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지에대한성찰> ⓒ 교보문고 제공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구별하고 행동하는 나이가 되면 흔히들 철이 들었다고 한다. 나이를 먹었어도 그런 것을 모르면 철이 덜 들었다고도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그걸 누가 정해 놓은 것일까? 하느님? 국가? 역사? 그럼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관습? 상식? 윤리? 법? 예전에는 아주 쉬운 물음이었을 것 같은데, 이젠 쉽지가 않다.

그런데 철이 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해 뭐라고 부르든 간에 그것이 우리의(여기서 우리라고 하는 대명사는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집합 명사로 사용하자)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누군가의 그것도 우리보다 힘센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쁜 일 아닐까? 안 해도 되는 것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현대 철학자 중의 어떤 이는 이것을 ‘권력’이라고 불렀고, 또 어떤 이는 이것을 ‘식민지 지배 상황’이라고 불렀다. 전자는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글을 읽고 계실 어느 누군가는 후자에 대해서는 참 이해가 가지 않으실 것 같다. 일제 강점기도 아니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대통령이 뽑혀진지도 벌써 14년이 지났으니 말이다.

또 후자에 대해 어떤 이는 고개를 끄덕거리실 분도 계실 것이다. 총과 칼만 안 들이댔지 자본주의의 횡포나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대한 미국의 깡패 짓은 도를 넘고 있다는 생각과 함께. 사실 자본주의나 미국의 세계 지배는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아니라고 생각하도록 우리의 정신세계를 현혹시키고 있다.

문제는 바로 우리의 정신세계가 자본주의나 미국의 보이지 않는 권력의 현혹에 의해 변형되고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나 미국의 권력 유지에 우리가 일조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어떻게? 이에 대한 그림을 그려주고 있는 것이 바로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푸코, 파농, 사이트, 바바, 스피박>(박종성 지음, 서울: 살림출판사, 2006)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구상의 많은 식민지들이 외형적으로 독립을 이룬 후 과연 식민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나. 아니다. 현재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영어와 다국적 기업의 자본의 힘 그리고 미국의 군사력과 외교력에 의해 지배를 받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이다”(p. 4).

또, “이런 외형적 독립과 국가 건설만으로 식민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형태로 신식민주의가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이다”(p. 8)라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는 “영어 제국주의와 초국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화시대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p. 9)고 쓴다. 이것에 대한 이론적인 틀을 제공할 수 있는 학자들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 책이다. 부제로 달려 있는 “푸코, 파농, 사이드, 바바, 스피박”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이다.

대표적인 탈식민 이론가들이라고 불리는 “푸코의 권력담론,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반식민 저항운동가로서 ‘식민 상태에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는 기반을 마련한 파농”(p. 55), “인도 출신의 이론가 호미 바바와 가야트리 스피박”이 등장한다.

어느 한 학자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이런 학자들을 죄다 모아놨으니 아연 실색할 지경일 것 같지만, 수박 겉핥기 식일이지라도 쉽게 소개한 책이어서 추천하고 싶다. 거기에 19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해 역사적인 사실들과 이면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쓰고 있다.

“탈식민주의는 강대국 혹은 지배 권력의 본질을 조명하고 주권과 자율성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실천담론이요, 해방, 독립, 평등, 정의를 추구하는 미래 지향적 프로젝트이다. 탈식민주의는 비유적으로 말해서 신자유주의와 신제국주의라는 바이러스 퇴치를 위한 백신인 셈이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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