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eorge Frederic Watts, 「The Good Samaritan」 ⓒhttps://artuk.org/discover/artworks/the-good-samaritan-13383

주일예배에 참여하신 한성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지금 여기 나 있는 곳에 함께 계신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크신 은혜와 평화를 가득 부어주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돌이켜 행하는 신앙’ 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긍휼은 항상 옳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 함께 나누겠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진정성 있는 믿음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진정성 있는 믿음은 의심이 없는 믿음이 아니라 의심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믿음이라 했습니다. 진정성 있는 믿음에는 불완전하면 불완전한대로, 의심하면 의심하는대로의 명민하고 정직한 자기인식이 있고, 그런 자신에 대한 진심으로 애통해 하는 마음이 있으며, 그런 자신을 돌파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진정성 있는 믿음으로 보아야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고, 진정성 있는 믿음으로 들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공감적으로 이해하며, 진정성 있는 믿음으로 다가서야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깊어지면 나타나는 질적 변화에 관한 이야기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인간관계에서 서로 신뢰가 깊은 사람들 간에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서로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특별히 할말이 없어도 대화가 됩니다. 아무에게나 건넬 수 없는 말도 편하게 말하게 됩니다. 뭔가 할 게 없어도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뜬금 없이 연락해도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연락이 뜸하면, ‘무슨 일 있나’ 염려는 될 수 있어도 ‘나를 떠난 것 아닌가, 나를 잊은 건 아닌가’ 불안하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신뢰는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다는 느낌을 가져다 줍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체험도 깊어집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확신도 깊어집니다. ‘하나님의 사인과 신호를 놓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들어도 ‘하나님이 안 계시면 어쩌지’ 하는 불안은 확연히 줄어듭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목이 마를 순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부정하기는 어려워집니다. 신뢰 속에서 솟아나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직관적 인식 때문입니다.

진정성 있는 신뢰는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직관적 인식 또는 체험적 인식으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까? 공기처럼 우리의 안팎을 에워싸고 계십니까? 빛처럼 늘 우리를 비추고 계십니까?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우리는 언제 체감합니까? 우리가 독한 외로움 속에 있을 때, 혼자라는 사실에 몸서리칠 때입니다. 하나님은 그때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리십니다.

언제 우리가 홀로있음을 강하게 의식하던가요? 내 고통을 직접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엇보다 우리가 고난과 고통을 겪을 때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입장에서야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이 절실해지는 것 당연한 일입니다. 감당 못할 문제를 만나거나 무력감을 느끼거나 불안감에 사로잡히거나 결핍에 시달릴 때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 일이야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우리를 왜 찾으시는 것입니까? 굳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왜 알리십니까?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신명기 4장 31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고통스러워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통을 겪을 때 실제로 우리와 함께 고통을 겪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플 때 실제로 우리처럼 아프신 분입니다.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고통으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 고통을 견뎌내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이유도 없습니다. 고통 중에도 생명의 꽃을 피우고 생명의 신비와 기쁨을 경험하도록 우리를 이끄실 이유도 없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십자가 지셔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예레미야 31장 20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나님은 괴로워하는 우리 때문에 괴로워하시되 애간장이 녹을 지경이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을 주창한 가즈오 기타모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괴로워하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모든 역사는 사실상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모든 역사의 궁극적 완성의 때에 관해 양과 염소의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려 보십시오. 마태복음 25장 31절 이하에서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굶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된 사람, 헐벗은 사람, 병든 사람, 옥에 갇힌 사람과 동일시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지극히 작은 자라 일컫는 사람 모두 고통 중에 있는 사람입니다. 마지막까지 주님의 마음은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향해 있음이 분명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은 자비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통을 고통스러워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신 그 본성 때문에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만한 공로나 업적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에 속들만큼 성숙하고 완전해서도 아닙니다. 그저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우리 때문에 고통스러우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자비하신 하나님의 성품에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 찾아와 예수님에게서 치유와 회복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이 외친 공통적 외침이 무엇입니까?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 입니다. 자비를 베풀어 달라는 호소가 그들이 구원받은 이유의 전부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주님이 자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고통을 고통스러워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신 그 본성 때문에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어 주십니다. 우리의 수준에 맞추어 우리와 관계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신 그 본성 때문에 우리를 가까이 하십니다. 어리석게도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는 순간에도 우리를 외면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신 그 본성 때문에 우리의 고통을 덜어 주십니다. 우리가 고통에 압도되어 생을 저주하지 않도록 우리를 도우십니다. 하나님은 자비하신 그 본성 때문에 고통 중에도 우리가 삶의 신비와 기쁨을 향유하도록 도우십니다.

돌이켜 보십시오. 아무리 우리 생이 고되더라도, 때로 아무리 우리 고통이 크더라도, 그 고됨과 고통이 365일 24시간 내내 지속되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 생에 웃음 지을 일 하나 없을 리 없습니다. 감사할 일 하나 없을 리 없습니다. 희망의 단서 하나 없을 리 없습니다. 끊임없이 고통이 밀려와도 그 사이 사이 비집고 들어오는 평안과 안식이 없을 리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비하신 하나님이 우리 곁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나마 덜 고통스러울 수 있는 건 자비하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고통 중에도 우리가 종종 웃을 수 있는 건 자비하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고통 중에도 우리가 여전히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건 자비하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비하신 하나님과 우리의 신뢰 관계가 깊어지면 우리에게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이겠습니까? 자비심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깊이는 자비의 깊이로 나타납니다. 기독교 신앙은 자비의 실천으로 열매 맺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6장 3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호세아 선지자는 6장 6절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자비를 실천하는 일로 귀결되지 않으면 가짜다라는 선언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에서 야고보서 기자는 더 강한 어조로 선포합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힘입어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도 자비를 베풀고 긍휼을 실천해야 함이 마땅하다는 의미입니다. 자비를 베풀고 긍휼을 실천하는 일은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가 짊어질 책임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진정성은 자비를 베풀고 긍휼을 실천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자비, 어떻게 실천해야 합니까? 우선 자비인듯 보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자비하심과는 분명히 다른 위장된 자비를 분별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위장된 자비가 자비를 실천할 기회를 빼앗을 수도 있고, 자비를 실천하지 않을 핑계를 제공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매튜 폭스는 자비의 영성이라는 책에서 위장된 자비에 관해 열거한 적이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위장된 자비 중에는 연민이 있습니다. 연민은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마음’ 으로 그 사전적 의미로만 보자면 자비와 유사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낄 때 우리 마음속 다른 한편에는 교묘한 우월의식이 자리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네가 그렇게 아프다니 참 안 됐다. 나는 그런 아픔 잘 모르긴 하지만 참 안타깝다. 불쌍하다.’ 연민은 이런 마음일 수 있습니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을 보고 ‘참 안 됐다’ 생각하면 거기에 연민의 마음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게 곧 자비는 아닙니다.

연민과 자비, 무슨 차이입니까? 자비에는 우월의식이 없습니다. 오히려 일체감이나 동질감이 있습니다. 자비는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 너도 나만큼이나 아프구나. 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는 의식을 수반합니다. 자비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약함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 고통을 안고 사는구나’ 하는 자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비에는 우월의식도 없고 생색내기도 없습니다. 우월의식이 작동하는 순간 자비는 사라집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2장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고 권고합니다. 화려한 장식에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좋은 자리를 내주고,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에게는 말석을 내주는 예를 덧붙여 가며 차별하지 말라 권고합니다. 차별대우는 차별의식에서 생깁니다. 차별의식은 수평적 차이를 근거로 수직적 우열을 따지는 행위입니다. 외모, 소유, 지위, 학력, 소속, 이력, 종족, 민족의 차이,  이런 건 모두 이 세상에 속한 수평적 차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수평적 차이를 근거로 사람의 근원적 동일성과 평등성을 파괴하고 사람 간에 수직적 우열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우리는 차별의식이라고 말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일체의 차별의식을 배제합니다. 기원전 6세기 바벨론 포로민으로 있던 유대인들은 창세기를 기술하면서 사람을 수직적으로 계급화하여 분류하고 있는 바벨론을 향해 폭탄 선언을 합니다. 창세기 1장 27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피조된 평등한 존재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피조물로서 하나님과 명백히 구별되지만, 하나님에게 기원한다는 점에서 모두 존귀하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선언합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기독교 신앙인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며 사람을 차별한다는 것은 자기 모순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사람을 돕고 구제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보다 우월해서가 아닙니다. 나와 다를 것 하나 없는 똑같은 사람이 가난이라는 곤경에 처해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고통이 내가 안고 있는 다른 고통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만큼이나 그도 고통을 안고 살고 있다는 의식과 동질감 때문입니다. 그의 고통을 외면한 채로는 나도 역시 편히 살 수 없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의 고통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책임감 때문입니다. 자비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비의 실천과 관련해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그들은 강도 만난 사람을 강도에게 폭력을 당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취급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강도 만난 사람을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했을 뿐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에 대한 편협한 시각과 인식 때문에 자비를 실천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사마리아 사람에게 강도 만난 사람은 내가 당할 수 있었던 일을 대신 당한 사람으로 인식되었을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어려움 당한 사람을 돕는 선한 사람이야’라는 의식 없이 자동반사적으로 강도 만난 사람을 극진히 도왔던 것입니다.

매튜 폭스는 위장된 자비로 또 감상주의를 꼽습니다. 감상주의란 고통에 공감하긴 하나, 고통을 덜어주려는 행동은 취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자비의 실천과 관련해 우리가 빠져들기 쉬운 오류가 바로 이 감상주의입니다. 남의 고통이 마냥 남의 고통처럼 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스스로를 자비심 많은 사람처럼 취급하는 게 우리가 아닌가 돌아볼 일입니다. 우리가 뉴스를 보면서 늘상 하는 일들이 바로 이 감상주의입니다. ‘아이고, 얼마나 힘들까? 정말 안 됐네’ 라고 마치 내 고통처럼 느끼긴 하지만 그 고통을 느끼는 것으로, 그 고통을 진정으로 느꼈다는 것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행위는 교묘히 회피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다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로 돌아가 봅시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에게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전혀 없었을까요? 그것은 분명히 아니겠지요. 다만 그들은 딱 거기까지였던 것입니다. 고통에 공감하는 정도로 만족하면서 고통을 덜어주려는 행동은 회피한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을 뿐만 아니라, 즉 그의 고통을 내 고통이라 여겼을 뿐만 아니라 그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에게 다가가서 상처를 싸매어 주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자기를 희생하고 값을 치뤄 강도 만난 사람에게 자비와 긍휼을 실천했습니다.

우리에게 차별의식이 있던가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우리에게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없던가요? 그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없거나 부족한 게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자비의 실천, 긍휼의 실천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의 맥락을 생각해 보십시오. 누가복음 10장 25절 이하에 보면, 한 율법교사의 질문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은 율법의 본질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율법교사가 연이어 질문합니다. “누가 내 이웃입니까?” 이 질문에 예수님이 들려주신 비유가 바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입니다.

율법교사에게 없는 게 무엇입니까? 자비에 대한 이해력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자비의 실천이 없을 뿐입니다. 그런데 자비의 실천 없이 이웃 사랑이 가능합니까? 사실은 하나님 사랑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고통을 고통스러워하시는 분이신데,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행위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행위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성숙한 사랑법입니다.

그런데 혹시 ‘내 코가 석자인데 어떻게 남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습니까?’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내 고통을 덜어내는 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니 안심하십시오. 다만 내 고통을 덜어내는 게 가능하면 남의 고통을 덜어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꼭 가진 게 많아야 자비를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으로 자비를 실천하면 됩니다.

매튜 폭스는 영적 긍휼의 실천도 있음을 지적합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버림 받았다고 자기 생을 저주하거나 비관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묵묵히 주어진 상황에서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 선용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비를 버린 형제들을 용서하기까지 했습니다. 이것도 영적 긍휼의 실천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부당한 행위 속에서도 보복을 획책하기보다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이것도 영적 긍휼의 실천입니다. 예레이먀 선지자와 이사야 선지자는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가는 고통 중에 있는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것으로 긍휼을 실천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의 심판을 안타까워 기도함으로 긍휼을 실천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고통 당한 이들을 웃음 짓게 하는 일도 자비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고통이 크다고 고통에 압도되거나 고통에 매몰되어 살 필요는 없습니다. 고통을 덜어낸다는 것은 고통의 이유가 다 사라지지 않더라도 삶을 기뻐하고 즐거워할 이유를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틀러 정권의 유대인 대학살 만행을 몸소 겪고 목도했던 빅터 프랭클은 말합니다. “삶을 긍정하고 희망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하면 그 어떤 고통도 감수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자비하니 너희도 자비하라” 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좇는 사람들입니다. 자비와 긍휼의 실천이 우리 삶의 자연스런 일상이 되게 합시다. 자비와 긍휼의 실천으로 경쟁과 차별과 적대가 난무하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드러내는 데 힘씁시다.

김현주 목사(한성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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