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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지 마라“맞서지 않고 사랑으로”(마태복음 5:38-44)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4.01.08 03:35
▲ 악에 맞서다가 우리 스스로가 악이 되지 말아야 한다. ⓒGetty Image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한 주간 평안하셨냐는 질문은, 주중에 나를 힘들게 하는 일 없이, 잘 지내셨냐는 질문이 아닙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런 부정적인 일들에 마음을 쏟거나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고, 여전히 변하지 않는 부정적인 상황이지만 성령님과 함께 평안한 마음으로 한 주간을 보내셨냐는 질문입니다.

성도가 어려운 삶,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평안을 외부 환경에서가 아닌 내 안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평안을 성도 내면에 이미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요 14:27)

신앙생활은 내 주변 환경을 내 마음에 차도록 하거나, 내 욕망과 목적에 부합하도록 바꾸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이런 성도는 평안을 누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걱정과 근심, 불안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나 자신을 바꾸기 위해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이제부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하여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5, 17)

사도 바울은 성도가 자신의 주변 환경을 바꾸는 신앙생활이 아닌 자신을 바꾸는 신앙생활이 무엇인지에 관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했습니다.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갈 5:16-17)

나의 목적, 욕망 등 육신의 일을 내려놓고 2024년에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킬 때, 참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자신을 예수님께 굴복시킬 때, 참기쁨과 참생명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교회의 표어는 “마음을 지켜 생명이 흐르게 하는 교회”입니다. 2024년에도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이 표어를 각자의 삶에서 살아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마음을 지킨다는 건 무엇입니까? 부정적인 것들이 내 마음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도록 사람들과 여러 일에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이 지키는 겁니까? 아닙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두겠다는 결단이 진정으로 마음을 지키는 신앙생활입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받는 말을 듣게 되면, 나에게 상처 되는 말을 한 사람뿐만 아니라 상처 되는 말을 누구에게서도 듣고 싶지 않아 타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릴 때가 있습니다. 또, 어떤 부정적인 일을 겪게 되면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 활동 자체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마음을 닫아 버리곤 합니다. 이런 행동이 나를 지키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지키는 신앙생활은 마음을 열어 둘 때 가능합니다. 열린 마음일 때만이 생명, 사랑, 은혜가 우리 마음에서 다른 곳으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그것이 바로 복된 삶의 샘이다.”라고 잠언 4:23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닫지 않고, 늘 열어 둘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39a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예수님은 당한 것보다 더 심하게 보복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에서, 당한 만큼 상대방에게 갚아 주는 것도 훌륭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삶의 방향을 요구하십니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않기가 쉽습니까? 물리적으로 맞서지 않거나, 못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으로는 하루에도, 아니 몇 분 만에도 수십 번을 악한 사람에게 맞서는 게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간음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를 범하였다. 네 오른 눈이 너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빼서 내버려라. 신체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낫다.”(마 5:28-29)고 하셨습니다.

물리적인 행동이 아니라 마음으로 간음하는 행위를 했다면, 이미 물리적으로 간음한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마음에서 여러 번 잘랐다 붙였다, 죽였다 살렸다 했다면 맞서지 않은 게 아니라 맞섰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악에 맞대응하지 않고 다른 선택이 가능함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원수를 갚지 말고, 그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십시오. 성경에도 기록하기를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겠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그가 목말라 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는 것은, 네가 그의 머리 위에다가 숯불을 쌓는 셈이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로마서 12:17-21)

‘욕하다가 닮는다’, ‘싫어하다가 닮는다’, ‘미워하면서 닮는다’는 비슷한 말들이 있습니다. 이 말들이 의미하는 바는 같습니다. 그런데 왜 닮는지 아십니까?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욕하면서 생각하고, 저주하면서 생각하고, 분노하면서 생각하고, 어떻게 복수할까 고민하며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악에 맞서다 보면, 우리 자신도 그 악에 물들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악에 맞서는 방식이 아닌 다른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지하철에서 남성 취객이 난동을 부리는 영상이었습니다. 이 남성을 제지하려고 경찰관 두 명이 힘으로 제압하려 합니다. 제압을 당하지 않으려고 힘을 쓰고, 제압하려고 힘을 쓰니 취객과 경찰관 모두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말도 험악해집니다.

이때 지하철을 기다리며 앉아있던 한 청년이 일어서더니 취객에게 다가가 토닥이며 안아주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취객이 고개를 떨구고 안아준 청년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얌전해졌습니다.

힘에 힘으로 맞설 때는 점점 더 큰 힘이 필요하게 되었지만, 힘에 힘으로 맞서지 않고, 사랑과 공감으로 대응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난동을 부리던 취객뿐만 아니라 바라보던 사람들의 마음에도 사랑의 파장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우리 표어대로 생명이 흘러가는 모습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예수님은 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39b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41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42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

오른쪽 뺨을 맞았을 때, 왼쪽 뺨마저 돌릴 수 있는 행동이 우리의 마음을 계속해서 열어 마음을 지킬 수 있는 한 방법입니다. 나를 걸어 고소하면서 나의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 겉옷까지도 내주는 행동이 우리의 마음을 계속해서 열어 마음을 지킬 수 있는 한 방법입니다. 이런 행동은 누가 봐도 더 손해를 보는 선택이고, 이런 사람들을 속된 말로 ‘호구’라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이 방법이 성도가 더 복 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복을 빌어 주십시오. 여러분으로 하여금 복을 상속받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베드로전서 3:9)

성도가 복을 상속받게 하시려고 예수님은 악에 악으로 맞서지 말라고 하십니다. 악을 닮지 않고 복을 누리게 하시려고 악에 맞서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43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원수를 미워하고, 원수에 보복하고, 끊임없이 원수를 생각하는 게 어쩌면 우리의 당연한 삶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삶은 내 안에 악을 더 자라게 할 뿐이고, 악을 닮아 나 또한 내가 싫어하는 그 모습을 내가 행하게 될 뿐입니다.

이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비결을 예수님, 바울, 베드로가 성도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악에 맞서지 않고, 사랑으로 대응하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삶은 손해가 아닙니다. 오히려 복을 상속받는 비결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설교의 내용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이 되는 글을 성도님들께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자에게는 아름다움을 주고, 슬픔을 발견하는 자에게는 슬픔을 준다. 기쁨이나 지혜 같은 것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의 반영이다.”(카이오와족 큰구름이 한 말)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는 순간,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주위로 끌어당긴다. 원하는 것을 말하는 순간, 원하는 그것을 자신에게 끌어당기기 시작한다. 끌어당김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다.

당신이 싫어하는 것 백 가지를 적어 보라. 그러면 그 싫은 것들이 당신 주위를 에워쌀 것이다. 그 대신 좋아하는 것 백 가지를 적어 보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하루하루를 채워 나갈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불의와 파괴를 외면하는 길이 결코 아님을 그 목록을 써내려 가면서 깨닫게 될 것이다.

-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中에서

악에 맞서는 방식이 아니라 악을 사랑으로 덮는 방식으로 이겨나가야 합니다. 악에 맞서지 않고, 사랑의 자리에 굳게 설 때 성도는 복을 상속받고, 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2024년 악에 악으로 맞서지 않고, 악에 사랑으로 대응함으로, 마음을 열어 마음을 지키는 한 해 그리고 복을 상속받고, 복을 누리는 해로 만드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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