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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희망으로 남을 수 있는 기준정의가 하나님의 뜻입니다(아모스 5,11-15; 마태복음 7,21-23)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4.02.15 03:45
▲ 미래가 희망으로 남기 위해서는 정의가 올바로 세워져야 한다. ⓒGetty Images

종교는 보이지 않으나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존재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를 보이는 것으로 표현하고픈 욕망이 끊이지 않아 그를 보이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하고 그를 지시하는 상징물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시도들이 수없이 많으나 성서는 지구와 이를 포함한 우주 전체가 그의 피조물로서 그의 존재와 그의 신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 자체가 그 존재를 지시하고 있으므로 그런 시도들은 무의미해졌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과학이라는 말로 대표될 수 있는 또 다른 시도들이 있습니다. 과학이 세계를 분석하고 설명하고 이용해도 과학은 이 세계가 지시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과학의 인간은 그 성취 때문에 자신이 마치 세계를 지배하고 소유하게 된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더이상 그 존재를 찾거나 의지할 이유가 없는 듯 그를 떠나고 불필요하다 여깁니다. 인간이 그 존재는 아닌데 그 존재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까지도 합니다.

인간은 이처럼 하나님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요? 이에 대한 전망은 단기적으로든 장기적으로든 결코 밝지 않습니다.

근래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인간형 로봇은 어떤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하게 될까요? 인간은 격투기를 비롯한 인간형 로봇들의 각종 경기를 구경하거나 인간형 로봇들로 구성된 아이돌을 즐길 수 있을까요? 인간형 로봇들이 산업현장에 투입되고 인간은 일로부터 해방될까요? 인간형 로봇들로 대신 전쟁을 하고 살륙하고 점령할까요? 인간형 로봇들이 교사나 의사나 판사나 목사와 승려 등을 대신할까요? 인간형 로봇들이 만들어낸 미술품 등 창작물을 관람할까요?

그 무엇이 되든 인간은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역할을 박탈당하고 그 앞에서 한없이 위축되고 그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될 것 같습니다. 신과 같이 된 인간이 그가 만들어낸 휴머노이드 로봇들로 교체되는 시대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물론 다양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이런 시도들 배후에는 모든 것을 자신의 이익과 편의에 종속시키려는 탐욕이 있습니다. 이익과 편의는 모든 분야에서 사람 대신 인간형 로봇을 선택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탐욕의 최종적인 결과는 인간의 자기 파괴입니다.

이런 시대에 사람이 사람됨과 그 존엄성을 지키며 이 땅에서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묻고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길을 하나님의 뜻에서 찾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본문에는 이른바 탁월한 영적 능력을 지녔다는 사람들이 언급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오늘날 ‘주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능력의 거룩한 종이라 칭송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여 주여 삼창하면서 신유은사나 귀신축출이니 예언이니 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대형교회를 세우며, 또한 권력자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위해 집회를 열고 축복을 빌어주고 권력의 비호를 받고 온갖 혜택을 누리는 성공한 목회자들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로 인정받을까요?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클 것 같습니다. 그들이 자랑스레 내세우는 일들이 주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불법으로 판단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의 가르침입니다.

지극히 종교적인 영적 능력의 일들이 불법이 되고 그 일들을 하는 자들은 주님이 모르고 주님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기막힌 일입니다. 도대체 이리 되는 까닭이 무엇인지요? 예수께서도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쫓아내지 않았습니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예수께 그러한 것들은 목적도 아니고 자기를 자랑하는 능력도 아닙니다. 그에게 기적은 기적은 불쌍한 마음의 표현이고 해방의 한 표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를 드러내고 그의 말씀이 참임을 뒷받침하고 그의 근원이 하나님을 보여주는 도구입니다.

이와 달리 저들에게 능력은 다름 아닌 자랑과 이익과 명성과 권력을 위한 도구입니다. 바로 이 때문에 그들의 능력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불법이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과연 무엇인지요?

아모스 본문은 선을 구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사는 길이고 삶을 낳는 길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악을 선호하고 악을 편들며 악을 행합니다. 무엇보다 제도를 악용해 힘없는 자를 착취하고 약자를 억압하고 의인을 학대합니다. 성문의 법정에서 이를 저지하고 압제자들을 응징해야 합니다. 거기서 옳은 소리가 나오고 바른 판결이 내려져야 하는데, 아모스의 세대는 이를 싫어합니다. 지금 세대는 어떤지요?

시대가 악하니 시대를 악하다 고발하고 양심을 일깨우며 약자의 삶과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 일을 해야 하는 지혜자라는 것들이나 지식인이라는 것들이 도리어 시대에 영합하는 소리나 하거나 세상을 등지고 아예 침묵합니다. 아모스는 세상이 악하므로 악한 때임에도 지혜자가 이 악한 때에  치묵한다고 고발합니다(암 5,13).

불법을 행하는 능력자들은 이런 때를 이용하여 세력을 불리고 축재를 하고 세상을 어지럽히고 더욱더 악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때에 악을 미워하고 악을 멀리하고 악과 타협하지 않고 정의를 세우는 것이 어느 시대에나 변치 않고 통용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시고자 하는 평화는 정의와 공의가 그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아모스는 이 기초를 땅 위에 든든히 세우는 것이 법정임을 밝힙니다. 법정이 정의의 샘입니다, 거기에서 정의가 흘러 넘칠 때 정의는 사회 구석구석을 적시며 강물처럼 온땅에 흐를 것입니다. 그러한 법정을 세우는 것이 특히 지금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침묵하는 지혜자들이나 지식인들처럼 이같은 하나님의 뜻을  모른 척 하시겠습니까?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되겠습니까? 작은 힘들의 연대가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만들 것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미래를 준비하는 기준이 된다면, 4차혁명 시대에도 인간의 존엄성과 인간다운 삶을 실현시킬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한 변화를 위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각하고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오늘이기를. 인간다운 미래를 맞도록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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