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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의 행복고흐와 산책하기 (29)
최광열 목사(아리랑인문지식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4.03.16 03:09
▲ <뉘넌의 농가> (1885년 6~7월, 캔버스에 유채, 60×85cm, 슈테델박물관, 프랑크푸르트)

신화와 전설에는 사람의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특히 그리스 신화에는 인화(人化)된 신들을 통하여 사람의 욕망이 얼마나 집요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크로노스를 주신으로 한 티탄족 신들을 쫓아낸 제우스는 올림포스산에 신전을 세우므로 권력 욕망의 완성을 선언하였다.

고대 근동의 우가릿 문서에 나타난 번성의 신 바알이 아나트와 함께 우주의 권력을 잡은 후 가장 먼저 한 일 역시 하늘에 집을 짓는 행위이다. 그래서일까? 누구든 권력을 잡으면 집을 짓는다. 짓지 못하면 옮기기라도 한다. 사람이 가진 자기 과시의 욕망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19세기 네덜란드는 프랑스 혁명 여파를 겪으며 나폴레옹의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1778~1846)를 왕으로 맞는 치욕을 겪어야 했다. 루이 보나파르트는 징병제와 중과세로 네덜란드를 억압하였다. 반발한 네덜란드 시민은 1813년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빈회의(1814~1815) 결정에 따라 1815년 칼뱅파 빌럼 1세의 입헌군주 근대국가로 나갈 수 있었다. 근대 무역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철도와 운하가 건설되는 등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였다.

하지만 네덜란드 남부의 작은 농촌 마을 뉘넌은 근대화의 속도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였다. 빈센트가 뉘넌에 있는 동안 그의 작품은 아직 어두움에 묻혀 있다. <성경이 있는 정물>, <감자 먹는 사람들>, <여자의 두상> 등 그 무렵 그린 작품들은 대체로 어둡고 깊다.

이 무렵 빈센트는 새 둥지에도 관심이 많았다. 마을 아이들에게 새 둥지를 모아오라고 하였다. 단 어린 새끼들이 나가버린 빈 둥지만을 가져오게 하여 세밀히 관찰하여 정물화를 그렸는데 그는 새 둥지와 뉘넌의 초가집을 연결하여 이해하였다.

여러 점의 농가를 그리며 초가집을 ‘사람의 둥지’라고 표현하였다. 풀과 작은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새 둥지가 새의 안정을 보장하듯 흙과 회반죽 등으로 지어진 허름한 초가집이 안락감을 보장하는 안식처로 인식하였다. 빈센트는 37년 인생에서 37번의 이사를 하였다고 하는데 그의 집은 언제나 좁고 소박하였다. 집이 크고 화려하여야만 좋은 것은 아니다.

<뉘넌의 농가>(1885)는 빨간 모자를 쓴 여성이 염소에게 꼴을 주고 있는 정겨운 장면이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끼었고 마당에는 닭 두 마리가 모이를 쪼고 있다. 색조는 아직 어둡지만 햇살은 초가지붕과 벽을 비춘다. 모든 생명 있는 것을 비춘다. 이 작품에서 강렬한 색채주의자 빈센트를 엿본다.

어둠은 빛으로 나가는 전 단계이다. 어둠 없이 빛은 오지 않는다. 사순절, 어둠이 깊은 계절이 지나고 있다.

최광열 목사(아리랑인문지식연구소 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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