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부부의 농촌행>

결혼하자마자 농사를 지어보겠다는 일념하나로 아무런 연고지도 없이 안성 땅에 내려와 농사를 지은 지 9년이 되는, 참으로 대책 없는(?) 부부가 안성에 있다. 그들은 결혼 당시 받았던 축의금 하나만을 토대 삼아 서울에서 무작정 안성으로 내려온 정운길(37세)·서윤경(38세) 부부.

주위의 만류도 ‘농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그들의 신념을 막을 수는 없었던 셈. 농사짓는 것은 텔레비전이나 시골에 가서 가끔씩 보던 게 다였던 그들이 참으로 당돌하게도 농사를 짓고자 농촌행을 감행하게 된 것은 학창 시절 다녔던 농촌 봉사활동 덕분. 그것을 통해 농촌의 실상을 목격하면서 그들의 가슴에 불이 지펴졌던 것. 한 때 농민을 돕는 농민운동 단체의 실무자로 있었던 그들이 결혼을 함과 동시에 농민이 된 것이다.

▲온 가족이 오래간만에 산행을 한 후 한자리에서 정겹게 포즈를 취했다.

“처음 안성에 와서 고추 농사를 지으려고 준비하던 때였어요. 고추나무와 다른 나무를 구분하지 못해 한참을 심어 놓았던 나만의 고추나무(?)를 일일이 다시 뽑아야 했던 일도 있었어요. 호호호호”라고 말하는 부인 서씨.

그것이 그 때의 농사 초보자들의 농사 실력의 전부였으니 참으로 대책 없는(?) 부부가 맞긴 맞나 보다. 그래도 마을의 농민 한 분의 끈질긴 영농 지도를 바탕으로 필사의 노력을 한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되었으니 작은 기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태풍으로 인해 배추 만 포기를 홀랑 날려버렸던 추억. 정성껏 길러 판 오이 36박스의 값으로 단 돈 500원이 그들의 통장에 찍히던 날, 화제 거리가 되어 KBS 9시 뉴스에 방영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으로 암담했던 추억. 그 일이 있은 직후 태풍으로 인해 다른 지역의 오이 농사가 막대한 피해를 보자 오이 한 박스 값만 자그마치 48,000원을 받고 출하했던 추억. 농사 짓다가 생활비가 없어 만 2년 동안 새벽우유 배달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추억 등.

그 때엔 죽을 것만 같았던 일들이 이젠 추억으로 말할 수 있는 그들이 좋아하는 말은 ‘인간만사 새옹지마’. 또한 “농사는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고 하늘의 도움이 따라야 한다”라는 말을 몸으로 체득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아닌 하늘의 엄정함을 아는 그런 성숙한 사람들이 되어버린 셈이다.

<그래도 행복은 여전히 그들 곁에>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해질녘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흙냄새를 실고 내 몸에 스쳐올 때 너무 기분이 좋았다”는 정씨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과 함께 들녘을 걸으면서 노래를 부를 때 ‘이것이 행복이려니’ 싶기도 했었다”는 서 씨의 말을 듣노라니 너무나도 아름다운 영화 한 장면이 막 지나가는 듯 하다.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오이가 최고가를 받았을 때가 제일 뿌듯해요. 호호호”라며 방금 지나간 장면의 낭만을 쑥 들어가게(?) 만드는 그들의 진솔한 말을 들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농민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부부가 직접 경작하고 있는 오이 밭 하우스의 전경이다. 여기서 그들의 삶이 무럭무럭 익어간다.

논 1만평, 밭농사 하우스 7동. 현재 그들이 일구어 가는 농작지의 목록이다. 비록 모두 임대한 것들이지만 그들에겐 소중한 삶의 터전이자 그들의 꿈을 키워가는 희망샘터이다.

그리고 마을(양성면 덕봉2리) 농민들이 대부분 50대 이상이니 그 마을의 막내로서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기에 바쁘다. 정씨가 맡은 직책은 오이작목반 총무, 양성농민회 회원, 마을 총무 등이다. 기자가 찾아간 날도 다음 날 있을 양성농민회 단합대회 준비로 분주한 것이 현재 그들의 삶을 말해준다.

그래서 그들은 마을의 어른들로부터 사랑받는 막내둥이 가정이다. 서울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내려와서 10년 가까이 버텨내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을 어른들의 눈에는 대견스럽기만 한 것이다. 생활비가 없어 새벽 우유 배달로 2년을 버텨낸 경력은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받기에 충분했을 터. 지금은 농사일을 자상하게 가르쳐주는 마을 어른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그들만의 MY WAY>

“왜 포기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처음엔 돈 벌고 아이 놓고 사는 평범한 삶이 아닌 뭔가 뜻있는 삶이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의 산물로 시작하게 되었지요. 이젠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인 것 같아서 합니다”라고 말하는 남편 정씨와 “농사가 재미있으니까 하게 되요. 그리고 한번도 후회 한 적은 없어요. 실제로 닥친 문제에 대한 두려움과 속상함은 있었을지언정”이라고 말하는 부인 서씨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들만의 길(My way)을 찾아 묵묵히 가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들을 대하는 감동이 기자의 영혼을 감싸고돈다.

딸 다운(9세)이와 아들 승민(7세)이가 커서 본인들이 원한다면 농사를 짓게 하겠다는 그들은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진정한 농사꾼들이 아닌가 싶다.

송상호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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