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 “희망”(Hoffung)이라는 단어가 그립다. “어떤” 희망이 아니라, 희망 “자체”가 그리운 때이다. 그래서 블로흐(Ernst Bloch)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세계사에서 가장 참혹한 시기를 살아왔던 블로흐였기에 다른 누구보다 희망을 버릴만도 했을텐데,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경멸로 가득찰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10년이라는 장고의 연구 세월을 들여 완성한 거대한 에세이 『희망의 원리』(Das Prinzip Hoffnung) 마지막 5권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책을 마무리 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추구하려는 바를 <≪인간의 자연화≫를 풍요롭게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표현하였다. <자연> 내지는 <인간>의 모든 풍요로움은 유일하게 경향성과 잠재성 속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이 속에는 세계의 <모든 것을 눈앞에 대하는vis-à-vis de tout> 문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으로 볼 때 유효한 것은 다음과 같다. 즉 인간은 어디에 살든 간에 아직도 역사 이전에 살고 있다. 그렇다, 모든 것들은 어떤 진정한 세상에 대한 창조 이전에 위치한다. <진정한 창세기는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의 출발점에 있지 않고, 오히려 마지막에 있다.> 만약 사회와 현존재가 급진적으로 변하면, 다시 말해서 그 뿌리를 파악하게 된다면, 진정한 세상의 창조는 비로소 서서히 진척되기 시작한다. 역사의 뿌리는 바로 인간이다. 그는 노동하고, 창조하며, 주어진 환경을 변화시키고 이를 추월하지 않는가? 만약 인간이 자신을 파악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속에서 소회 혹은 외화(外化) 없는 자기 자신을 증명한다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의 유년기에 갈구했으며, 누구도 아직 실현하지 못한 무엇이 출현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고향이다.”

- Ernst Bloch, 『희망의 원리 5』, 박설호 옮김 (서울: 열린책들, 2005), 3000-3001.

다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지만, 그가 희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오늘부터 또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살아가야 할 것 같다. 그토록 우려 했던 인물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수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혀를 단 예언자’로 불렸던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

희망이 동반했던 환멸이 우리를 짓누르는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희망해야 한다. 왜 희망해야 할까? 블로흐는 대답은 명확하다. 블로흐는 그의 책을 이렇게 시작했다. 

“희망은 언제나 환멸을 동반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환멸 속에서 다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 희망의 가장 친숙한 형태가 낮꿈(백일몽)이다. 그러나 이 낮꿈은 그저 낮꿈일 뿐이다. 낮꿈을 꾸는 자가 일어서서 그 꿈의 실천을 통해 구체적으로 창조해 낼 때 그 행위 속에서 희망은 존재한다.”

희망하기를 멈춘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임을 이야기한다. 가장 희망하기 힘든 시기에 희망하기를 멈추지 않는 가장 힘든 일을 해야 한다. 인간이기를 위해서 말이다. 

“tamen”(그럼에도 불구하고)

▲ 10여년의 연구를 거쳐 탄생한 에른스트 블로의 『희망의 원리』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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