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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고흐와 산책하기 (30)
최광열 목사(아리랑인문지식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4.03.23 04:00
▲ <네 그루의 나무가 있는 가을 풍경> (1885. 11, 뉘넌, 캔버스에 유채, 64×89cm, 크뢸러 뮐러 박물관, 오테를로)

뉘넌에서의 빈센트 작품은 대체로 어둡고 무거웠다. 자기 작품이 침울하다는 사실을 화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 습성에서 헤어 나오기란 쉽지 않다. 예술도 그렇고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예술에서 자기 한계를 인식하여 그것을 극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삶에서 잘못된 습관과 태도를 인지하는 일과 그것을 고치는 일은 다르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관성의 법칙일 수도 있고 수준의 문제일 수도 있다. 빈센트의 경우도 그렇다. 말년의 작품에서 보이는 밝고 생동감 넘치는 기운에 이르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했고 꾸준한 창작 활동이 요구되었다.

그렇다고 뉘넌에서 창작된 그의 작품이 무가치하다거나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 무렵의 작품에 깃든 ‘진실’은 말년의 작품들에 비하여 가볍다고 볼 수 없다. 도리어 인생의 의미와 자세에 대하여서는 더 진중하고 깊어서 거룩미를 느끼게까지 한다. 작품의 완성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을 수 있어도 과정에서 보이는 독특한 개성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우공이 산을 옮긴다(愚公移山). 누구라도 우직한 과정이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일수록 헛것이 대부분이다. 예수 그리스도조차도 30년을 기다리지 않았던가? 빈센트에게 뉘넌에 머물었던 기간은 목표에 이르기 위한 인고의 시간이자 그 자체로서 완성의 절정이기도 하였다.

이 무렵의 작품 가운데 <네 그루 나무가 있는 가을 풍경>(1885)이 있다. 목사관 정원에 있는 세 그루의 참나무와 가지를 자른 자작나무이다. 이 작품에서 비로소 빈센트는 어둠의 동굴을 빠져나오고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였다. 이 그림을 친구 화가 안톤 케르스마커스(1846~1924)의 집 거실에 걸어놓고는 두 화가는 함께 만족하였다.

빈센트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를 재차 강조하였다. “색채는 부드러워지고 초창기의 음침함은 사라졌어.”(1885. 10. 28) 진보하는 예술가에게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의 시작이자 완성이다.

빈센트는 37살의 삶에 37번 이사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 뉘넌에 머문 지 2년이 되면서 그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으로 이사를 결심하고 1885년 11월 24일에 가족과 농부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다시 조국 네덜란드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와도 다시 만나지 못했다. 이제 빈센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불꽃 같은 예술가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최광열 목사(아리랑인문지식연구소 연구원)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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