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acob’s Ladder」 in the original ⟪Luther Bibles⟫ (1534) ⓒWikipedia

살아가면서 우리는 ‘막막하다’는 말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막막하다는 말이 한가지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쓸쓸함, 외로움, 답답함 등을 담고 있는 복잡한 말입니다. 이 말은 대개 자기에게 닥친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경우에 사용됩니다. 바다 위에 홀로 떠있는 느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시간 속의 존재라는 것을 생각하면, 실상 우리는 시간 앞에서 늘 막막한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단 1초 앞도 들여다볼 능력이 없습니다. 시간 속의 우리는 마치 어둠 속을 향해 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지금 상태가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계속될 거라고 믿고 예상하며 행동할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예상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면 그 답답함과 초조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의 은총의 시간이 우리의 막힌 시간을 뚫고 들어온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경험 직후의 우리는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야곱은 쌍동이 형의 뒤꿈치를 잡고 나왔다는 그의 출생 일화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그렇지만 성장과정에서도 그는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는 어머니 리브가의 주도 아래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이미 발설된 축복은 거둬들일 수 없고 모든 것을 쏟은 것이었기에 에서를 위한 축복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생긴 형제 간의 갈등으로 야곱은 피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문의 사건은 피신 길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피난길에 오른 야곱의 나이는 결혼 연령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로서는 적은 나이가 아니었을 터이지만, 그에게도 피난길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목적지가 있었지만 가까운 길도 쉬운 길도 아닙니다. 함께 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두렵기도 했을 것입니다. 참으로 막막하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가 훗날 베델로 불리는 지역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추측컨대 목적지까지 5분의 1도 채 못갈을 때입니다. 거기서 그는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고단했습니다. 산책이나 트레킹이 아니니 그저 걷는 일에만 열중했을 것입니다. 세상 모르고 잠이 들었을 때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가 있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잠이 깼을 때 그는 ‘하나님이 여기 계신 줄 몰랐다’ 하며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고 하늘 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 꿈에 대해 더이상 말하지는 않지만 그가 말한 것으로 그의 꿈이 다 말해진 것은 아닙니다. 거기가 그가 말한 대로 하나님의 집이고 하늘 문이어서 그가 그런 꿈을 꾼 것일까요? 그것은 그의 해석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이어집니다. 땅은 하늘 없는 땅이 아닙니다. 땅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홀로 완전체가 아닙니다. 땅은 스스로 그 자신의 근원이 되지 못합니다. 땅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꿈입니다. 땅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사는 삶은 땅이 홀로 완전할 수 없듯이 불안정합니다. 땅만 보고 걸어왔던 야곱에게 시선을 돌려 하늘을 보라는 꿈입니다. 땅에 갇혀 있던 야곱을 그 꿈은 그 울타리로부터 이끌어냅니다. 이를 보장하는 하나님의 사자들입니다.

사다리로 연결된 하늘과 땅은 하나님의 사자들에 의해 땅의 의미를 새롭게 해줍니다. 땅은 더 이상 불안과 공포 그리고 죽음이 지배하는 곳일 수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개입에 의해 희망과 안전과 생명의 땅이 될 것입니다. 야곱의 말은 그 꿈의 의미를 다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그의 인식 속에 하나님이 들어왔습니다. 그의 시간은 이제 하나님의 시간에 의해 바뀔 것입니다. 비록 피난길에 있지만, 그 피난길은 그의 끝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꿈이 그에게 직접 의미하는 것이 13-15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야곱은 여기서 아브라함과 이삭을 잇는 후계자가 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잇는 사다리의 한 단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그를 피난길에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그에게 어떤 위험도 닥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동행하시는 하나님은 위험이나 위협 너머를 바라볼 수 있게 하고 그에게 견디고 일어서게 하는 힘과 희망이 되고 그가 그 희망의 땅에 이르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리 말씀하시는 하나님에게 그는 하나님이 그리 하시면 그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고 서원합니다. 불신의 소리인가요? 아닐 겁니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일 겁니다. 돌베개 삼았던 돌을 기둥으로 세운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그것은 그의 말씀에 대한 감격과 기대와 신뢰와 외경을 담고 있습니다.

이제 그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가는 곳곳마다 또 부딪히는 경우경우마다 하나님의 은총의 시간을 경험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그의 시간은 생명과 평화를 향해 흐를 것입니다.

그 시간이 또한 우리의 시간이 되기를 빕니다. 생명과 평화의 강을 이루는 시간이 되기를 빕니다. 숱한 위기 가운데서도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하늘에 잇댄 우리의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모진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군사적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우리 희망의 굳건한 토대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힘들 때 십자가 사건 이후 베드로와 몇몇 제자들에 있었던 사건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아마도 예수의 부활 소식을 들었고 또 부활한 예수를 만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야곱의 경우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 꿈 이상의 경험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회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답답하고 막막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함께 모여 있었으나 그들이 찾은 출구는 고기나 잡으로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부들이었던 그들은 고기를 잡을 때면 시름도 잊고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날 따라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실망을 넘어 고통스럽지 않았을까요? 갈피를 잡지 못하던 마음을 달래려고 고기잡이에 나섰지만 오히려 속은 더 소란스러워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주님은 그들 곁에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계셨으니 그들은 빈배를 끌고 돌아오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고기가 있냐고 물으셨지만,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없다고 대답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면 고기가 잡힐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그대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고기가 그물을 들 수 없을 만큼 잡혔습니다.

놀람으로 그들의 텅 빈 마음이 가득 찼을 것입니다. 야곱처럼 두려운 마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제서야 예수인 줄 깨닫고 주께서 여기 계시는구나 했을 것입니다. 고기잡으러 ‘바다’로 나갔던 그들은 이제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신 그 길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시간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시간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해도 이처럼 은총의 시간 아래 있기를 빕니다. 늘 행복한 것이 아니고 근심과 고통이 있고 혼란스러울 때가 있을지라도 우리 곁에 우리와 동행하시는 이가 계심을 보고 그때그때마다 일어나 다시 가던 부르심의 길을 계속 갈 수 있기를 빕니다. 하루하루를 돌아보며 기도할 때 우리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 너머에 있는 빛을 볼 수 있고 이에 기뻐하며 감사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막힘을 두려워 마십시오. 하나님이 그 벽을 헐고 길을 내실 것입니다. 방해를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를 넘어갈 지혜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힘든 일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마음에 쉼과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헛헛한 마음에 옛길로 돌아서지 마십시오. 그 마음을 기쁨과 소망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우리의 닫힌 눈을 열어 새세계를 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자취가 우리의 삶에 또렷하게 새겨지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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