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친지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나도 없었을 것이지만, 내 정신의 근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죽음의 공포와 사후세계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괴로워하던 때에 이들이 내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회생불능의 병을 앓고 계시던 어머님께서는 병원에서 치유불가 판정을 받은 이후로 자주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곤 하셨다. 어린 내게 무당의 몸짓과 넋두리, 징소리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으며, 한편으로는 그러한 것들이 어머님 병을 낫게 해 줄 유일한 수단으로 비춰졌기에 나의 간절한 소망은 무당의 몸짓과 푸념 하나하나에 녹아들어가고 있었다.
어머님 병을 낫게 해달라는 나의 애원에도 아랑곳 않고 추운 겨울 어머님께서 눈을 감으셨을 때 태양도 빛을 잃고, 달마저 구름 속에 그 빛을 숨겼으니 무당의 그 징소리는 어머님의 목숨을 앗아간 소리로 각인되어 나의 마음 한편에 어느새 두려움의 대상으로 자리 잡아 나의 생각과 생활 모두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어귀에 자리 잡은 조그만 예배당을 찾아 설교를 듣게 되었는데 구원과 영생에 대해 설교를 하시던 전도사님의 말씀이 어린 내게는 크게 위안이 되었고, 밝은 분위기를 창출하는 찬송가의 경쾌한 가락과 가사가 그렇게 희망적일 수가 없었다.
이때 가진 신앙 덕분에 나는 비로소 세상의 밝은 면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주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나를 인도하신다는 안온감을 느끼며 기독교인으로서 감사하는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성경말씀은 나의 희망이자 기쁨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었다.
인권 탄압하던 군사독재정권에 정당성 부여하던 보수교회 목회자들
70년대의 유신독재체제와 80년대의 독재체제 하에서 수많은 대학생들이 독재에 항거한 혐의로 구속되고 인권을 부르짖는 일부 목사님들과 지식인들이 수난을 당할 때, 한국교회는 남미(南美)의 해방신학자들처럼 불의에 맞서 항의하지 않고 왜 침묵만 지키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기독교 복음은 순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의당 그러려니 하고 한국교회의 침묵에 대해 못 마땅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그 보수성을 수인하고 살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제사장(목사)과 왕(대통령)은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자(하나님께서 세운사람)이기 때문에 신도(信徒)들이 최고 권력자의 뜻에 맞서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라는 설교를 내로라하는 원로 목사님들이 귀가 닳도록 해대는 풍토에서 한국 교회가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의 독재정치에 항거하여 맞서 싸운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들어서자 한국교회의 보수성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특히 참여정부 들어서 해마다 광복절이나 삼일절을 앞두고 한국 기독교계의 내로라하는 목사님들의 이름이 기재된 “대한민국 지키기, 친북반미좌파종식 국민 구국기도회”란 제하의 신문광고기사가 실린 걸 여러 번 본적이 있다.
지난 2월 말에도 일간지 하단에 실린 “반 헌법적 6. 15 남북 선언은 폐기되어야하며, 국가보안법은 존속해야한다”라는 광고 문구를 보고 착잡한 마음 금할 수 없어 신문을 그냥 덮어 버렸다.
친미반북, 국가보안법 존치 외치는 이상한 구국기도집회
몇 달 전에 '인혁당사건'이 서슬 퍼런 유신정권하에서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언론을 통해 접한 적이 있다. 무고한 시민들을 간첩으로 조작하여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독재정권의 횡포와 유족들이 그간 세인들로부터 받았을 멸시천대를 생각하고 눈에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난다.
참여정부의 이러한 과거사 청산에 대하여 보수집단과 기독교계는 “모두 과거의 일인데 뭘 그렇게 과거에만 집착하여 한국의 미래를 망치려드는갚라며 “과거 것을 자꾸 들추어내지 말고 미래를 향해 전진하자”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여 이들의 상처를 치유하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상처의 아픔을 더하게 했던 게 사실이다.
가장(家長)과 형제를 억울하게 잃고,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세인들의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니면서 문밖에도 못나오고 수십 년간 숨죽여 살아온 피해자들에게 한국교회가 해준 것은 무엇이었던가.
그들의 고통과 그들의 한숨소리가 아직도 우리의 양심을 헤집고 들어와 잃어버린 30년의 세월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데, 어찌 이게 과거의 일이니 그냥 덮어주자는 말로서 호도할 수 있단 말인가. 독재타도를 외치며 외롭게 투쟁했던 민주인사들에게 올가미를 세워 처벌하는데 악용된 국가보안법의 존속을 외치는 저들에게 조금이라도 정의감이 불타고 있는지를 묻고 싶다.
군사독재시절에는 대통령의 권위의 정당성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며 정권에 항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로 단죄하고, 반독재 구국기도회 한 번 개최하지 않더니, 이제 와서는 좌익대통령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며 뉴라이트운동 운운하며 대규모 군중기도집회를 개최하고 있는 저들의 작태는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역사상 지금처럼 국민들에게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시절이 언제 있었으며, 교회 내에서 설교의 자유가 보장된 시절이 언제 또 있었던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큰 교회의 예배에 정보기관의 수사요원들이 배치되어 설교시간에 유신독재나 군사독재에 대한 말만 해도 목사를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연행하여 입건하곤 했다.그때 대부분의 보수교회 목사들은 처벌이 두려워 꿀 먹은 벙어리처럼 비열하게 침묵으로 일관했었다.
그런데 언론의 자유가 만개된 작금에 이르러 그것도 3.1절과 8.15광복절에 서울 한복판에서 구국기도회를 한답시고 정치색 짙은 집회를 개최하여 국가보안법존치와 친미반북(親美反北)을 외치며, 미국의 성조기를 흔들어대며 광분하는 모습은 또 무엇인가. 저들은 도대체 미국의 시민인가 대한민국의 시민인가를 묻고 싶다.
순수복음전파의 일관성 지키지 못하고 상황을 악화시키는 보수목회자들
도대체 언론의 자유와 인권 외에 이 땅위에 민족통일의 개념보다 우선시 여길만한 가치관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미국 등의 강대국이 우리의 통일을 밀어주기라도 한단 말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군수산업의 몇 안 되는 최대의 판매시장이 된지 이미 오래다.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3.8선을 그은 그들은 결코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지 않고 오히려 교묘하게 그것을 이용하려 들것이다.
그럴싸한 덕목을 내세워 핍박받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일으킨 이라크전쟁의 이면에 군수업자들과 석유업자들의 검은 입김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 부시대통령의 호전성(好戰性)은 기독교의 우월주의에 근거한 일방주의 가치관에 편승한 오만과 편견의 결과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의 생각만이 최고선이라는 편협한 사고방식이 얼마나 위험한 사고(思考)인지를 우리는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익히 실감했다.
한국 기독교계 지도자들에게 묻고 싶다. 일제치하에서는 일본군의 총칼이 무서워 침묵을 지키고, 하나님의 성소(교회)에 일본왕의 신사를 모셔놓고 거기에 먼저 참배한 후 예배를 인도한 자들이 해방 후에도 한국기독교계의 주류로 행세하지 않았던가. 한국교계가 해방 후에 4분5열 상태에 빠지게 된 것도 신사참배에 대한 진정한 회개와 반성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시대상황에 따라 상황논리에 맞추기 위한 이론을 성경에서 억지로 유추해내어 자신들의 방패막이로 사용하는 그 편리성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이냐고 묻고 싶다. 척박한 한국 땅에 순수하게 복음을 전파할 목적으로 어쩔 수 없이 교회 안에서 일본왕의 신사 앞에 참배하고, 독재정권 앞에 침묵했다는 변명은 진정한 회개가 없는 한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계는 적어도 순수복음전파라는 일관성을 지키든지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궤변보다 나은 침묵이라도 지키는 게 엉뚱한 시기에 엉뚱한 곳에서 뒷북이나 쳐대며 수많은 교인들의 신앙심을 교란케 하는 우를 범하는 행위보다는 훨씬 더 바람직할 것이다.
일부 대형보수교회 목회자들이 변하지 않는 한 복음전파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
지난 십년간 천주교인들의 수와 불교인들의 수는 증가했는데 기독교인들의 숫자는 감소했다는 통계를 보고 한국 기독교계의 위기라며, 100년 전의 평양의 성령부흥운동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부흥운동을 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한국 교회를 부흥시키려면 교인들이 변해야 한다며 설교만 할 것이 아니라 교회지도자들이 먼저 신도들을 잘못 인도하여 이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과거 한국교계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진정한 회개가 있었는지를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안티기독교인들로부터 개독교인이란 비아냥거림을 듣지 않고 살려면 기독교인들이 정말로 정신 차려 초대교회의 순수복음정신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병들고 가난한자들의 구제에 힘써야 할 것이다.
믿음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교리에 충실(?)한 나머지 구제를 게을리 하고, 마음에 상처받은 자를 위로해주지 않고, 사랑을 실천함이 없이 편협한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교회의 종탑높이만 자꾸 올린다면 한국교회에 무슨 비전이 있겠는가.
요즘 들어 누가 나한테 교회 다니느냐고 물으면, 나는 교회 다닌다는 말 대신에 기독교 신앙인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언제부터인가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고 밝히는 것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 수많은 종교지도자들은 있으나 진정한 신앙인들은 과연 몇이나 되는지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종교지도자들의 그릇된 행태가 오히려 민족복음화의 걸림돌은 되지 않는지 진지한 회개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3.1절에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사학법 철폐”, “대선음모용 남북정상회담 반대”, “애국세력이 한 깃발아래 대동단결 하였다”라는 신문광고 문구대로 외쳐댔을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묻고 싶다.
개정 전의 사학법과 개정 후의 사학법이 어떻게 다른지, 대선음모(大選陰謀)의 실체가 무엇인지, 애국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왜 참여정부가 좌파정부인지, 참여정부가 망친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이나 해보고 근거를 갖고 알고나 떠들어대는지.
노기홍 rohki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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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으로부터 창조는 성경이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