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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외면하는 그것이 삶과 신앙의 진리이다하나님 나라를 위한 염려(민수기 11,11-15; 마태복음 6,31-33)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 승인 2024.03.07 03:36
▲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 속에 삶과 신앙의 진리가 담겨 있다. ⓒhttps://pxhere.com/en/photo/379838

오늘 민수기 본문은 시내 산을 거쳐 본격적으로 가나안 땅을 향한 행진을 시작한 이스라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집트를 떠나 시내산에 도착하기까지 이스라엘의 여정은 원망과 불평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야훼의 계약 상대가 될 수 없었음에도 야훼께서는 그들과 계약을 맺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겠다는 이스라엘을 인정하시며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을 그의 백성으로 삼아 주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새로운 존재가 된 이스라엘에게는 야훼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을 인도해 주신다는 표지로서 성막과 성막 위의 구름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마치 시내산 사건 이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집트를 처음 떠날 때 벌어졌던 상황들과 다를 바 없이 이스라엘은 야훼 앞에서 심한 말로 불평하고 아우성칩니다(11,1-3).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후 이스라엘의 불평은 계속된 것으로 보이고, 11,4 이하에서는 구체적으로 그 이유가 고기를 먹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고 보도합니다.

이전에도 이스라엘은 광야라는 환경으로 인한 굶주림과 목마름 때문에 불평해 왔지만, 이번에는 다른 성격의 불평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미 만나가 음식으로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광야에서 이스라엘의 생명을 보존해 주었던 야훼의 선물 만나는 이제 너무 흔해서 신물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만나가 입맛마저 떨어지게 한다며 여러 가지 음식을 먹던 이집트 시절을 그리워하고 고기 생각이 간절해져 우는 데까지 이릅니다.

따라서 성서는 이러한 불평을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탐욕에 사로잡힌 때문이라고 평가합니다. 이스라엘은 점점 더 좋은 것을 바라며 탐욕을 부렸고 이로써 지난 야훼와의 역사를 부정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훼는 대단히 화가 나셨고 모세도 언짢아하며 예전과는 다른 행동을 보입니다.

예전 같으면 이스라엘에게 가거나 그들을 위해 야훼께 용서를 구했을지 모르나, 여기서 모세는 오늘 함께 읽은 본문과 같이 비난조로 야훼께 대담하게 질문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짊어지기 힘든 짐으로 표현하며, 야훼가 그 짐을 자신에게 맡긴 것은 자신을 너무 괴롭히는 일이라고, 자신에게 너무도 무거운 짐이라고 항변합니다. 광야에서 고기를 먹게 해달라는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이스라엘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으니 차라리 자신을 죽여 달라고 탄식합니다.

모세의 이 대담한 진술은 사사로운 이유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한 집단의 지도자로서 그에게 맡겨진 과제가 감당할 수 없이 무거운 것임을 깨달은 절망의 표현일 것입니다. 시내산 계약을 통해 이스라엘은 예전의 부족이나 씨족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는 하나의 백성이 되었지만, 이스라엘이 과거와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자 모세는 더 이상 이스라엘을 그 목표로 이끌어 갈 수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이러한 절망적인 탄원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야훼께서 모세에게 응답하시고 그가 짊어진 짐을 여러 사람의 어깨에 나누어 지게 하는 해결책을 제시하십니다. 야훼의 해결책은 모세의 무거운 짐을 덜어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책임적으로 살고 앞으로 있을 여러 상황에서 스스로 타개해 나가도록 하려는 야훼의 바람이 또한 담겨 있을 것입니다. 비록 이스라엘은 그 이후에도 번번이 절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야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저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이 그의 기대와 그가 세운 목표에 부합할 수 있기까지 변함없이 이끌어 가십니다.

마태복음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은 염려가 떠날 날이 없습니다. 우리는 늘 크고 작은 염려와 근심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사실 인간은 시간 속을 사는 시간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현재는 언제나 미래 앞에 서 있고 따라서 인간은 언제나 내일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물음에 직면하기 마련입니다. 그 물음은 즐거운 기대일 수도 있고 괴로움, 불안일 수도 있지만, 그런 염려는 미래에 대한 적절한 대비를 하고 삶을 지속할 수 있게 합니다. 그만큼 염려는 인간의 삶의 주요한 일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보라고 하셨던 백합화와 새들은 비록 치열한 생존 싸움 속에서 살아가지만 미래를 염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인간이 내일을 위해 그리하듯이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미래를 위해 하는 이런 일들을 하나도 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준비할 수 없는 들꽃이나 하늘의 새들도 미래를 염려하지 않는데,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우리는 염려에 차서 미래를 바라볼 필요가 없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걸까요? 현실적으로 우리는 미래를 위해 삶의 수단을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제각각이고, 더욱이 오늘의 노력이 내일을 확고하게 보장해 주지 못하는 삶의 불확실성을 경험할 때가 많습니다. 미래를 준비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사람도, 미래를 스스로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자신에 대한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인간의 생명은 삶의 수단에 대한 염려에 의해, 의식주에 의해 유지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늘 돌보시며 먹이시고 입히시는 들꽃을 가리키며 하물며 너희에게는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며 자신에 대한 염려와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자신에 대한 염려를 극복하기를 호소하시고 또 다른 염려 앞에 우리를 세우십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한 염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씨앗이 뿌려지고 그 나라가 자라고 그 나라가 도래하고 정의와 평화가 실현될 날을 기다리며 염려하고 구하고 준비하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전에 자신의 삶의 안정을 위한 이익 추구의 자리였다면 사람들이 그 도구였다면, 이제 자신을 하나님 나라의 도구로 헌신하며 정의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실 것이다”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때로 이스라엘처럼 탐욕에 사로잡혀, 자신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앞세워 하나님 나라라는 우리의 목표를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의를 구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삶이라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우리의 책임을 다하고 우리의 실천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정의가 앞당겨 세워지기를 빕니다. 크고 작은 일에서 언제든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하루하루가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 차기를 빕니다.

이경훈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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