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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애고흐와 산책하기 (22)
최광열 목사(인천하늘교회) | 승인 2024.01.20 02:39
▲ 「꽃이 핀 아몬드나무」 (1890, 생레미, 캔버스에 유채, 73.5×92cm,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빈센트에게 네 살 어린 동생 테오는 친구이자 형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 테오는 형의 평생 후원자이자 빈센트의 예술을 이해하는 유일한 지지자였고 고흐교회의 유일한 신자였다. 테오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아는 고흐도 없었을 것이다.

테오가 1889년에 요한나(1862~1925)와 결혼하고 이듬해 1월에 아들을 낳았다. 테오는 아기에게 형의 이름 빈센트(1890~1978)를 그대로 물려주었다. 테오는 편지에서 ‘아이가 형처럼 단호하고 용감할 수 있기를’ 원했다. 형에 대한 동생의 지지가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빈센트는 건강과 행복과 성공, 어느 하나 갖지 못한 자신을 존경하는 동생의 마음을 읽었다.

그는 조카의 탄생 소식과 자기 이름을 조카에게 물려준 이야기를 듣고 그림 한 점을 그렸다. 바로 <꽃 핀 아몬드 나무>(1890)다. 동생의 변함없는 존경과 갓 태어난 조카의 삶을 축복하는 상징으로 아몬드 나무는 안성마춤이었다. 아몬드 나무는 긴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나무다. 생명과 희망과 재생을 상징한다.

이 그림을 받은 테오는 매우 기뻐하며 아기의 침대 위에 걸었다. 하지만 이 무렵 빈센트는 인생의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이 그림을 그린 지 5개월 후 삶을 마쳤다. 그는 가장 암담한 시절에 가장 희망적인 그림을 그렸다.

안타깝게 테오도 시름시름 앓다가 형이 죽은 지 6개월 후에 숨졌다. 한 세기나 앞서 등장한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보석 같은 예술은 사장될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의외의 인물이 그의 예술혼을 이어갔다. 테오의 아내 요한나다.

요한나는 빈센트의 그림과 드로잉을 한 점도 빠짐없이 수습하였다. 형제가 주고받은 편지도 모았다. 무명의 화가를 세상에 알리는 일에 발 벗고 나섰다. 고흐 회고전을 열고 형제의 편지를 출판하였다. 아들에게도 아빠와 큰아버지가 매우 훌륭한 분이라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요한나는 죽음이 임박하기까지 형제의 편지를 번역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1925년 요한나가 죽은 후에는 아들 빈센트 반 고흐가 이 일을 이어갔다. 빈센트는 큰아버지의 그림을 네덜란드 정부에 기탁했고 정부는 반 고흐 미술관을 건립하여 영구 임대하는 형식을 취하였다. 뜨거운 예술혼과 끈끈한 가족애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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