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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케 호모고흐와 산책하기 (27)
최광열 목사(인천하늘교회) | 승인 2024.03.01 01:41
▲ <붉은 리본은 단 여인의 초상> 1885년 12월, 캔버스에 유채, 60×50CM, 개인소장

빈센트는 자신보다 250년이나 앞서 활동한 렘브란트를 흠모했다. 그 시대에도 뛰어난 화가들이 많았으나 빈센트는 앞세대에서 스승을 찾았다. 그가 렘브란트를 좋아한 이유는 렘브란트에게서 따뜻한 인간미를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빈센트가 자신을 화가의 길로 안내하는 안톤 모브와 함께 암스테르담 미술관에서 렘브란트의 <유대인 신부>(1665)를 보았을 때 얼음 인간이 되어 그 한 점 그림에만 집중하였다. 빈센트는 이 그림 앞에서 앉았다가 섰다가 기도하는 사람처럼 두 손을 맞잡고 있다가 그림을 가까이에서 강하게 응시했다가 다시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하며 어쩔 줄 몰라 하였다.

그는 이 그림에 대하여 “이 그림 앞에서 보름 동안 마른 빵 부스러기만 먹으며 앉아 있을 수 있다면, 내 삶의 십 년도 기꺼이 바치겠다”고 표현하였다.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이 1817년 피렌체를 방문하였을 때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1599) 앞에서 극도의 흥분을 느꼈다는 스탕달 신드롬이 빈말이 아니다.

가난한 화가 빈센트가 좋은 모델을 구하기란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한번은 동생에게서 돈이 오자 검은 머리카락의 매력적인 모델을 구하고 실물 크기로 <붉은 리본을 단 여인의 초상>(1885)을 그렸다. 모델은 극장식 식당의 종업원이었는데 빈센트는 그녀에게서 ‘에케 호모(Ecce homo, 이 사람을 보라)’의 표정을 읽었다(1886. 1. 28 편지).

모델의 어떤 표정이 빈센트에게 그런 느낌을 들게 하였을까? 그녀는 밤새 식당에서 일하며 손님의 시중을 드느라 지쳐있었다. 손님들이 건네는 샴페인은 그녀에게 쾌락이기 전에 슬픔이었다. 그녀에게 매력과 슬픔이 어울리지 않게 섞여 있었던 것일까?

▲ 안토니오 치세리, <이 사람을 보라> (1860~1880, 캔버스에유채, 380×292cm, 루가노미술관_루가노)

그런 그녀의 얼굴에서 빌라도가 군중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며 ‘보시오. 이 사람이오’(요한복음 19:5)하는 장면을 상상한다는 점이 역설적이어서 이채롭다. 미술에서 에케 호모 도상은 중세 후기에 널리 알려진 가학적 도상이다. 그런데 에케 호모의 예수야말로 인류 구원을 위해 성육신한 자학하는 하나님이 아니던가?

“누군가 렘브란트를 좋아한다면 그는 하나님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며, 그 사실을 분명히 믿게 될 것이다.”

빈센트가 렘브란트를 좋아한 이유 가운데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었다는 점이다. 목회자의 길을 그만두고 화가의 길을 걷고자 결심하였을 때 렘브란트의 그림을 자주 관람하며 사람을 따스하게 보는 대가의 눈길과 하나님에 대한 신심을 지닌 신앙인 렘브란트를 읽었다. 모름지기 이때 빈센트는 그림으로 설교하는 삶을 꿈 꾸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미술과 설교는 다르지 않았다.

최광열 목사(인천하늘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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