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교계·교회 칼럼
당신이 먼저 내놓으십시오해는 서산으로 넘어가는 데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 승인 2023.12.03 04:38
▲ Vincent Van Gogh, 「The Red Vineyard / Red Vineyard at Arles」 (1888) ⓒWikipedia

마태복음 20장 1절부터 16절까지의 이야기는 한 노동의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이다. 본 비유는 또 다른 면목의 하나님의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본 비유를 성찰해 보면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다른 것이며 결국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세상이 어떠해야 하는 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우리의 세상과 하나님 나라의 차이

오늘 신자유주의 정책과 지구촌 현상은 우리 모두를 피나는 경쟁 속에서 살아가게 만들었다. 그래서 누구든지 경쟁의 선두에 서기 위하여 갖은 노력을 다하고 그 과정에서 우정도 사랑도, 인생의 기쁨도 다 포기한다.

오직 경쟁사회에서 첫 번째로 선택받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런 과 정에서 뒤에 처지는 사람들은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들이 되어간 다. 그들은 불필요한 잉여 존재이고 인간이다. 거들은 거추장스러 운 존재로 취급되고 그렇게 전락되어 간다.

비유에 의하면 우리의 세상은 이른 아침에 주인이 일군을 모집하러 갔을 때 첫 번째로 발탁되었던 사람들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다. 그 반면에 하나님의 세상은 힘의 논리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상이 아니라 은혜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세상이다. 하나님의 세상은 경 쟁의 논리에 의해서 능력 있는 사람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오늘의 비유에 의하며 주인은 이른 시간에만 일꾼을 구하러 간 것 이 아니다. 그는 도합 5번에 걸쳐 노동시장에 나간다. 그리고 그 때마다 사람을 구해서 돌아온다. 이 주인은 첫 번째 선택에 들어 선 능력있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소위 엘리트주의에 빠지지 않은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엘리트주의에 빠지면 첫 번째 사람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 외 모든 사람은 잉여인간(剩餘人間)일 뿐이다. 그러기에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을 찾을 생각을 갖지 않는다.

엘리트주의는 소수만을 위한 사회를 추구한다. 그러나 결국은 이 러한 생각은 소수도 살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됨을 알지 못 한다. 엘리트주의는 오직 나 혼자만 살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지 만 결국에는 자신도 살지 못하고 남도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결과는 낳게 될 것이다.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공멸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이야기에 나타나는 주인은 그러한 엘리트주의에 빠 지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1등 뿐만 아니라 2등, 3등, 4등 심지어 는 사회에서 소외되고 낙인 찍혀 버림받은 5등 인생에게도 관심을 기울이고 그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는 주인이다.

우리의 하나님이 이러한 주인과 같은 신이시다. 모든 사람에게 관 심을 보일 뿐만 아니라 그에게 삶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오늘의 본문을 보면, 주인이 늦은 시간임에도 노동시장에 나가서 일할 사람을 찾은 것은 그의 농장에 할 일이 많은데 일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삶의 주변자리에서 서성거리는 불쌍한 인생들에게 관심을 보이려고 나갔다. 주변부의 사람들, 삶 의 언저리에서 서성거리며 생의 위기를 당면하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그가 속해 있는 세상은 불행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인은 그러한 주변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묻는다. “왜 당신들은 이렇게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소?” “아무도 우 리에게 일을 시켜 주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도 대체 능력이라고는 없는 사람, 아무도 일을 시켜 주지 않는 ‘따라지 인생’들이다. 이들에게 주인은 말한다. “당신들도 포도원에 가 서 일을 하시오” 얼마나 놀라운 초대인가? 아무도 일을 시켜 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주인은 가서 일을 하라고 일자리를 준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주변의 사람들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여지없이 잘라내는 세상이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이런 서성거 리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신다. 이들에게 삶의 가치를 주시고 그들의 삶을 존중해 준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면

모든 인생을 평등하게 사랑하고 거두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행위가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의 사회는 이렇게까지 어 렵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들을 마치 기계의 나사와 같은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능력이 없으면 가차 없이 던져 버리는 이 세 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세상은 그렇게 살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가 오늘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이웃을 바라 보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드리는 것은 소위 한 나라 의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마음이 있게 해 달라는 것 이다. 오늘 우리에게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가?

주인의 내놓음

오늘 비유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이 있게 된 것은 포도원 주인의 희생과 내놓음이 있었다. 주인의 자기 살을 깎음이 있었 다는 사실을 보아야 한다.

오늘 포도원 주인은 일이 많아서 또 다른 일꾼들을 부른 것이 아 님을 위에서 생각해보았다. 그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서 그렇게 한 것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런 어리석은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경제는 최소의 비용을 들여 최대의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되도록 일군을 덜 쓰고 인건비를 줄이고 기타 비용을 줄여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다. 경제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경제적이지 않으면 사 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도 하지 않는다. 경제는 모든 가치의 척도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주인은 형편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주인은 이러한 경제적인 논리에 의 해 움직여지는 사람이 아니다. 그를 움직이는 다른 삶의 원리가 있다. 그것은 사람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사람사랑과 이에 따른 희 생과 자기 내놓음의 원리이다.

오늘 주인은 일꾼을 더 쓰기 위해 기존의 일군의 임금을 깍지 않 는다. 주인은 일이 끝난 후에 모든 사람들을 부르고 그들에게 똑 같이 약속한 돈을 지불한다. 사람이 많으니 서로 고통분담을 하자 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사람이 배로 늘어났으니 일군들과 약속한 금액을 12% 혹은 15% 삭감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대로 약속한대로 지급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일군들의 인건비를 삭감하지 않고 어떻게 이 렇게 할 수 있는가? 이것이 가능하다고 상상이 되는가? 이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오직 한 가지 주인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은 일군의 임금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윤을 줄여 버렸다.

그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윤의 폭을 대 폭 줄여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주인의 용단이 있었기에 모든 인생 에게도 은혜를 베풀 수 있었고 그 포도원은 하나님의 세상이 되었던 것이다. 주인의 이와 같은 결정은 결코 경제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세상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것을 마치 상상의 세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보지 말자. 이 세상의 어떤 기업인들은 실지로 그렇게 하고 있다. 자신의 집을 줄이고, 자신의 이익을 줄이고, 오락생활을 줄이면서 자신의 직 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주는 좋은 기업인들도 있다. 이런 기업인들은 부자이면서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기업인 들이다. 좋은 부자들이다.

누가 먼저 내놓을 것인가?

오늘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 세상은 이처럼 먼저 힘 있는 사람들의 양보와 자기 내놓음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리 좋은 정책이라고 내 놓아도 그것이 우리의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웃을 향해 포도원 주인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게 될 때 우리의 세상은 하나님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세상만 이루어진다면 눈물도 고통도 한숨도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4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