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삭빠른 이기주의와 남보다 한 발자국이라도 앞서야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경쟁심과 끝없는 물질적 욕망이 보편적 가치로 통용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욱이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무한경쟁이 가일층 심화되는 오늘날,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우직한 마음으로 이웃과 함께하는 신앙의 자세를 굳건히 유지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종교의 힘”은 돈(자본)의 힘 앞에서 거의 맥을 추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의 한국교회와 우리 자신의 모습에서 발견한다. 예수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고 말하자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를 비웃었다”(누가 16:13-14)는 바로 그 “바리새인들”의 모습은 바로 오늘의 한국교회와 우리 자신의 서글픈 자화상은 아닐까?
오늘 본문을 묵상해 보자: “마지막 때에 어려운 시기가 닥쳐오리라는 것을 알아두시오. 그때에 사람들은 이기주의에 흐르고 돈을 사랑하고 뽐내고 교만해지고 악담하고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감사할 줄 모르고 경건하지 않고, 무정하고 무자비하고 남을 비방하고 무절제하고 난폭하고 선을 좋아하지 않고, 배신하고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자만으로 부풀어 있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할 것이며, 겉으로는 종교생활을 하는 듯이 보이겠지만 종교의 힘을 부인할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뽐내고” “하나님보다 쾌락을” 추구하는 시대 풍조의 만연 속에서, 돈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용기 있는 결단을 요구한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갈망이 불탔지만 “큰 부자였기 때문에” 예수의 “말씀을 듣고 무척 마음이 괴로웠던” 부자 청년 이야기(누가 18:18-23)는 비록 “큰 부자”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아도 돈에 얽매여 살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운 우리에게도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우리의 삶을 조용히 되돌아보자.
우리는 “겉으로는 종교생활을 하는 듯이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종교의 힘을 부인”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이웃사랑은 먼저 우리의 몫을 충분히 챙기고 남은 찌꺼기로 생색내는 사랑은 아닌가? 혹시 우리의 신앙은 욕망으로 얼룩진 우리의 부끄러운 삶을 치장하는 위선의 장식물은 아닌가? 우리의 신앙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세상에서 누릴 쾌락도 남 못지않게 다 즐기고 죽어서는 하늘나라의 축복마저 누리겠다는 욕심꾸러기 신앙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신앙생활은 그럭저럭 하는지 몰라도 우리가 오늘 걷고 있는 길은 엄밀히 말해 신앙의 길은 아니다. 우리는 “양의 탈을 쓰고” 있지만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 있다”(마태 7:15).
우리는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나님께 인색한 사람”,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리라고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다(누가 12:13-21). “겉만은 깨끗이 닦아 놓지만 그 속에는 착취와 탐욕이 가득한”, “겉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 “겉으로는 옳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한” 위선자들이다(마태 23:25-27).
성서는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을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인간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지만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다”(벧전 1:24)는 몇 마디로 빼어나게 시적(詩的)으로 표현한다.
그렇다. 참된 신앙생활은 끝없이 욕심을 비우는 삶이다. 비우고 또 비우고도 뭔가 부족한 것 같아 남몰래 얼굴이 붉어지는 삶이다. “종교의 힘”으로 황금 숭배에 맞서는 삶이다. “풀의 꽃” 같은 “인간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는 삶이다.
그대, 어느 쪽을 택하려는가? “종교의 힘”으로, “주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삶을 택하려는가? 죽음과 함께 허무하게 지고 말 “인간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택하려는가?
그대의 삶이 “종교의 힘”으로, 믿음으로 충만하시길! 그래서 그대의 육체는 풀의 꽃처럼 지더라도 그대의 정신은 세상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길이 남기를!
정연복 pkom54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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