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님 !

90이 다되어 허물어져가는 육신 속에도 당신은 끝까지 나라의 민주화와 평화 통일이라는 숙원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의 번영을 이뤄야 하건만, 슬픈 한국 현대사의 흐린 날들 속에서 당신의 가슴은 새카만 숯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길고 더딘 나날들이었음에도 그렇게 인동초처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었음을 역사는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국민과 함께 반걸음만 앞서가자 !

너무 높은 이상에 집착하다가 현실을 놓치는 지도자도 있고, 국민에게 어떤 새로운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채 현실에 묻히는 답답한 지도자도 있어 아쉬운 현대사에서 당신은 진정한 국민의 지도자였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이상을 꿈꾸되 너무 앞서가지는 않는 것 - 조금 더디더라도 국민과 함께 반걸음만 앞서가자는 당신의 정치 철학은 진정한 현실 정치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신의 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소신과 열정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 정의, 평화, 민주의 숨결이 되었고, 세계인들의 공감 속에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수많은 국민이 중환자실로부터 위급한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마음 졸이다가 오늘의 비보에 털썩 주저앉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는 어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평화, 민족 공영, 민주화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사선을 넘는 애정으로 터득한 민주화와 통일에 대한 당신의 지혜와 국제적 감각이 절실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그 노구에도 불구하고 현 권력의 비민주적이고 반통일적 행태에 대해 올곧은 소리를 주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편히 쉬소서 !

우리 역사에 대한 모든 염려와 사랑을 이제는 모두 내려놓고 안식하기를 기도합니다. 당신께서 그토록 염원했던 칠천만 겨레의 통일은 어떤 난관도 넘어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이제 역사의 과제는 남은 우리의 몫입니다. 언제까지나 비지 않을 것만 같았던 당신의 빈자리는 이 민족의 영혼을 날카롭게 깨우치는 살아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우리 국민의 대통령님 !

서재일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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