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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이 은혜의 해이어라희년의 기쁨이 청룡해를 가득 채우기를(레 25,8-12; 누가복음 4,17-21)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4.01.11 03:32
▲ 구약의 희년이 그리스도를 통해 이 땅에 시작되었다. ⓒGetty Images

성서는 언제나 우리 꿈의 샘이고 믿음은 그 꿈을 기다리고 향하게 합니다. 성서가 인간과 우주의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다고는 할 수 없을지라도 그 모든 것을 그 근원으로부터 바라보게 하고 그 지향점으로부터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이고 끝이며 모든 것은 그 안에 있고 그 안에서 운동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그분 안에서 그리고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우리의 시작이 아무리 작다고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잃거나 놓치지 않으시고 그의 목표지점으로 이끌고 가시고 또 함께 가십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그의 아들 예수를 만났고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이요 사랑입니다.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고 가든 거기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볼 것이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그 목표지점에서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최종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그 나라가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땅 위에 이루어질 그  나라가 최종적인 그 나라는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최종적인 그 나라의 모형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최고의 가치들이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그 모형조차 우리의 기대와 상상을 뛰어넘는 나라일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이미 시작된 그 나라가 우리 가운데서 계속되고, 그 나라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지며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고 우리의 미래를 더 밝고 더 안전하고 더 평화롭게 하기를 빕니다. 비록 우리의 시대가 불안하고 위태롭고 암울하다 해도 그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자라고 있으며 우리 가운데 희망을 싹틔우고 있음을 기억하시고 이 시대를 이길 수 있기를 빕니다.

이스라엘은 희망을 갖기가 어렵던 시절에 희년의 꿈을 찾아냈습니다. 레위기에 그려진 희년은 완전한 것도 아니고 만족할 만한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꿈은 조금도 의미를 잃지 않습니다. 희년은 자유의 해이자 새로운 시작의 해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빚을 지고 빚을 갚지 못한 때문에 소유를 잃고 자유를 잃은 자들에게 원래의 것을 회복시켜 주는 해방의 때가 희년입니다.

세세한 운영 원칙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종의 자식은 종일 수 밖에 없었던 사회들을 생각해보면, 희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를 얻을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희년의 희망은 생활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다 해도 버텨낼 힘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새 삶의 기대가 있어 매일매일이 새로울 것입니다. 시간은 죽음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희망으로 향합니다.

종과 주인의 종속관계가 해소되고 자유인들의 형제자매 관계가 회복됩니다. 물론 위기가 없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또다시 자유를 상실하는 일들이 반복될 수 있겠지만, 희년이 있는 한 그것은 절망과 좌절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불완전한 세상이어도 희년이 있다면 세상은 조금은 더 괜찮아지지 않겠습니까? 그 희년이 우리의 매년이되고 우리의 매일이 되기를 빕니다. 희년에 잇대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본문 11-12절에는 특별히 우리의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습니다. 희년의 해에는 이제까지 농사짓던 곳에서 모든 활동을 멈추라고 합니다. 씨를 뿌리는 일도 가꾸는 일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저절로 나고 자란 것들을 추수하는 일이 허용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일하던 곳에서 일하거나 그곳에서 나는 것을 먹는 것이 금지됩니다.

그러면 그 해에는 어떻게 먹고 살라는 것이지 라는 물음이 생길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이 12절에 있습니다. 본문에는 밭으로 되어 있지만, 밭도 사람이 농사짓던 곳이기에 밭이라는 말은 여기서 적절치 않습니다. ‘들’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들에서 사람이 가꾸지 않은 것을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해보십시오. 농사일을 하지 않고도 한 해 동안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마치 출애굽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농사를 짓지 않고 40여년을 살았던 것과 닮았습니다.

그래서 희년은 광야생활을 제도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종살이 하던 사람들이 자기 땅으로 돌아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시작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희년은 노예 없는 사회, 노예 없이도 유지될 수 있는 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들에서 나는 것이 가꾼 것보다 조야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예전에 광야의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노예 부리던 때를 그리워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희년은 이러한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탐심을 억제하고 사람을 존중하며 절제하고 자제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러한 희년은 그 자체로 희밍과 기쁨의 사건이며 인간 회복의 사건입니다. 복음을 잉태한 씨앗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누가복음 본문에서 이사야를 인용하여 밝히시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 직전에 성령에게 이끌리어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그 직후입니다.

무시당하던 작은 마을 나사렛의 한 회당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참으로 상징적입니다. 사탄이 예수에게 제시한 부와 권력의 크기에 비교하면 말할 수 없이 아주 작은 곳입니다. 사탄의 요구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하는 대신 주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지금 그 위에 계시며 그에게 기름을 부으십니다. 이로써 그는 그에게 부과된 과제를 수행할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돌들로 떡을 만드는 대신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 자, 억눌린 자에게 해방과 자유의 복음을 전합니다. 자기 영광의 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의 해를 열어가십니다. 이로써 사탄의 세력은 예수에게 완전히 패배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음에도 하나님을 시험하고 부추기기고 하나님과 씨름하는 자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게 패배했습니다. 십자가에서도 사탄은 예수를 내려오게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는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하는 사탄에게 승리하심으로 우리도 승리자가 되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희년에서 보았던 복음의 씨앗을 이렇게 싹틔우시고 자유와 해방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십니다. 그 나라의 완성을 위해 그가 우리 앞에 가십니다. 자유와 해방을 위한 그의 길이 고통이 없거나 힘들지 않은 길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그 길이 주는 평화의 기쁨은 우리가 겪는 아픔이나 고달픔 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고, 그 길에서 얻는 하나님의 위로와 희망은 세상이 줄 수 있는 그 어떤 달콤함 보다 더 깊고 더 따뜻하고 더 향기롭습니다.

그 길은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오는 새힘이 있어서 갈 수 있습니다. 새해 우리가 하는 일들이 각기 다르다 해도 우리의 일상을 관통하는 그 길위에서 우리가 만나고 우리의 일들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세울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 되도록 섭리하시고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그 길에서 만나는 우리가 어우러져 함께 춤추며 우리의 날들을 축제로 만들 수 있기를 빕니다. 그 길을 가는 우리에게 주님의 영이 예수의 지혜와 용기와 신뢰를 부어주시기를 빕니다. 청룡해의 끝자락에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희년의 축체를 살아온 길이었다고 모두가 고백하며 감사드리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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