누가 예수님을 미워하게 될까요? 넘어지게 된 사람들이 미워하겠지요.

논어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님께 묻습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한사람도 빼지 않고 이 사람을 좋아한다면,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아닙니까?’ 했더니 공자님 대답이. ‘아니다. 모두가 좋다고 하면 안 된다. 선한 사람은 그를 좋아하고, 악한 사람은 그를 미워해야 한다.’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저도 사람이니까 칭찬받는 거 좋아하는데요. 누군가 저를 두고 ‘야~ 주재훈 목사님 참 훌륭하신 분입니다. 세상에 이런 목사님 없어요.’ 한다면 제가 기분이 어떻까요? 좋겠죠? 그런데 그렇게 저를 칭찬한 사람이 누구냐 했더니, 천하에 나쁜 놈, 목사 이름표만 달고 있는 목사같지도 않은 사기꾼, 그런 사람이 저를 이렇게 칭찬했다면, 어떨까요? 기쁘기는커녕 끔찍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이 무작정 똑같이 사랑하는 분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으로 일으켜주시고, 어떤 사람들은 서 있는 것도 넘어뜨리십니다. 그래서 넘어진 사람들이 예수를 미워할 것입니다. 비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비방받는 것이 ‘표징’이라고 말합니다. 비방받는 것이, 미움받은 것이 오히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요, 이 세상을 살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행하고 계신 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왜 증거가 됩니까? 그건 바로 예수님의 삶이 그들을 넘어뜨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서, 마음속 생각들을 만천하에 폭로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사람들은 넘어져 있거나 서 있거나 둘 중 하나일 터인데, 넘어져 있는 사람들은, 그 넘어진 아픔을 감싸주고 위로해주고, 다친 것을 회복시켜주고, 힘없는 무릎을 일으켜주고, 힘을 주고, 딛고 설 수 있게 해주고, 붙들고 설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런 이들은 예수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제대로 서 있는 사람들이야 괜찮겠지만, 이상한 것 붙들고 서 있는 사람들, 요상한 것 의지해서 서 있는 사람들, 그냥 서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저 꼭대기에 올라가려고 아등바등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예수를 만나면 여지없이 고꾸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붙들고 있던 것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 요상한 것이고 괴상한 것이고 더럽고 추한 것이라는 사실을 온천하에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미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도 맨 처음에 있던 말씀, 태초의 빛을 이야기하면서, <백성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죠.

4.

우리는 스스로를 어떤 사람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넘어진 사람인가요? 우리는 서 있는 사람인가요? 혹시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는가요? 넘어졌을 때는 일으켜 달라고 하고, 우연찮게 서 있을 때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겠다고 하고…

자, <예수는 이 땅에 밥으로 오셨다>고 했는데, <예수라고 하는 밥을 누구는 기쁘게 먹겠고, 누구는 진절머리치면서 거절하겠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새로운 깨달음에 또 한 걸음 다가갑니다.

예수님이라고 하면 무조건 좋은 분, 무조건 사랑하시는 분, 무조건 구원하시는 분. 그렇게 우리가 오해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예수는 우리를 넘어뜨리기도 하고 세우시기도 합니다. 어떨때 세우십니까? 넘어지고 실패하고 고난당하고 병들고 힘들고 가난할 때 세우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아멘하며 감사하고 주님을 섬깁니다.

그러나 우리를 넘어뜨리실때는 어떻게 합니까? 부자청년처럼 ‘너, 가진 것 다 나눠줘라’ 하시면 곤란해하면서 예수를 미워합니다. ‘너 미워하는 저 사람 용서해라’ 하시면 억울해하면서 예수를 미워합니다. ‘너 우쭐하고 싶은 마음 버려봐라. 너 자랑하고 싶은 것 내려놔라. 너 욕심부리고 싶은 것 포기해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면, 우리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그 밥을 안 먹겠다고, 도망치고 맙니다.

우리에게 놓인 신앙의 문제는, 신앙의 숙제는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살 수 있을까?’가 아닙니다. 그건 나중에 신앙의 공부가 찼을 때 주어질 숙제입니다. 우선 우리는 1+1 산수부터 풀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라는 밥이 무슨 밥이냐? 그 밥을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겠느냐? 하는 겁니다. 예수라는 밥 앞에서 ‘나는 당근은 싫다고, 피망은 안 먹겠다고, 소세지 없어요?’ 그러겠습니까? 내 입맛이 어떤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런 후에 예수라는 밥을 입에 잘 맞지 않지만, 한입 한입 먹어보면서, 이 밥이야말로 나를 살리는 진짜 밥이라는 것을 알아가야 합니다.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변명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안에 감추어진 우리의 은밀한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이 날카로운 칼처럼 찔러 숨길 수 없게 다 폭로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도망가지 못하고 변명도 못하게 하시는 것,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공평하신 사랑이 아닐까요?

대림절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예수가 좋습니까? 혹시 예수가 껄끄럽고, 맘에 안 들고, 살짝 듣기 싫은 말은 없습니까? 진짜로 고민해야 할 지점은 바로 그곳입니다. 잘 먹는 반찬 계속 먹지만 말고, 안 먹히던 밥을 먹어봐야 합니다. 이번 대림절은 껄끄러운 예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어봅시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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