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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설교고흐와 산책하기 (25)
최광열 목사(인천하늘교회) | 승인 2024.02.17 03:24
▲ <성경이 있는 정물> (1885, 뉘넌, 캔버스에 유채, 65.7×78.5cm, 반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랄 때가 있다. 내 앞에 아버지가 서 계신 것이다. 닮고 싶었던 아버지이고, 넘어야 했던 아버지이다. 빈센트도 그랬을까? 그에게 아버지는 넘사벽이었다. 넘고 싶은 아버지이지만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인생에서 자립, 또는 독립이란 아버지를 극복하는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쉽게 그 자리를 내어주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의 삶이 보여주듯 아버지는 운명적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햄릿>이나 <라이언 킹>에서 보는 대로 아버지는 죽어서도 존재한다. 아버지는 부재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신 같은 존재이다.

생물학적으로는 부재하지만 의식에서는 더 강력한 실존이다. 그래서일까? 한용운은 <님의 침묵>에서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고 한 표현이 이해될 듯하다.

빈센트에게 아버지는 넘어야 할 언덕이었지만 비빌 언덕이기도 하였다.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했던 빈센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아버지와 맞선 일 가운데 가장 큰 사건은 클레시나 후르닉과 관련된 일이었다. 시엔이라고도 알려진 이 여인은 빈세트보다 세 살이 많았고, 세탁부의 일을 하면서 매춘하는 여성이었다. 다섯 살짜리 딸이 있었고 임신에 병까지 든 상태였다.

어쩌자고 빈센트는 이 여인을 사랑한 것일까? 어떻게 그런 여인에게서 빈센트는 자기 삶의 빈구석을 채워줄 무언가가 있다고 느꼈을까?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대노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아비가 매춘부를 아내로 맞으려는 아들의 진심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사랑과 관련해서 빈센트는 늘 진실했다. 1873년 직장을 따라 런던에서 하숙할 때 하숙집 딸 유제니 로이어는 이미 결혼을 약속한 연인이 있었지만, 스무 살 청년 빈센트는 이를 인식하지 않았다. 당연히 빈센트의 청혼은 거절되었고 마음의 상처는 깊고 오래갔다.

1881년에는 미망인이 된 사촌누이 케이 보스가 에텐의 아버지 집에 왔을 때 둘은 많은 대화를 하였고 빈센트는 사촌누이에게 연정을 느꼈다. 케이는 빈센트보다 일곱 살이 많았고 여덟 살 된 아들도 있었다. 양가의 반대가 심했다. 가능하지 않은 결혼을 꿈꾸었던 빈센트의 속앓이만 깊어졌다.

그런가 하면 1884년에는 뉘넌의 집 이웃에 살던 마고 베게만과 사랑을 속삭였다. 베게만은 빈센트의 어머니가 병상에 있을 때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다. 두 사람의 사랑은 간절하였다. 베게만은 빈센트보다 12살이 많았고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양가의 반대가 심했고 아버지는 그 여파였던지 이듬해인 1885년 3월에 세상을 떴다. 사랑에 있어서 빈센트는 언제나 진실했지만 항상 현실적이지 않았다. 이런 사랑이 성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빈센트는 자신의 무모한 현실 인식에 대하여서는 간과한 채 시엔을 거부하는 아버지에 대하여 분노했다. 사랑과 긍휼을 설교하는 목사인 아버지가 불쌍하고 가련한 시엔을 긍휼과 긍정의 눈으로 보지 않는 현실을 참을 수 없었다. 설교와 삶은 다르다. 삶에 이르지 못하는 설교는 공허한 종교적 주술에 가깝다. 빈센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빈센트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아버지도 빈센트를 사랑했다. 다만 사랑의 표현 방법이 달랐고, 갈등을 푸는 방식이 틀렸다. 빈센트는 성경에 갇혀 사는 아버지가 측은했고, 아버지는 제구실 못 하는 아들이 답답했다.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빈센트는 열등감과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아버지는 그조차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이 없었다.

1885년 3월 26일 아버지가 죽고 나서 빈센트는 아버지와 화해의 기회를 가졌다. 화면을 가득 채운 성경, 낡고 작은 소설책, 불 꺼진 초를 그린 <성경이 있는 정물>이 그것이다. 화면 속의 <성경>은 아버지 테오도르 반 고흐가 평생 소중히 여겼던 유품이고, 소설책은 빈센트가 읽은 에밀 졸라의 <삶의 환희>이다. 그는 아버지와 다른 세계관을 갖는 일이 아버지를 배신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성경>과 <삶의 환희>는 상대적, 또는 적대적이거나 이율배반이 아니다. 그림에서 아버지의 믿음과 아들의 세계관은 조화를 이룬다. 이렇게 해서 빈센트는 죽어서도 존재하는 아버지를 극복하고 화해하였다. 그것이 그림 속 <성경>의 펼침 면이 ‘이사야 53장’임을 숨기지 않은 아들의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벗어나야 할 새장으로 존재한다. 누가 됐든 아버지를 넘어서기란 쉽지 않다.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하나님처럼 두려운 존재이다. 차츰 성장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고 친밀해지지만, 시간은 언제나 화해와 초월의 기회를 허락하기에 인색하고 조급하다. 아버지 부재의 시간을 살면서도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 남아있는 이유이다. <성경이 있는 정물>을 통하여 극복과 화해와 초월의 메시지를 읽는다. 빈센트의 설교가 기가 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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