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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시대 한복판을 당당하게 가로질러 건너갔습니다”군사독재정권에 굴하지 않고 노동자들과 함께 했던 고(故) 김영수 목사 40주기 추모기도회 열려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 승인 2024.03.17 02:33
▲ 남영숙 목사는 인사말에서 김영수 목사는 오늘 김 목사를 추모하기 위해 참석한 분들을 통해 부활했다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홍인식

군사독재정권의 폭력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노동자들과 함께 했고 민주화운동의 앞장 서다 유명을 달리한 고(故) 김영수 목사의 삶과 신앙을 조명하는 40주기 추모기도회가 열렸다. 15일(금) 오후 4시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진행된 이번 추모기도회는 NCCK 인권센터, 감리교신학대학 76-80동기회, 감청동지회,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과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등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많은 추모객들이 참여해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황인근 소장(NCCK인권센터)의 사회로 시작된 추모기도회는 은희곤 감독(감신대 76-80동기회)의 기도에 이어 이범조 은퇴목사(감리)가 야고보서 2:6을 본문으로 “앎과 삶”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이 목사는 “김영수 목사는 민중의 목숨을 위해 군부독재에 저항하다 끔찍한 옥고를 겪으면서도 오히려 이로 인해 자유를 누리고 있노라 말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예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선한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 물으셨다.”며 “김영수 목사는 이러한 예수의 질문과 동일한 맥락을 유지하면서 이에 응답하는 삶을 살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고인의 아내 남영숙 목사는 유가족 인사말에서 “오늘 내 속에서 부활한 김영수 목사를 만났습니다.”라며 “40년이 지난 오늘, 그리고 또한 세상에 태어난 지 25개월과 8개월 만에 아빠를 잃은 우리 두 딸이 아빠를 만나는 날이기에 여러분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합니다.”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세상을 읽으며 치열하게 살아온 그는 삶의 목적과 목표가 뚜렷했고, 최선을 다하며, 간첩 소리를 들으며 군사독재 시절 어둠의 시대, 그 한복판을 당당하게 가로질러 건너간 그, 김영수 목사는 죽어도 죽지 않았습니다.”라며 “남편이자 동지인 그를 여러분들이 부활시켜 주셨습니다.”라고 말해 감동의 마음으로 뜨거운 박수로 참석자들은 화답했다.

뒤이어 이소선 합창단의 “군중의 함성”과 “그날이 오면”의 추모의 합창이 울려퍼졌다. 김영주 이사장(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장석재 목사(불꽃교회)와 김천묵 선생(김영수 목사 제자)의 추도사와 해외 영상으로 정희수 감독(연합감리교회, UMC)도 고 김영수 목사를 추도했다. 김영주 목사는 “김영수 목사는 훌륭한 삶을 사셨고 짧은 삶이지만 예수님의 짧은 삶이 오늘날 2천년까지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하고 해석하고 설교하고 교훈으로 삼고 그분의 삶을 따라 살고자 하는 것처럼 김영수 목사님의 삶이 우리 가운데 부활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그래서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 오늘날 이 한국 감리교 특히 감리교회가 어떻게 가야 될 건지 방향성을 김  목사님의 삶을 통해서 확보하고 느끼고 같이 살아갈 수 있다면 김영수 목사님이 우리 속에서 살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마무리했다.

정희수 감독은 영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김 목사님에게 적당히 돌아가는 길을 가라고 회유를 하였지만 그는 양심의 길을 부끄러움 없이 가셨다.”며 “일찍 혼자 되셔서 두 딸 수진과 유진을 키우면서 고된 길을 걸어온 그의 아내 남 목사님과 함께 고된 삶을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송구하게 생각하며 오늘 이 추모의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뜻을 더한다.”고 추도의 뜻을 전했다.

또 고 김영수 목사의 제자 김천묵 선생은 고 김영수 목사가 자신의 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한 첫날 ‘상록수’ 노래를 불렀던 일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가난의 신앙을 추구하셨던 목사님을 담고 싶어서일까요? 두 아이를 입양하게 된 것도, 대전역의 거리의 형제들에게 식사 나눔을 하게 된 것도, 구세군 교회의 부교 업무를 지원하게 된 것도 알게 모르게 목사님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고백했다. “저도 목사님과 같이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는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라며 “사랑합니다. 목사님”이라고 추모의 말을 남겼다.

▲ 유가족인 부인 남영숙 목사와 두 자녀 김수진, 김유진. ⓒ홍인식

고(故) 김영수 목사(1946년 6월 18일생)는 5.18 광주민중항쟁의 진상을 알리는 유인물을 기독교대한감리회 강화서지방 청년연합회의 참석자들에게 배포하고 낭독한 죄로 옥고를 치렸으며, 그 후유증으로 급성백혈병을 얻어 1984년 3월 17일 소천했다. 그는 고려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한 이후 감리교신학대학에 학사 편입을 한 이후 1983년 중부연회에서 목사로 안수 받았던 바 있다.

그는 평화시장 미성년 노동자를 위한 동대문교회 야학 재건중학교 교감으로, 감신대 내 산업선교회를 조직하고 활동했다. 특히 동대문 피복노조와 노동자들의 권리를 증진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사회선교에 깊숙이 참여했다.

1980년 강화서지방 창후감리교회를 개척했지만, 80년 7월 “불온 유인물 배포” 혐의가 적용돼 계엄법 위반으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가택수색과 구속당하였고 안양교도소 독방에 감금되었다. 그는 수도군단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를 선고받고 석방되었다. 하지만 고문과 투옥 후유증으로 급성백혈병을 얻어 1984년 3월 만 38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당시 유가족으로는 결혼 3년 째의 아내 남영숙 목사와 생후 25개월과 8개월의 딸 수진, 유진이었다.

고 김영수 목사는 십자가의 흔적을 몸으로 살아냈고 또한 끝없는 존재론적 질문을 통해 실천하는 삶을 짧지만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가 1980년 새벽에 남긴 편지, <남은 여생 어느 누구에게나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정의와 양심의 명령에의 절대복종, 불의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 아마 이것은 위로부터 주신 나의 달란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계속해서 포기의 명령을 명하고 계십니다. “네 생명, 네 것 아니다. 나와 복음 위해 모든 것 버리라.”고>는 40년이 흐른 오늘 날에도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으로 들려지고 있다 

아래는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기 직전인 1983년 5월 15일 행한 설교의 한 부분이다.

기적의 의미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적인 개념이요,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는 말이다. 하나님의 구원이 행사되는 나라요, 하나님의 정의와 평등과 자유와 사랑이 실현되는 나라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예수님 당시도 도저히 정의와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은 불의와 불평등 의 사회였다. 빈부의 격차가 엄청나게 컸고, 암하아렛츠(땅의 사람들)라는 철저한 무산자 하층민이 존재했고, 이들은 사회에서 버림받았다.

또한, 각종 병든 자와 불구자가 너무 많았다. 이렇듯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은 형제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멸시와 핍박과 천대를 받고 있었는데, 이런 불쌍한 형제들을 원래 인간 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일이 5병 2어의 기적이요, 병자 치유의 기적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갖가지 기적을 베푸신 이유와 의미는 바로 그 기적을 통해 모두 다 건강하고, 모두 다 떳떳이 살 수 있는 평등과 정의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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