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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아니라, 내가 왕이다“세상을 전복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마가복음 1:1)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4.02.26 02:38
▲ 세상의 황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왕이셨다. 십자가를 지신 왕이셨다. ⓒGetty Image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주중에 내내 눈이 오고, 비가 오고, 풍랑주의보가 있었습니다. 바닷가에서 일하시는 성도님들은 배가 바다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한 주간 수입이 전혀 없으셨을 겁니다. 편의점 사장님께도 물어봤더니 눈이 오면 군인들이 외출 중에 다칠까봐 외출 통제가 되어 장사가 전혀 되지 않는다고도 하셨습니다.

삶은 늘 내 뜻대로 되지 않고, 불안정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성도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완전한 평안을 주셨고,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내 삶을 인도하고 계신다.’ 이런 고백과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살고 계십니까? 이 고백은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날마다 이 고백과 감사를 통해 평안을 누리시는 성도님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순절도 벌써 열흘이 지났습니다. 지난주 사순절에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라는 초대에 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선생님이 아닌 주님으로 섬기는 이들입니다. 예수님께 나의 생명, 삶, 마음 모두를 맡기는 이들만이 예수님의 초대에 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초대에 응하는 삶은 세상의 가치와 목적과는 전혀 상반되는 삶입니다. 그렇기에 무분별해 보이고, 바보 같은 삶처럼 보이고, 불안정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초대에 응하는 성도는 “나를 따르려고 제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백 배의 상을 받을 것이며, 또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마태복음 19:29)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삶 가운데 경험될 줄 믿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럼 예수님은 어떤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과 이어지는 마가복음의 증언을 통해 이야기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 이 한 줄에는 엄청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제목이 무엇입니까? 세상을 전복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짧은 이 한 구절에, 예수님이 왜 세상을 전복시키실 분인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당시 로마가 통치하는 제국주의적 상황에서 ‘하나님’ 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로마 황제에게만 쓸 수 있는 칭호였습니다. 

“지방 총독들이 황제에게 공식 서신을 쓸 때 ‘우리 주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사용했습니다. 마가복음 1장 1절은 예수를 이 세상의 ‘왕’이라고 선포하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하는 어느 비문에 쓰인 문구를 패러디한 것이다. ‘신(God) 아우구스투스의 생일은 그로 인해 도래하게 될 세상을 위한 복음의 시작이라.’ 당시 로마 사람들에게 마가복음 1장 1절은 ‘신성모독’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그래서 당시 ‘복음’이라는 단어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복음의 개념과 다르게 사용되었습니다. “로마 시민들에게 기쁜 소식은 평화의 왕 로마 황제와 로마왕국 자체였다. 곧 ‘로마의 황제와 그 행적 그리고 그 법과 이방 무법 한 왕국에의 승리 및 정복’이 복음이었다. 당시의 로마 민중들에게 복음은 곧 로마의 정복과 확장, 즉 로마왕국의 통치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 증거로 AD 9년 Priene 비문의 Augustus 황제에 대한 기록이 있다.”

‘하나님의 아들’, ‘복음’은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오로지 황제에게만 쓰일 수 있는 칭호였고, 다른 누군가에게 사용된다면 반역이기에 죽임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칭호를 마가복음의 첫 시작에서 예수님에게 부여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이겠습니까? 지금까지 당신들이 알고 있던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 복음은 거짓이었다. 이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 복음을 알려줄 세상의 가치관을 전복시킬 새로운 구원자에 관한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마가복음 1장 1절은 유대인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예수님에게 쓸 수 없는 칭호였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는 특히나 인정할 수 없는 칭호였습니다.

요한복음 10:31-33 “이 때에 유대 사람들이 다시 돌을 들어서 예수를 치려고 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권능을 힘입어서, 선한 일을 많이 하여 너희에게 보여주었는데, 그 가운데서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고 하느냐?’ 유대 사람들이 대답하였다. ‘우리가 당신을 돌로 치려고 하는 것은, 선한 일을 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독하였기 때문이오. 당신은 사람이면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였소.’”

요한복음 19:6-7 “대제사장들과 경비병들이 예수를 보고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러자 빌라도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이 사람을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하고 말하였다. 유대 사람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율법이 있는데 그 율법을 따르면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그가 자기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 구절에 나오는 ‘그리스도’도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메시아’의 헬라어 역, ‘기름부음 받은 자’)는 로마의 압제에서 유대인들을 해방할 군사 및 정치 지도자를 대망하는 말이었지만,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듯 예수님은 군사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이런 방식으로 유대인들을 해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지도자가 아니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라고 오늘 본문은 명시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예수님은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들의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복음’을 들고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세상의 가치관, 종교적 가치관 모든 가치관을 뒤엎어버리시는 예수님의 등장을 마가복음 1:1 이 짧은 문장 속에 담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마가복음 1:15)고 선포합니다. 해방의 날, 독립의 날이 드디어 다가올 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런 이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선포는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였습니다. 해방 운동, 독립 투쟁이 아니라, 회개 운동을 합니다. 로마와 싸우라 하지 않고, 회개하라고 합니다. 여러모로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는 선포이고, 행동입니다. 모든 이들의 기대와는 다른 행보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갈릴리에서 어부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이 또한 충격적인 행보입니다. 변두리로, 억압받는 곳으로, 가난하고 학식이 없는 이들을 찾아가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사도행전 4:13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본래 배운 것이 없는 천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자신있게 말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두 사도가 예수를 따라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충격적인 시작과 행보가 연이어 마가복음 본문을 통해 이어집니다. 도래할 세상은 유대인들이 바랬던 방식으로, 바랬던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알아왔던 그들의 모든 가치관과 지식을 파괴해야만 했습니다. 무너뜨리고 다시 쌓아 올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은 이러하다.”라는 이 한 문장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신명기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들어갈 가나안 땅에서 지금까지 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들어갈 가나안 땅에서는 다른 나라와 비슷한 나라를 만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즉, 전혀 다른 나라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기에 애굽의 법과 규율, 문화, 종교적 모습뿐 아니라 가나안 땅에 정착해 있던 여타 다른 나라와도 전혀 다른 법, 문화, 식습관 등등을 아주 세밀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왕에 관한 규율에도 그렇습니다. 신명기 17:16-19 “왕이라 해도 군마를 많이 가지려고 해서는 안 되며, 군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이집트로 보내서도 안 됩니다. 이는 주님께서 다시는 당신들이 그 길로 되돌아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왕은 또 많은 아내를 둠으로써 그의 마음이 다른 데로 쏠리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자기 것으로 은과 금을 너무 많이 모아서도 안 됩니다. 왕위에 오른 사람은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 보관되어 있는 이 율법책을 두루마리에 옮겨 적어, 평생 자기 옆에 두고 읽으면서, 자기를 택하신 주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과 규례를 성심껏 어김없이 지켜야 합니다.”

세상에 당시에 이런 왕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나라와 세상 가운데 있는 어떤 나라도 만들지 못했던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이루어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지식과 경험 모든 것을 무너뜨려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구약시대에 일어난 ‘전복’입니다.

오늘 마가복음에서도 그렇습니다. 로마 황제가 다스렸던 그런 나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알고 있던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가치관을 전복시키는 새로운 나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포와 삶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적, 이상적 세계관을 먼저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세계관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시 세상의 모든 가치를 전복시키신 예수님의 말씀과 삶은 오늘날에도 성도들을 통해 모든 세상의 가치를 전복시키시고 하나님 나라를 향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뜻과 목적대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가르쳐 주시는 삶의 방향,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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