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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자 너머에 계시는 이를 찾아《우리 안의 가짜 하나님 죽이기를》 (호세 마리아 마르도네스 / 홍인식 역 [서울: 신앙과지성사, 2018]) 읽고
최성호 | 승인 2024.02.22 04:02

말은 사물을 설명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런데 말은 수단이자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될 수 있다. 특히 시각화되지 않은 것에 대한 표현일 경우 그런 경향이 더 심하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은 전지전능全知全能이고, 무소불위無所不爲이며, 어떤 형상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말로 설명하고 보니 왜곡된 하나님이 됐고 우상화된 하나님이 됐다.

이 책에서는 말로 인해 왜곡되고, 우상이 된 하나님을 죽이고 새로운 하나님으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즉 왜곡된 하나님에 대한 ‘재정의’다. 자 다시 돌아가 보자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주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로 시작한다. 이미 주기도문에서부터 ‘하늘에 계신다’ 그리고 ‘아버지’라 정의된 의인화된 하나님이다.

이런 것이 은연 중 우리 뇌리에 박혀 하나님을 정의한다. 그렇다 보니 인간화된 하나님이 됐고, 교조적인 하나님이 돼버렸다. 하나님은 주기도문에 나오는 하나님처럼 하늘에만 계실까? 아니면 내 바로 옆에는 없을까?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는 안 될까? 그때 하나님은 어떤 모습일까? 이런 상상을 더 해보지만 세뇌된 하나님을 벗어나긴 힘들다. 그래서 무서운 하나님도 되고, 모순으로 가득한 하나님도 된다.
 
기독교국가간에도 전쟁을 많이 했다. 그 전쟁을 하면서 서로가 하나님께 승리해달라고 기도한다. 서로 전쟁을 하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처럼 의인화되고 우리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모순에 가득한 하나님이 돼버렸다. 이젠 이런 하나님을 다시 살펴 볼 때가 됐다. 그것이 이 책의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이다.

기독교 신자라면 십계명을 누구나 안다. 십계명이 단순한 율법이 아니다. 거기에는 기독교 정신이 들어있다. 십계명에 제 1계명이 “내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무엇을 해달라고 기도한다. 그런데 그것이 진정한 종교적인 선善의 의미일까? 그런 하나님은 우리가 바라던 것을 투영한 우상은 아닐까?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의 기도는 너무 이기적일 때가 많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은 해줄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그런 이기가 다른 사람의 희생을 수반하는 것임에도 그냥 그렇게 해달란다.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은 없이 우리의 이기적인 요구에 답을 해주는 하나님이 정말 우리가 아는 하나님일까?

이런 방식으로 정의된 하나님은 어쩌면 우리 만족을 위해 만들어진 우상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그런 하나님을 버리자는 것이다. 이 책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고 그것을 통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게 하셨다고 했다.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예정한다면 인간은 자유를 누릴 수 없는 구속 상태가 되므로 그런 것을 하나님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하나님은 없다는 것이다.

구약성경舊約聖經을 ‘Old Testament’으로 신약성경新約聖經을 ‘New Testament’라고 한다. 신약성경은 새로운 약속이라는 뜻이다. 예수는 모세 십계명에 새로 계명을 더함으로써 둘의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구약성경에서의 언약이 자연신으로써의 하나님과의 약속이고 원시적 삶에서의 질서를 이야기했다고 한다면, 신약성경에서 예수가 더한 언약은 이성적 신과 인간의 새로운 공동체적 삶에 대한 정의다.

예수는 모세 십계명에 더해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여호와를 사랑하라,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즉 권위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섬김을 강조했고 모든 사람에게 무차별적 사랑을 하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될까?

예수의 이런 사랑은커녕 차별하고 더 나아가 ‘불신자’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악마로 규정했던 것이 그간 기독교 모습이다. 이 책에서 예수는 그 이전과는 다른 이타적이고 보편적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사랑하는 하나님을 드러내려했다고 했다. 그런 모습을 지금 기독교인들이 보여주고 있는가 묻는다면 누구도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종교를 믿는 이유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종교를 믿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를 얻고 사랑을 함께 나누어 모두가 평화롭게 잘 살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위 잘나가는 교회와 그 목사들 모습에서 그런 모습은커녕 탐욕에 가득한 모습만 보일 뿐이다. 커다랗고 화려한 성전, 그 안에 가득한 신도로 교회를 평가한다.

과연 이런 모습이 하나님이 바라는 바일까?

이제 탐욕을 제거하고 하나님이 바라시는 진정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물들어있는 왜곡되고 우상화된 하나님부터 제거해야 한다. 이기적 기복신앙,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로 ‘불신지옥’이라는 외치는 편협한 하나님에서 벗어나,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으로 치환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한다.

최성호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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