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은 바로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계획하셨다는 점을 보여준다. ⓒGetty Images

‘아낌없이 베푸는 자’로 옮긴 히브리어는 ‘네페쉬-브라카’(נֶֽפֶשׁ־בְּרָכָ֥ה)입니다. 축복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복의 ‘라’(רָ)는 소유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축복 받은 사람’일 수도 있고 ‘축복을 주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축복을 받은 사람이어서 축복을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본문은 그 순서를 바꾼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축복을 줌으로써 축복을 받습니다.

이렇게 보면 축복은 양방향의 흐름입니다. 멈출 수 없고 고일 수 없는 것이 축복입니다. 이를 멈추게 하고 고이게 하는 것이 우월감과 독점욕이고, 이는 시기와 분노를 일으킵니다. 축복이 저주가 되는 순간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복을 받고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께 복을 받게 하는 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했냐고 물으면 답하기가 어렵겠지만, 그는 아버지와 함께 고향을 떠나야 했던 자라는 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고향 땅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머나먼 타국땅으로 이주한다는 것은 더 힘들고, 따라서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통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개 견디기 어려운 상황을 동반합니다. 상황에 떠밀려 이주를 해야 했다면 그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든 아브라함은 가장 힘들고 가장 낮은 처지에 자신을 내던져야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고, 때문에 ‘복’과는 거리가 매우 먼 사람으로 ‘복’이 절실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자의 하나님이 되고 그를 보호하기로 하셨다면, 그리고 그런 자의 하나님으로 세상의 하나님이 되기로 하셨다면, 하나님은 아래로부터 세상의 변화를 꾀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변화의 핵심이 복입니다. 불평등으로 인한 불행과 슬픔과 아픔이 세상을 특징짓는다면, 복은 그 상처를 치료하고 보다 평등한 사회로의 이행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복을 전하고 복을 나누는 흐름이 계속될 때 복된 세상을 이루는 길이 열립니다. 나눔과 받음의 연쇄가 각 사람에게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서로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마음에 여유와 신뢰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힘든 일이나 불행한 일이 그치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럴 때에도 의지할 이가 옆에 또는 가까이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얼마나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삶을 가능케 하는 복의 나눔은 사랑의 나눔입니다.

본문은 목말라 하는 이에게 마실 물을 주는 아주 작게 보이는 일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소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의 생명과 관련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25,22는 머리 위에 있는 숯불을 치워주는 것에 이를 비유하고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이라고 약속합니다(비교 롬 12,20).

마 25장은 이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이유로 꼽습니다. 작게 보이지만, 목마름이나 배고픔 같은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사랑이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 작은 것을 그렇게 높게 평가하십니다.

그런데 마 25장과 잠 25장은 전혀 다른 경우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마 25장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눈에 띄지 않을 수 있고 무시당할 수도 있는 사람,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사람에게 마실 물이나 먹을 것을 주는 일은 그저 안쓰러워서 하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은 이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억하시고 그것을 자기에게 한 것으로 간주하시며 그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십니다. 위의 본문이 약속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은총입니다. 생명의 갈증이 해소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잠언 25장은 원수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원수를 만나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피하고 싶고 때로는 해를 가하고 싶은 충동도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목말라 하거나 배고파 한다고 해서 그에게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줄 수 있습니까?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성서는 그 모든 불편한 마음과 충동을 억누르고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은 원수에게서 원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통스런 상태를 보는 것입니다. 그 고통에 사로잡혀 그가 누구인지를 묻지 않는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그 감수성을 더 크게 할 것입니다. 그 믿음은 우리 안에서 사랑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작은 자라고 또 원수라고 지나치지 않는 사람, 우리가 그런 따뜻한 믿음의 사람이 될 것을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이 그렇게 복을 나누고 복이 되는 사람이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는 오히려 주위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개입하셔서 위험에 빠진 자들을 구하셨습니다. 바로와 아비멜렉에게, 사라와 이스마엘에게 그리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뜻을 따르지 못한 아브라함도 그가 부르셨기 때문에 그와 만난 이들에게 결국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훗날 자기 집 앞에 있는 나그네 세 사람을 보고 이들을 집안으로 불러들여 정성껏 환대를 했습니다. 이것이 위에서 말한 것에 가장 가까워진 그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마치 엄마 뱃속에 열달 있다가 세상에 나온 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 하나님은 그렇게 오래 기다리셨나봅니다.

그렇게 달라지는 것을 거듭난 자의 성숙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는 요한복음 본문이 말하는 것과 같지는 않습니다.

아브라함 이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 앞에 있었습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물론 세세한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거듭남은 하나님 없이 살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미숙한 상태에서 성숙한 상태로 바뀌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필요한 일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자랑하며 그것을 다방면에서 차별의 표지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폭력을 맹신합니다, 남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고통을 안깁니다. 사랑과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을 증오와 불법과 불의의 신으로 오해하게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있지만 하나님을 떠난 삶입니다.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성숙하지 못한 거듭남은 요한복음이 말하는 거듭남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순간의 사건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숙을 향한 시작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은 태어남과 성숙을 포괄하는 말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성숙의 표지는 위에서 본대로 자기의 경계를 넘어 남의 고통을 덜어줄 줄 아는 것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오심을 기다리는 이 시간이 우리의 성숙을 위한 시간이 되기를 빕니다. 우리의 성숙을 위해 아브라함의 변화를 기다리셨던 하나님의 인내를 기억하시기를 빕니다. 이 세상에 빛을 던지고자 오신 주님의 빛이 우리의 성숙한 믿음을 통해 비쳐지기를 빕니다. 오시는 주님께서 달라지고 성숙해진 우리의 믿음에 그의 충만함으로 응답하시는 대림절이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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