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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 지도가 나타났다최형묵 박사의 『민중신학 개념 지도』 (서울: 동연출판사, 2023) 출간
이정훈 | 승인 2023.12.17 04:08
▲ 『민중신학 개념 지도』 책표지 ⓒ동연출판사
“이 책은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하는 독창적인 연구보다는 민중신학이 형성된 역사적 맥락을 헤아리며 주요 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그 요체를 파악하는 길잡이를 의도하였다.”(최형묵, 『민중신학 개념 지도』 [서울: 동연출판사, 2023], 8; 이하 괄호 속의 숫자는 이 책의 쪽수이다.)

현시대 민중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 중 하나인 천안살림교회 최형묵 박사가 책을 한 권 새롭게 출간했다. 소개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민중신학 개념 지도』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저자에 대해 먼저 소개하겠다고 하면, ‘소개가 필요해?’ 하는 반문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여간 ‘자타가 공인한다’는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최형묵 박사는 민중신학 3세대에 속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 세대 구분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최형묵 박사 스스로가 정의한 바에 따르면 이렇다.

“1세대 민중신학은, 1960~70년대 돌진적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민중의 발견에서 촉발되었다. 1970년 전태일 사건의 충격과 더불어 그리스도교 신학은 자신의 시좌를 새롭게 설정한다. ‘민중사건’을 증언하려는 신학은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더불어 그 사건을 증언하기에는 부적합한 이전의 그리스도교와 신학 전통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였다. … 1980년 광주민중항쟁과 더불어 2세대 민중신학이 전개된다. 1980년대는 한국적 근대화의 대안으로 반자본주의적 전략과 미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민족 해방 전략이 전면에 부상하였고, 급진적인 학생운동의 폭발적 성장 및 노동자 계급운동의 형성과 더불어 대안적 이념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수용이 본격화되었다. 이 시기의 민중신학은 민중운동과의 연대를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고 그 연대를 위한 대안적 이론 모색에 치중하였다. 정치경제학적 인식과 신학적 인식을 결합한 “물物의 신학”이 형성된 것은 그 결과였다. …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지구화로 특징지워진 1990년대 이후 역사적 지평은 3세대 민중신학을 태동시킨 배경이 된다. 국가 내지는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적 경계화가 해체되는 가운데, 보다 다양하고 정교한 지배의 양식을 구현하고 있는 지구화의 현실은 새로운 해방 전략을 요구하였다. 3세대 민중신학은 그러한 현실에 대응하여 정치경제학적 인식을 보완하는 인식 틀로 문화정치학적 인식을 수용한다.”(186-187)

최형묵 박사 자신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통된 이 세대론은 “‘신학자들’이 아닌 ‘신학의 경향’ … 분류”라고 한다. 하지만, 필자는 최형묵 박사의 논문인 “그리스도교 민중운동에서 본 민중신학”(「신학사상」 69 [1990, 여름], 326)이라는 논문을 읽었던 당시부터 하나의 경향이기 보다는 “시대에 반응했던 신학의 자기 표현 방식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최형묵 박사의 실존적인 면에서는 어떨까. 그 스스로 이렇게 술회했다. 최형묵 박사의 둘도 없는 동료인 김진호 목사로부터 사석에서 들었던 말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1991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어느 날 한국민중신학회 창립(1992. 9. 24.)을 위한 준비 모임이 성공회 성가수녀원에서 열렸다. 그때도 말석이었지만 동료 김진호와 함께였다. 학회를 만든다고 하니 기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청년 신학도들에게는 염려되는 바도 있었다. 쟁쟁한 선배 신학자들 앞에서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결성한 것이 젊은 민중신학자들의 모임이었고, 그것은 훗날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되었다. 메이저리그에 대응해 마이너리그를 결성했다고 할까?”(203)

이러한 세대론과 최형묵 박사 자신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하는 글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더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4세대 민중신학의 전망은 어떻게 될까? 3세대의 문제의식이 장기 지속되는(?) 까닭에 뚜렷이 대별되는 그 다음 세대의 경향이 부상하지는 않고 있다고 해야 할까? 신학자 후속 세대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이전 세대의 신학적 경향과 뚜렷이 구별되는 경향의 특징을 꼭 집어 말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과연 어떤 것이 결정적인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인가?”(188)

이는 자신 스스로의 정체성을 ‘민중신학 지형 내에 있다’고 하는 이들의 입에서 오랫 동안 공공연하게 회자되던 말이었다. 귀에서 귀로, 입에서 입으로 그저 재미 삼았던 말들을 이렇게 글로 대하니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는 세대론의 입장이다.

그런데 최형묵 박사는 “8강 민중신학의 계보학”의 “2. 민중신학의 여러 경향”에서 세대론으로 포괄되지 않는 “민중신학‘들’”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기자는 이에 대해 세대론으로 집약될만큼 하나의 신학이 아니라 다양한 신학‘들’이 필요한 시대에 진입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4세대 민중신학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다양한 민중신학‘들’로 이어져 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각자의 자리에서 민중신학이라는 자기 정체성으로 자신이 포착한 문제에 반응하고 신학적 표현을 다듬어 가는 민중신학들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은 길로 보인다. 지난 6월 4일부터 7회 분량으로 매주 황용연 대표(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가 에큐메니안에 연재했던 “해명과 포섭을 넘어선 장애신학”은, 황 대표가 밝혔듯, “장애학적 논의(에 대한) … 민중신학적 방법론에 의(한) 신학적 응답”이라는 장애민중신학을 이끌어낸 최근 민중신학들의 좋은 예로 보인다. 언젠가 누군가는 현시대에 다양하게만 보이는 세대론에 포괄되지 않는 민중신학들을 묶어 “4세대 민중신학이었다”고 꼬리표를 붙여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책을 다 소개하지도 않았는데 글을 마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조금 더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우선 글 첫 머리에 소개한 저자의 문제의식이 충분히 녹아 있는 책이다. 즉 민중신학의 여러 주제들 가운데 어느 하나를 꼭 집어 깊게 파고들어간 책이 아니다.

책 제목 자체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민중신학의 다양한 주제들의 논의의 시작과 과정을 보여준다. 가령 “4강_민중 메시아론”을 예로 들자면, 개인적인 입장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민중 메시아론이 왜 발생했는지 그 발생사에서부터 논쟁 과정과 그 정확한 의미까지 충실하게 서술하고 있다. 국내 민중신학자들의 논의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민중신학에 반응했던 해외 신학자들의 논의도 잘 보여주고 있다.

책 전체가 이렇게 짜여져 있다. 물론 최형묵 박사가 선정한 주제들을 혼자서 역사를 되짚어 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진득하게 주저 앉아 책들과 논문들을 쭉 찾아 놓고 개인적으로 정리해도 될 일이지만 그 번거로운 작업을 대신해준 고마운 책이라는 뜻이다.

최형묵 박사는 겸양의 뜻으로 “독창적인 연구”는 아니라고 했지만, 글 사이사이마다 역사를 정리하고 코멘트를 달아놓은 곳에서 최형묵 박사의 독창성은 여지 없이 드러난다. 그가 “물론 이와 같은 얼개를 그려낸 것 자체가 하나의 고유한 입장의 반영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표현처럼 이러한 구조로 민중신학의 역사와 개념을 만들어낸 것이 그의 독창성이다.

이제 한 가지 아쉬움을 표현하고 글을 마치도록 하자. “8강_민중신학의 계보학” 중 “3. 오늘의 역사적 지평에서 민중신학의 의의와 전망”을 또 다른 하나의 장으로 조금 더 길게 논의되었으면 어땠을까 한다. 애초 이 책의 출발점이었던 연속 강연에서는 너무 과한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책으로 출판될 때 더 논의해 주었으면 좋았겠다는 뜻이다.

물론 최형묵 박사는 현시대 민중신학 내의 지형에 대한 아쉬움과 논의되어야 할 주제들을 풀어놓고 있다. 특히 1세대 민중신학이 가졌던 활력의 소멸을 아쉬워하고 있다. 하지만 아쉬움을 넘어 아쉬움과 논의 주제들에 대한 소개보다는 더 깊은 논의의 자리를 마련했다면 좋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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