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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눈“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원합니다”(시편 19:1-14)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 승인 2024.03.11 03:26
▲ 세상의 악한 기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의 신앙적 시력이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Getty Image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성도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에서나 상관없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고, 말씀을 통해 이 평안이 우리 안에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어제 동지구회 여신도회 예배를 드리면서 성도님들에게 말씀드렸지만, “지금 한국 사회는 ‘평등’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모두를 공평하게 대한다는 의미의 평등이 아니라, ‘몇 평인가’, ‘몇 등인가’라는 의미의 평등입니다. 세상은 더 많은 평수와 더 높은 등수를 위해 헌신하라고 압박합니다.”(팔복 – 예수님의 세계관) 이런 삶이 옳다고, 지향해야 하는 삶이라고 속삭입니다.

몇 평에서 사느냐, 어떤 아파트에서 사느냐, 어떤 동네에서 사느냐와 몇 등이냐가 평안을 준다고 말하는 사회입니다. 하지만 이런 소유와 인정과 같은 우리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평안을 줄 수 없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누리는 평안은 대다수가 아닌 특정한 소수만 누릴 수 있고, 누리게 되더라도 일시적일 뿐 아니라, 더 불안을 경험하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주는 평안은 “이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같지 않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평안은 누구에게나 거저 주어졌을 뿐 아니라 영원하고, 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추구하는 헛되고 불완전한 평안이 아닌, 우리 안에 주어진 완전한 평안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성도는 “이 세상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며 가리키는 방향과 다른 방향, 때로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종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출애굽 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세상 나라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나라를 이루어가야 했습니다. 세상의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주관자는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셨고, 종교,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하나님이 알려주신 규칙을 가지고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신약시대로 넘어와 이런,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세상의 가치와는 다른 삶을 완벽하게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도 받으셨지만, 당시 종교의 영역이건, 정치의 영역이건 상관없이 기득권 세력이 받아들일 수 없는 말씀과 삶을 보여주셨기에 세상의 오해와 미움을 샀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돌아가셨습니다.

성도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다르게 보고, 다른 방식으로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오늘 본문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1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창공은 그의 솜씨를 알려 준다. 2 낮은 낮에게 말씀을 전해 주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알려 준다. 3 그 이야기 그 말소리, 비록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4 그 소리 온 누리에 울려 퍼지고, 그 말씀 세상 끝까지 번져 간다. 해 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장막을 쳐 주시니, 5 해는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처럼 기뻐하고, 제 길을 달리는 용사처럼 즐거워한다.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으로 돌아가니, 그 뜨거움을 피할 자 없다.”

읽어 드린 시편 19편 1-6절의 본문에서 성도님들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이 본문은 성도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알려주는 구절입니다. 한 시인의 시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 나누고자 합니다.

- 구상 시인의 ‘말씀의 실상’

영혼의 눈에 끼었던 / 무명의 백태가 벗어지며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가 /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노상 무심히 보아 오던 /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이적異蹟에나 접하듯 / 새삼 놀라웁고
창밖 울타리 한구석 / 새로 피는 개나리꽃도
부활의 시범을 보듯 / 사뭇 황홀합니다.
창창한 우주, 허막虛漠의 바다에 / 모래알보다도 작은 내가
말씀의 신령한 그 은혜로 / 이렇게 오물거리고 있음을
상상도 아니요, 상징도 아닌 / 실상實相으로 깨닫습니다.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가 말씀입니다.’라고 시인은 고백했습니다. 창밖 울타리 한구석에서 피는 개나리꽃을 통해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인은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세계에,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이 모든 창조세계에 깃들여 계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창조세계를 성도는 경이驚異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한 신학자는 현대를 이런 경이를 상실한 시대라고 했습니다. “흔히 현대를 경이를 상실한 시대라고 부릅니다. 현대인에게 세계는 더는 경이로운 장소가 못 됩니다. 현대인은 더는 경이로운 세계에 거주하지 않습니다. 현대인에게 무지개는 더는 이리스 여신도 아니고, 신의 약속의 표징도 아닙니다. 무지개는 그저 자연 현상일 뿐입니다. ‘매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현대인에게 세계는 '매직'을 잃어버린 세계, ‘매직’이 제거된 세계, 탈주술화된 세계입니다.”(<경이라는 세계>)

오늘 시편의 시인은 창조세계를 이 경이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창조세계에 깃든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하늘, 창공, 낮, 밤, 해를 언급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말씀이 그들 사이에서 교통 된다고 고백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통해 하나님의 소리가 세상 끝까지 퍼져나간다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물들은 조화롭게 어울리고, 창조물들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고 고백합니다. 너무나 완전하고 아름다운 고백의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 세상은 창조세계를 도구로 바라봅니다. 인간의 이익, 편리를 위해 얼마든지 사용해도 되는 자원으로 생각합니다. 지금의 기후 위기, 인류 위기를 초래한 태도입니다. 지난달인 2월 27일을 시작으로 17일간 7800톤의 후쿠시마 핵 오염수 4차 방류가 진행 중입니다. 바다는 쓰레기장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아무렇게나 이용해도 되는 바다가 아닙니다.

오늘 시편 시인과 같은 시각과 태도라면 바다에 감사하고, 바다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경이의 눈을 잃어버리고 바다를 창조세계를 한낱 도구로만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성도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경이의 눈으로 볼 수 있느냐, 도구로 보느냐는 삶의 방향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경이의 눈으로 창조세계를 볼 때, 성도는 창조세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이런 창조를 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겸손(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하게 되고, 겸허(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태도가 있음)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찬양한 시인은 이어 하나님이 창조한 말씀을 찬양합니다. 시인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라는 수식어를 쓰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영혼을 소성케 하고,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이 밝아지게 하며, 영원과 의로움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시인의 표현 역시 완전하고 아름답습니다.

말씀은 누군가가 들려주는 것과 같은, 삶에 도움이 되는 하나의 조언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도 앞서 창조세계를 바라보듯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7 주님의 교훈은 완전하여서 사람에게 생기를 북돋우어 주고, 주님의 증거는 참되어서 어리석은 자를 깨우쳐 준다. 8 주님의 교훈은 정직하여서 마음에 기쁨을 안겨 주고, 주님의 계명은 순수하여서 사람의 눈을 밝혀 준다. 9 주님의 말씀은 티 없이 맑아서 영원토록 견고히 서 있으며, 주님의 법규는 참되어서 한결같이 바르다. 10 주님의 교훈은 금보다, 순금보다 더 탐스럽고, 꿀보다, 송이꿀보다 더 달콤하다.”

말씀을 통해 성도는 이 세상을 바라봤던 자신의 모든 지식, 경험, 가치관을 내려놓고, 새로운 시각으로 태도로 세상을 다시 보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 이 세상의 가치나 이 세상이 가리키는 방향이 아닌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이 되는 말씀입니다. “11 그러므로 주님의 종이 그 교훈으로 경고를 받고, 그것을 지키면, 푸짐한 상을 받을 것이다. 12 그러나 어느 누가 자기 잘못을 낱낱이 알겠습니까? 미처 깨닫지 못한 죄까지도 깨끗하게 씻어 주십시오. 13 주님의 종이 죄인 줄 알면서도 고의로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 주셔서 죄의 손아귀에 다시는 잡히지 않게 지켜 주십시오. 그 때에야 나는 온전하게 되어서, 모든 끔찍한 죄악을 벗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14 나의 반석이시요 구원자이신 주님,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통해 교훈을 받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통해 교훈을 받고 살 때, 성도는 푸짐한 상을 받을 것이라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무엇보다 이 태도를 통해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경이의 눈으로 완전하고 아름다운 창조세계와 말씀을 볼 때 성도는 자신에게로 눈을 돌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부족함과 허물을 보게 됩니다. 시인은 자신의 부족함과 허물을 들고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생각이 언제나 주님의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 성도가 바라는 신앙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 길은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말씀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로, 말씀하신 대로 바라볼 때 가능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창조세계를 통해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시고, 말씀을 통해 생명이 참된 삶을 살 수 있도록 안내해 주고 계십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경이의 눈으로 완전하고 아름다운 창조세계와 말씀을 볼 때 성도는 자신에게로 눈을 돌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부족함과 허물을 보게 됩니다. 이 바라봄 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온전하신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하며 영혼이 소성케 되고, 지혜롭게 되며, 마음이 기쁨을 찾고, 눈이 밝아지며, 영원과 의로움에 닿는 복을 누리게 되는 성도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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