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는 그때는 체제가 지운 짐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열린다. ⓒGetty Images

이 단락은 특별한 어구로 시작됩니다. ‘그때에’라는 말을 굳이 풀어 말하면 ‘그 은총의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문단 20절에도 ‘그때에’라는 말이 있지만, 거기서는 단순히 ‘그때에’입니다. ‘그 은총의 때’는 어떤 시간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요?

그 단서는 우리가 읽은 새번역 성서에는 없는 낱말 하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답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이 지시하는 질문은 무엇인지요? 그것은 2-3절에 있는 세례 요한의 질문입니다. 질문 다음에 이어지는 답변을 건너뛰고 질문 자체에 주목하는 ‘그 은총의 때’에라는 말은 그 질문의 의미를 밝혀줍니다.

오실 이가 당신입니까? 옥에 갇힌 세례 요한의 간절한 물음입니다. 이 물음으로 예수는 그와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오실 이임이 드러났습니다. 예수의 신분이 드러난 때, 바로 그 때를 가리켜 은총의 시간(가이로스)라고 합니다. 세상의 시간에 하나님이 들어오시는 때입니다.

세례 요한의 질문과 그의 상태가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끝내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는 못하였으나, 뒤에 오시는 이의 길을 준비하고 닦던 요한은 예수의 대답에 안도감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어구 다음에는 곧바로 파악하기 어려운 말이 이어집니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신 것이 무엇일런지요? 아마도 그것은 세례 요한과 예수가 사람들에게 가려지고 이해되지 못하고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을 가리킬 것 같습니다.

은총의 시간이 이 땅에 왔지만, 사람들, 특히 지혜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 때를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선한 뜻(eudokia)이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보통 이해하는 대로 이 말을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말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본래 모두를 위한 것이지만, 그것을 본 사람들이 다 그것을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저마다의 기준에 따라 세례 요한은 귀신들렸다 하고 예수는 마구 먹어대는 자, 포도주를 즐기는 자, 죄인들의 친구라고 하며 배척했습니다.

하나님이 선한 뜻을 가지고 은총의 시간에 이 땅에 들어오셨지만, 사람의 지혜는 이를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그 시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아버지만 아들을 알고 아들만 아버지를 안다고 말합니다. 실망이 섞인 말투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어떤 것을 예상하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로 시작되는 그 다음의 28-30절은 그 예상을 빗나갈 것 같습니다. 그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은 보게 된 소경, 걷게 된 못걷던 이, 고침 받은 나환자, 듣게 된 못듣던 자, 죽었다 살아난 자. 복음이 전해지는 가난한 자들 등 5절에 나오는 자들에 비춰 이해될 수 있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주님은 지혜롭고 권세 있는 자들 아래에서 이리 치이고 저러 치이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자들을 향합니다. 이들은 저들 앞에서 주눅이 든 채 살아가며 저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체제에 의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또는 먼 것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바로 이들을 부르십니다. 쉴 틈 없이 시달리며 살던 그들에게 쉼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는 지혜롭고 힘 있다 하는 저 오만하고 사나운 자들과 달리 자신은 온유하고 겸손하다 하며,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이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일할 뿐 말씀을 배울 수 없었고, 때문에 말씀이 지시하는 이를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직접 그들에게 하나님을 배우고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말씀은 해방과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을 주지만, 그것은 그들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마음은 쉼과 평안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한 뜻이고 이 뜻을 이뤄가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 선한 뜻은 우리 안에 선한 뜻을 낳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할 것입니다. 예수의 멍에는 사랑의 멍에입니다. 그 멍에를 메고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랑이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할 것입니다. 사랑이 우리에게 쉼과 평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고 이 뜻을 따르도록 하나님께서 섭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여러분들에게서 하나님의 선한 뜻이 왜곡되지 않도록 하나님은 섭리하시고 여러분의 모든 일들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한 해였고 또 그러한 새 해가 되기를 빕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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