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체포 - 절망의 때, 어둠이 지배하는 때

마가복음의 예수님 이야기도 절정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대한 예수님의 결단이 확정되자마자 겟세마네 동산은 살벌하게 전환됩니다. 산헤드린(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 장로들)이 보낸 “무리들”(ὄχλος)과 함께 가룟 유다가 겟세마네에 등장합니다. 그들은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타납니다. 무장한 병력(로마의 군대)였습니다. 칼과 몽둥이는 지배자들의 정치적 억압을 상징하고, 예수님은 정치적 혁명을 꾀한 혁명세력이 됩니다. “강도”(λῃστής)는 로마제국과 그 꼭두각시 권력에 대하여 독립을 쟁취하려 했던 세력입니다.

가룟 유다는 유대의 지배자들과 결탁하여 예수님을 넘겨줍니다. 랍비(선생님)라고 부르면서 입맞춤을 하는 것은 바로 그가 예수님이라는 신호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던 사람들 중에 하나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 쳐서 자르는 소극적인 저항을 하지만, 그러한 무력적 대결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갈릴리에서부터 숨 가쁘게 달려온 하느님 나라 운동의 세력이 정치적 폭력을 앞세운 유대 지배자들과 로마제국 앞에서 무참히 짓밟히는 순간입니다.

이때에 죽임 당함의 자리까지 함께 하겠다고 맹세하던 제자들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버려둔 채로 도망하였습니다. 이제 절망의 때가 왔습니다. 새로운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민중의 편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한 지도자가 지배자들에게 검거되었습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함께 했던 사람들 모두가 도망하여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지도자 예수님을 죽일 것이 뻔합니다. 절망입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지금은 너희의 때요, 어둠이 지배하는 때이다.”라고 말합니다.

가룟 유다의 입맞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잡기 위하여, 그가 예수님인 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입맞춤으로 신호를 정해 두었습니다. 친구들 간의 우정을 의미하는 “사랑하다, 좋아하다”[φιλέω]라는 말에서 입맞춤[φίλημα]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가룟 유다는 겟세마네에 도착하자마자 예수님께 다가와서 “랍비여!” 하면서 입맞춤을 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단어는 “진하게 입 맞추다, 열렬히 입 맞추다”[καταφιλέω]라는 뜻입니다.

처음교회에서 입맞춤은 자연스레 행하여진 인사법이었습니다. 로마서 16:16에서 바울은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십시오.”라고 권면합니다. 입맞춤은 살롬, 즉 평안과 평화를 원하는 인사입니다. 입을 맞춘다는 것은 상대방의 평안을 빌어주기도 하지만, ‘한 우물에서는 어찌 쓴맛과 단맛을 내겠느냐’ 즉 ‘사람이 어찌 한 입으로 두말을 하겠느냐’라는 약속을 지닌 신성한 예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입 맞춤은 에로스적인 입맞춤이 아니라, 신뢰와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의 입맞춤은 신뢰와 존경의 인사가 아니라 배신과 팔아넘김의 신호가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입맞춤은 그 뒤에 숨긴 배신의 음모 때문에 예수님의 발등을 찍은 도끼가 되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에 대해서 하느님의 신정론과 인간의 사악함 사이에서 아직도 논란이 많지만,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른 행동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행동과 말 속에 좋지 않은 의도가 숨어 있다면, 그 의도를 스스로 알든 모르든 그것은 가룟 유다의 입맞춤과 유사하거나 같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누군가를 해코지하려는 마음이 없는 진심이 담긴 말과 행동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돈독하게 할 것입니다. 거짓이 없는 순박하고 진실한 말과 행동이 각자의 삶에서 큰 화두가 되기를 빕니다. 올 한 해 동안 나 자신과 사람들에게 얼마나 진실하였나 하고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위기의 상황 - 각자위심

가룟 유다가 찾아옴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본거지가 드러났고, 가룟 유다의 입맞춤으로 그들의 지도자 예수님이 누구인지 로마 군인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미리 짜둔 유다의 신호로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잡아서 실패 없이 끌고 갈 것입니다. 본거지를 습격당하고 지도자가 끌려가는 상황, 저항의 몸부림을 했지만 그것마저 소용이 없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공동체가 위기에 직면한 때이자, 하느님 나라를 향한 예수 운동에 암운이 드리우는 순간입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살고 있는 그 순간이 항상 위기라고 생각하지만, 올해는 안타깝고 심각한 위기를 느끼게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뚜렷한 지도자가 없는 정치적 상황은 물론이고,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건들, 이 나라의 미래를 암담하게 만드는 정책들, 하느님과 장로라는 이름을 팔아서 행하는 거짓들, 권력과 돈의 노예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사람들의 면면이 위기를 한층 고조시킵니다.

지도자들 잃은 공동체, 예수님이 잡혀간 제자들은 절망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습니다. “그들(제자들)은 모두 그(예수)를 버리고 도망쳤다.”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의 모습은 바로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최제우는 각자위심(各自爲心; 저마다 자기만을 위하는 마음)이라는 말로 위기의 시대를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였던 제자들이 모두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이 죽임 당하는 자리까지 함께 하겠다고 맹세하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다름이 아니라 틀림을 강조한다면, 그것이 각자위심이고 위기입니다.

어떤 공동체든지 위기와 갈등의 순간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 원인은 내부에서 찾을 수도 있고 외부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그 원인을 찾아가면 나만이 내 가족만이 내 집단만이 편하고 잘 살겠다는 웰빙하겠다는 마음과 행동이 공동체와 세상을 위기로 몰아가는 근원입니다. 나만이 옳고 나만이 합리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흩어진 마음과 행동이 위기를 만듭니다. 각자위심을 벗어나는 것을 동귀일체(同歸一體)라고 합니다.

<동귀일체는 사람과 하느님이 하나임을 깨닫고 참된 하나의 진리로 돌아가 모든 사람이 하나로 귀일함을 뜻합니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되고 나와 겨레와 인류가 하나가 됨을 말하며 나아가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가 되고 하나의 진리로 돌아감을 말합니다. 다양한 가치관을 조화시켜 일치점을 찾고 모든 모순과 갈등을 지양하는 통일의 새로운 창조이고, 투쟁과 분열의 역사에서 벗어나 평화와 합일의 길로 나아감을 말합니다. 各自爲心(각자위심)에서 벗어나 吾心卽汝心(오심즉여심)이 되어 모든 사람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한 몸이 됨을 말합니다.>

탈출과 부활의 희망

그러나 마가복음의 본문에서 우리는 이 위기의 상황을 극복하는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맨몸에 삼베옷을 입고, 그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자, 그는 삼베옷을 버리고, 맨몸으로 도망쳤다.”(51-52절) 뜬금없이 삽입된 이 본문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 구절은 마가복음에만 나옵니다. 왜 갑자기 청년이 등장했고, 그 청년의 정체가 누구인지 아직도 모호합니다. 또한 그는 왜 맨몸에 삼베옷을 걸쳤다가 맨몸으로 도망쳤을까요?

암브로스, 크리소스톰, 베데 등의 교부들은 이 청년을 사도 요한이라고 해석하였습니다. 에피파네스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라고 주장하고, 데오필락트는 유월절 만찬 장소를 제공한 사람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청년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누구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답이 없이 논쟁만 계속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단지 청년과 삼베옷이라는 단어는 무덤에 묻히는 예수님(15:46)과 빈 무덤 이야기(16:5)에도 나옵니다. 삼베옷[σινδών]은 고운 삼베옷, 세마포(細麻布)입니다. 예수님의 주검이 세마포에 싸여 무덤에 묻히고, 부활절 아침에 무덤을 찾은 여인들은 무덤 속에서 청년만을 봅니다. 예수님을 처형하기 위해서 체포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청년 이야기는 예수님의 부활 이갸기와 연결됩니다.

또한 그 청년은 산헤드린이 보낸 무리들이 잡으려 하자 삼베옷을 벗어버리고 제자들처럼 도망합니다. 여기에서 “도망하다”[φεύγω]는 “피하다, 탈출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제자들과 청년이 도망하는 것을 단지 내빼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과 탈출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사뭇 다른 분위기입니다. 한 단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 분위기는 절망적일 수도 있고 희망적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제자들과 청년의 도망을 단순히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버린 것으로 해석하고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비참했을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제자들이 로마 군인들의 검거망을 무사히 빠져나와 탈출했다는 사실은 제자들의 공동체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희망을 암시합니다. 또한 청년이 삼베옷(세마포)을 벗어버리고 탈출한 것은 앞으로 있게 될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예수님이 죽음과 죽임의 세력으로부터 탈출과 해방의 상징인 부활을 예견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서 희망을 봅니다. 처형을 위한 체포 이야기 속에 부활과 탈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절망과 희망은 서로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만드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입니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사건들 속에서 우리는 절망을 보거나 희망을 봅니다. 그 절망하거나 희망하는 것은 나의 몫입니다. 절망과 희망은 언제나 같이 있습니다. 그래서 희망을 절망의 다른 이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체포로 절망하여 스스로 포기하거나 부활의 희망을 예견하고 바라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버리고 도망한 일에 절망할 수도 있고, 로마 군인들의 검거망을 뚫고 탈출한 것에 희망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될 때에 제자들이 한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절망과 희망을 느끼듯이 우리는 말 한마디에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말 한마디에 희망을 품기도 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되어 힘과 용기를 나누는 공동체가 되기를 빕니다.

기다림, 희망, 예수님의 꿈

대림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닷새 후에 성탄절을 맞이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은 희망을 품는 일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함께 희망을 품고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은 예수님이 못다 이룬 꿈을 우리가 이루겠다는 결단을 요구합니다. 기다림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것입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절기에서 중요한 것은 오늘이고 내일입니다. 절기를 지키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는 현재이고 미래입니다. 이미 오신 예수님의 오심을 반복해서 기다리는 것은 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예수님의 꿈을 우리의 꿈으로 삼아 함께 이루는 일입니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생겨나는 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도 희망은 없습니다. 믿음은 하느님이 존재함을 가르치며 사랑은 하느님이 선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지만, 희망은 하느님의 섭리를 보여줍니다. 아무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섭리를 보는 사람은 자기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고 희망을 선택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이병일 목사(강남향린교회)

이병일 위원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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