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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비움의 길을 나서라“나를 따르라”(누가복음 9:57-62)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4.02.19 03:08
▲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비움을 실행하는 것이다. ⓒGetty Image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성도는 일상에서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주지도 못하는 완전한 평안이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평안은 상황이 내 뜻대로 변화됨으로써 얻어지는 평안이 아닙니다. 나의 바깥에 있는 외적인 것들에 의지하는 평안이 아닙니다.

성도가 누리는 평안은, 성령님과 함께 내가 여전히 하나님 안에 존재한다는 평안, 즉 내면의 평안입니다. 이 평안이 영원한 것이고, 진정으로 누려야 할 평안입니다. 물질과 외적인 것들은 일시적으로는 기쁨을 주고, 이제 평안하다고 속삭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것들은 오히려 성도에게 평안이 아닌 두려움과 불안을 가져다줄 뿐입니다. 불완전하고, 사라져버릴 무언가를 의지하지 않고,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내 안에 주어진 평안을 선택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14일인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순절(四旬節, 영어: Lent)은 부활절을 앞두고 주일을 제외한 40일간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경건하게 보내는 기독교의 절기입니다. 이 절기 동안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참회하고, 금식하는 등의 신앙생활을 해 왔습니다.

사순절 기간에 성도는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이 맞고, 모욕당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얼마나 아프셨을까?’에 초점을 맞춰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닫는 시간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 고난의 목적이 무엇이었을까?’에 초점을 맞춰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도록 수련하는 시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건,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요한복음 14:12) 예수님과 같이 된다는 건,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는 성도,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하는 성도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순절의 40일이라는 시간은 예수님이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영적인 수련을 하셨던 40일의 시간과 같습니다. 이 기간 예수님은 악마의 시험을 받았지만, 그 시험을 모두 이기시고 성령의 능력을 입어 갈릴리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지나가기는 했지만, 사순절의 처음인 재의 수요일에 이루어지는 ‘회개’를 시작으로 40일간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말씀을 내 삶에 체화시키는 영적 수련을 해야 합니다.

‘회개’란 지난 몇 주간 성도님들께 말씀드렸던 ‘자기 비움’입니다. 내 뜻대로, 내 욕망대로 살아왔던 삶을 멈추고, 이제 비워진 그 자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겠다는 결단이고 삶의 돌이킴을 말합니다. 이 자기 비움은 사도 바울의 고백,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갈라디아서 2:20a) 그리고 예수님의 고백, “그것은, 내가 내 뜻을 행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왔기 때문이다.”(요한복음 6:38)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작된 사순절에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이 ‘자기 비움’을 통해 자신이 보여주신 삶과 말씀이 이어지기를 바라십니다.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시며 성도를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누가복음 9:23-24) 사순절 기간 이처럼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초대에 응해, 예수님이 걸어오신 길을 따라 걷게 되는 성도, 참 생명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려 할 때 성도에게 던져지는 질문 한 가지가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물었던 예수님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첫 구절입니다. “57 그들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나는 선생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조언자인 선생님으로 받아들일 것이냐 아니면, 내 인생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것이냐가 바로 우리의 고민입니다. 인생의 조언자 정도로 여길 때 성도는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 모든 삶을 맡길 주님으로 여길 때 성도는 예수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자신을 따르겠다는 이에게 예수님은 어떤 말씀을 해주십니까? “5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큰일 났습니다. 예수 선생님을 따르겠다고 했는데, 선생님의 첫 마디가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듣는 이가 동공 지진이 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 대답은 예수님에게 찾아와 영생에 관해 물었던 한 부자 젊은이를 떠올리게 합니다. 부자 젊은이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고 하면, 가서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복음 19:21)

큰일 났습니다. 영생은 내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예수를 따를 때 얻어집니다. 이 젊은이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었던 ‘광야의 삶’을 요청하십니다. 머리 둘 곳 없는 삶으로 초청하십니다. 그래서 이 젊은이는 어떻게 응답합니까?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근심을 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마태복음 19:22)

예수님은 떠나가는 부자 젊은이를 보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복음 19:23-24)

소유가 많으면 많을수록 예수님이 따라오라고 할 때,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 순간, 성도의 민낯은 드러나게 됩니다.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지 아닌지 그리고 내가 정말 예수님을 믿었는지 믿지 않았는지가 말입니다.

부자 젊은이가 나오는 본문과 교차 본문인 누가복음에서 베드로는 젊은이와 예수님이 나눈 이야기를 듣고서 예수님과 이런 대화를 나눕니다. “베드로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에게 속한 것들을 버리고서, 선생님을 따라 왔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식을 버린 사람은,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로 받을 것이고, 또한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누가복음 18:28-30)

베드로와 제자들은 정말이지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로 받을 것이고, 또한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는 축복의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나와, 내 가족의 안녕을 위해 해왔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우리의 생각과 신앙생활을 전복시키십니다. 나와 내 가족을 버릴 때,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로 받을 것이고,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처음 질문했던 사람 말고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59 또 예수께서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60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죽은 사람들을 장사하는 일은 죽은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여라.’”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를 예수님은 거절하시고 먼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십니다. 따라가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겠다는데 예수님은 거절하십니다. 뒤에 나오는 대화도 다르지 않습니다. “61 또 다른 사람이 말하였다. ‘주님, 내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안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주십시오.’ 62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이 사람은 ‘주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이라고 말한 이와 다릅니다. 게다가 따라가지 않겠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떠십니까? 작별 인사를 할 시간도 주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그 즉시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 즉시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의 선생님이 아닌 나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이 땅 가운데 우리처럼 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온 세상에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회개의 삶’, ‘자기 비움의 삶’을 보여주시고 오늘날 성도에게 이런 나를 따르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성도는 이런 요청에 마땅히 응하는 사람이고, 온 삶을 쏟아부어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머리 둘 곳 없으셨던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다른 어떤 일보다도 생명을 살리라는 예수님의 요청에 먼저 응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미루지 않고 그 즉시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요한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은 모두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요한1서 2:15-17)

붓다는 생전에 “보라, 세계가 불타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좋아함과 싫어함, 잘못 앎이라는 세 가지 불길에 온 세상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의미의 말입니다.(페이스북 문규민님의 글에서 가져옴)

맞습니다. 세계는 지금 불타고 있습니다. 개인과 집단의 욕망과 분노, 차별과 파괴로 세상이 불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성도는 참 생명의 삶이 무엇인지, 사랑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순절 기간,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요청에 응하시는 성도가 되어, 예수님이 사신 삶을 이 땅에서 이어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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