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칼럼
평화준비형 인간과 전쟁준비형 인간양재섭의 타원형 평화 에세이 (1)
양재섭(평화수필가) | 승인 2024.02.16 04:39
▲ Staff Sgt. Jamal Sutter ⓒWikimediaCommons

일상생활의 대화에서 평화 이야기가 나오면 흔히 사람들은 전쟁을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통상 우리 말의 순서도 평화와 전쟁이 아니라 ‘전쟁과 평화’이다. 끔찍한 전쟁의 소식은 시시각각 들려오는데 평화는 그렇지 못해서일까? 전쟁은 가깝고 평화는 멀리 있는 것일까? ‘전쟁과 평화’라는 제목의 영화나 소설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한반도의 역사에서도 전쟁하면 6.25 한국전쟁을 퍼뜩 소환하지만 평화하면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어 머뭇거리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이라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살아간다. 그런데 안타까운 현상이지만 무의식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속임을 당하는 수가 종종 있다. 제법 흔한 일이지만 아마도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구호를 당연한 것으로 오해하는 일이 그런 사례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형용 모순이다. “사랑을 갈망하거든 증오부터 배워라”고 한다면 피부에 약간의 느낌이 올까? 하고 억지를 부려본다.

그런데 이 마뜩잖은 격언의 기원은 멀리 로마제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군사저술가인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Flavius Vegetius Renatus)가 쓴 『군사학 논고(De Re Militari)』라는 책에서 찾을 수 있다. 출판사의 홍보에 의하면 현재까지도 군사학의 고전 중의 고전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이 나온 4세기는 로마제국이 이미 평화 전성기 정점을 찍고 쇠퇴기에 들어선 때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313년)하였고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화(380년)했는데 결국 서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으로 분열(395년)되고 말았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군사적 안보를 튼튼히 하자는 전략적 의미로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병법을 표현했을 것으로 양해는 되지만 아무튼 전쟁을 준비하자는 선동적 언표 속에서 어쩐지 평화가 연상되지는 않는다.

그에 비하여 독일의 현대 국제정치학자 디터 젱하스(Dieter Senghaas)는 그의 저서 『지상의 평화를 위하여(Zum Irdischen Frieden)』에서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하라”는 격언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전쟁준비 격언과 평화준비 격언을 대비시킨 분석을 보면 구체적 설명이 없다 해도 대충 짐작이 간다. 아마도 이것이 격언이 주는 간결성과 전파성의 장점일 것이다. 그렇다! 평화가 필요하면 평화를 준비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 아닌가? 어느 한 국가의 전쟁 준비가 잘 되면 잘 될수록 안보가 튼튼해지는 것 같지만 다른 나라 역시 경쟁적으로 국방력을 증가시키다 보면 국내에서는 경제적 불안이 가중되고 상대적 안보가 불안해진다는 것이 소위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안보 딜레마’이다. 안전보장이 실질적으로 증가되지 않는다는 역설이다.

우리네 사회에서도 주변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평화준비형 인간과 전쟁준비형 인간이 공존하고 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늘상 온화한 표정으로 평화를 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끝마다 선제공격이니 참수작전이니 하는 언표로 비평화적 의식을 표출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남의 심기를 건드리는 빈정거림 취향의 언어습관은 백해무익하다. 옛말에 ‘말 한마디로 나라를 흥하게 할 수도 있고 말 한마디로 나라를 잃을 수도 있다고 했다(一言而興邦,一言而喪邦).’ 또 ‘말 한마디로 천량 빚도 갚는다’는 속담도 있다. 말 한마디로 평화를 만들 수도 있고 말 한마디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평화를 만들어 내는 지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평화라고 쓰고 전쟁이라고 읽는 오독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평화지향성은 현대인이 전쟁의 질곡에서 해방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자신이 평화준비형 인간인지 혹은 전쟁준비형 인간인지 스스로 점검해 보고 혹시 속마음은 그렇지 아니한데 일시적으로 잘못 판단하였거나 말이 헛나오고 있는지도 살펴볼 일이다. 우리 모두가 평화를 평화라고 말하는 선구자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참에 “평화 권하는 사회”의 분위기를 한껏 북돋아 보면 어떨까?

양재섭(평화수필가)  peace-essayist@kakao.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4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