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에 이 땅에서는 많은 종교나 사상들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언 땅에 숨죽이고 있다가 따뜻한 바람에 손을 내미는 새싹들처럼 솟아났습니다. 종교사적으로 볼 때에 조선말기는 중세적 종교지형의 틀이 해체되면서 유교와 불교의 사회적 위치가 변화하고, 개신교와 천주교 등 서구 종교가 유입되어 전통종교와 경쟁 갈등의 관계를 형성하고, 이에 대응하여 동학과 같은 신종교 운동이 발생한 것을 특징으로 합니다.

불교와 유교를 포함한 모든 전통종교는 한국 종교문화의 전통을 계승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동양의 고전종교와는 다른 이질적인 전통을 가진 서구 기독교가 수용되면서 각각 전통과 근대를 상징하면서 갈등관계가 형성되었으며, 기독교의 확산은 종교 내적인 논리로 자기 전개과정을 거쳐서 나온 산물이라기보다는 종교 외적인 힘의 논리로 초래된 종교의 파행적 과정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최제우에 의해 시작된 동학은 근대종교문화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었습니다. 동학이 고유신앙과 유불도는 물론 서학의 종교적 성격까지 융합회통하면서 새로운 종교혁명을 펼쳐나간 것은 잠재돼있던 한민족의 에너지가 분출한 역사적인 일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종교를 지배 이데올로기로 사용한 것이 아니고 민중의 가치를 드높이고 실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해 기치를 든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전통은 한국종교문화의 저변에 깔려있는 민중의 염원을 승화시키는 맥락에서 이어져 온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대표적인 신종교는 의암 손병희가 동학을 정비한 천도교, 소태산 박중빈의 원불교, 증산 강일순의 증산교, 홍암 나철의 대종교입니다. 이들 신종교는 당대를 위기 상황으로 규정한 시대인식의 논리, 시천주로 표상되는 인간중심신앙, 운세론과 후천개벽을 골간으로 하는 운도주의 지향, 그리고 기존의 종교사상 내지 이념을 비판적으로 포용하여 새로운 체계로 재편성하려고 한 점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2006년 하반기에 한국종교와 문화에 대하여 교우들과 함께 나누면서 ‘과연 종교의 본질은 무엇일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본질은 신비와 초월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비와 초월은 종교의 본질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고 한 부분입니다. 오히려 종교의 본질은 삶입니다. 종교를 통해서 어떻게 살고, 무엇을 추구하느냐 하는 것이 본질이지요.

오늘에 다시 교세를 돌아보면, 대종교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천도교는 위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원불교는 탄탄한 기반으로 사회와 학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증산교는 대순진리회와 더불어 세간으로 파고들어 자기의 세를 넓혔습니다. 100여년이 지난 후의 모습들을 보면서 그렇게 된 이유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제도적 종교를 포함하여 그 종교와는 무관하게 각 사람의 성향에 따라서 그 신앙의 모습이나 생활이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입문하고 있는 종교를 불문하고 실제적인 삶은 신비와 초월과 감정을 강조하거나 현실과 내재와 이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 신적 체험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루돌프 오토는 신비의 대상인 누멘(Numen)에 대한 “두렵고 떨리는 감정”이 종교의 근원적인 요소이며, 그것은 비합리적 체험에 의해서 표현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체험은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서 판단할 수 없으며, 비합리적인 채로 평가되고 보존되어야만 종교는 지속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신비적 요소를 중요하게 간직한 종교는 그 세를 넓혀 왔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여전히 그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증산교와 대순진리회인데,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말을 통해서 신비로움을 강조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종교의 모습은 의기투합적인 요소가 강합니다. 민족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울 때에 다시 시작된 민족의식의 발흥으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서 민족의 독립과 중흥을 위해서 헌신하려는 의지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우리가 삼일절 예배 때에 낭독하는 무오독립선언서는 대종교인 조소앙이 기초한 것입니다. 당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종교를 제도화하지 않았고, 종교적 전문가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남한에서 대종교의 세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신비 초월적인 요소가 없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오늘 기독교에도 강렬한 체험을 갈구하고 그러한 체험만이 성령을 받은 것으로 가르치고 추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신비와 초월을 간절히 바라면서 지극히 현실 속에 매몰되어 살고 있는 모습이 오늘날 대부분의 종교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신비로운 일들이 자기에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열망과 하느님을 극적으로 체험하기를 바라는 노력이 신앙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실제로 신비와 초월은 종교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열망과 노력에만 치중하는 것은 종교인을 아편 중독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현실을 잊어버리고 세상을 탈출했다는 착각 속에 가두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인간을 떼어놓고, 종교를 저 밖에 있는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고 간청을 하는 유아적 상태로 전락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은 가장 신비로운 것 같은 분위기의 복음서입니다. 용어나 문장에 있어서 가장 초월적이며, 도인 같은 사람들의 어록같이 느껴집니다. 닫힌 마음으로 읽으면 뜬구름 잡는 듯한 비난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경험하고 그 마음을 간직하는 다른 방법을 보여줍니다. 어떻게 하느님 혹은 예수님을 추구하며, 그 만남을 통해서 무엇을 경험하고 있는지를 본문에 반복적으로 나오는 몇 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①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제거하는) 하느님의 어린 양”을 따라가며, 무엇인가를 찾습니다. 그들이 찾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메시아)입니다. 불교의 미륵처럼 메시아는 고난 받는 사람들의 희망과 미래를 현실과 현재로 끌어옵니다. 그 제자들이 찾는 것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을 죄에서 고난에서 구원할 분과 그 길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종교인들이 신비나 초월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목적에 물음을 던집니다. 종교와 신앙의 개인화를 깊이 받아들인 기독교인들의 삶에서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학을 비롯하여 근대에 발흥되기 시작한 종교들의 발생의 역사는 당시의 시대가 무엇을 추구하고, 그 열망이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당시의 신종교는 미륵신앙과 후천개벽이라는 공통적인 열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제도적인 종교의 모습을 갖추면서 그 열망은 많이 희박해졌습니다.

② 결국 그들은 예수가 묵고 있는 곳에서 그를 만나고 봅니다. “만나다”와 “보다”와 “알다”는 같은 의미의 단어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요한의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이 본 사람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만남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서 만나고, 만남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어디에서 만나고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일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얼마만큼의 수고를 하고 있나요?

예수님의 흔적은 성서를 읽고 묵상함으로써 내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고, 그 마음이 향하는 방향에 따라서 예수님의 길을 제대로 따르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만남을 통해서 그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알아낸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입니다. 안드레는 자기의 형제 베드로에게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전합니다. 당시 고난 받는 모든 사람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그리스도 말입니다.

③ 이러한 만남과 앎을 가져다주고, 지속시키는 것은 함께 묵고 함께 머무는 일입니다. 함께 사는 것입니다. 함께 하는 삶 속에서 그들을 서로를 더 잘 알 수 있고, 떠 깊이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난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묵고 있는 곳에서 다음 날까지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묵고 거하는 일은 요한복음에서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하느님 안에, 하느님이 예수님 안에, 네가 내 안에 내가 네 안에 “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을 봅니다.

공동체는 함께 하는 삶 속에서 나와 너, 네와 내가 우리가 되는 일입니다. 둘이 아닌, 다름이 아닌,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우리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하느님과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일은 일상적인 삶 속에, 함께 하는 삶 속에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종교인들이 쉽게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추구하고, 그를 만나서 경험하고, 함께 머무는 일은 때때로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현실의 많은 제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과 감각의 한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언제나 바쁩니다. 일상에 묻혀서 시간에 쫓기듯이 살면서 바쁘기 때문에 자기를 돌아볼 여유도 갖지 못합니다. 그 굴레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들고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자기를 자기로부터 소외시킵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일에 끌려 다니게 합니다.

그런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고 돌아서기를 원하시는 분은 하늘을 하루에 10분씩이라도 올려다보십시오. 희뿌연 하늘이든, 맑고 푸른 하늘이든, 반짝이는 별이 가득한 하늘이든, 날마다 변하는 달이 있는 하늘이든. 시간이 날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자기를 되찾게 될 것입니다. 자기를 다시 발견하면 바쁜 시간 속에서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유한한 몸으로 삶을 영위하는 우리 인간은 세상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볼 수 없습니다. 건물 안에서 창을 통하여 밖을 보면 그 창의 모양과 크기로만 세상을 보게 됩니다.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보면 건물 한쪽을 조금 더 넓게 볼 수 있겠죠. 건물 밖으로 나와서 조금 멀리서 보면 건물의 형태나 바깥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부는 볼 수 없죠. 이것이 우리를 제한하는 공간적 한계입니다.

그러나 인식의 전환과 기억의 나눔은 그 한계를 넘게 합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남쪽입니까 북쪽입니까? 그것은 기준에 따라 다릅니다. 한 자리에 머물러 그 기준을 묵상하며 정하는 것이 공간적 한계를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기준이 될만한 것을 찾는 일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은 오히려 한 자리에 좌정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낍니다. 오감을 통해서 세상의 사건과 사물을 파악하고 알게 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감각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눈으로 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귀로 듣기는 듣지만, 더 깊은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하나의 초가 빛을 내면서 사라지는 것만을 보는 것은 감각의 한계입니다. 불붙은 초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또한 있는 데서 없는 곳으로 흐릅니다.

인간의 감각이란 모든 자연이 공통으로 갖추고 있는 근원적인 지각 능력을 가로막는 제한적 요소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눈입니다. 현상과 감각에 집착하면 그것을 있게 한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감각의 한계를 인정하면,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아집을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바기를 버릴 때에 자기를 바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차별이 사라집니다.

우리를 가두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각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기와 남을 볼 때에 우리는 비로소 사건과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고, 자기와 하느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은 거짓을 물리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이 진정한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거짓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짐짓 자기와 남을 속이려는 거짓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 바로 성서를 통해서 자기를 돌아보는 제일의 목적입니다. 내 몸과 마음의 거짓을 없애는 일.

예수님은 자기를 따라오는 제자들을 향해서 “와서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과 머물면서 그가 그리스도임을 깨달은 안드레는 자기의 형제 베드로에게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났소!”라고 하면서 그를 데리고 옵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따르게 된 빌립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소!”라고 말하는 나다나엘에게 “와서 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와서 보라!”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그와 함께 거하는 사람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당당한 증언입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그가 그리스도임을 깨달은 여인이 마을 사람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소, 와서 보라!” 하고 증언한 것과 같습니다.

나의 삶에서 우리 공동체의 활동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기를 빕니다. 신비와 초월만을 추구하는 사유화된 복음이 넘치는 곳, 시간과 공간에 얽매여 하느님을 바로 보지 못하는 삶, 감각적인 한계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보지 못하게 하는 세상에서 당당하게 “와서 보라!”하고 증언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듭시다. 예수님이 세상의 죄를 없애버릴 그리스도임을 깨달은 사람은 그것을 증언하는 삶을 삽니다. 복음을 만난 사람은 그 자신이 복음이 되어 세상으로 흐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호흡으로써 우주와 연결되듯 살아 있는 공동체는 증언함으로써 세상과 끊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하느님과의 만남과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깨닫는 경험을 제한하는 한계를 하나씩 하나씩 걷어내고, 결국에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이 날마다 일어나기를 빕니다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