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는 뱀의 말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남자와 여자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벌을 읽었습니다. 이들에게 내려진 벌은, 남자에게는 땀을 흘려 땅을 일구어야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먹거리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자에게는 해산이 고통이 더 커져서 새로운 생명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는 더 이상 동등하고 돕는 관계가 아니라 여자는 남자에게 성적 교제를 요구하지만 남자의 주도권 아래 놓이게 되는 관계로 비틀어지게 됩니다. 여기에 앞서 언급된 대로 남자와 여자의 잘못으로 인해 자연 또한 일그러진 모습으로 공동운명 아래 놓이게 됩니다. 풍요롭고 아름다웠던 자연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며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적대적 관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에 결국 남자와 여자는 뱀에게 먹히는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이 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이러한 엄혹한 말씀을 들었을 때, 그들이 취할 수 있었던 행동이 무엇일까 하고 한 번 상상해 봅니다.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대로 바닥에 앉아 그들의 운명을 저주하며 대성통곡을 할 수도 있었을 테고, 손이 발이 되도록 하나님께 싹싹 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행동도 전혀 하지 않은 듯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서는 여기에 별 다른 관심이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아무 기록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대신 조금은 의미심장해 보이는 남자의 행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자가 처음 에덴동산에 살기 되었을 때부터 해 왔던 일 하나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남자) 아담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하였다.”

이 문장의 의미는 조금 뒤로 미뤄두고 여자의 이름이 된 “하와”(hawwah, 하봐)에 얽힌 재미있는 해석을 소개해 봅니다. 이 이름의 발음이 아람어에서 “뱀”을 뜻하는 단어, “hiwya”와 거의 유사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기 유대 주석가들이나 20세기 초의 성서학자들은 남자가 여자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던 것이 이 의미였다고 합니다. 즉 남자는 자신을 속인 여자를 “뱀”으로 부르며 아내를 꾸짖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뱀이 여자를 속여 하나님께서 금지하셨던 열매를 먹게 했듯이, 여자가 자기를 속여 열매를 맺게 한 것을 두고두고 가슴에 묻은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자신의 아내의 이름을 이렇게 부르며 여자도 자신의 잘못을 잊지 않도록 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얼핏 보면 얼토당토 하지 않은 해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유대교나 20세기 초의 성서주석가들은 이렇게 해석함으로 남자의 아픔을 이해해 보려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약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여자를 속인 “뱀”처럼 생각했다면, “그녀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는 구절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흙으로 돌아가리라”는 형벌처럼 내리신 말씀을 기록하고도 성서가 굳이 또 이런 구절을 남겨두었다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그렇게 미워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오히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생명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런 다음에 이런 말씀이 등장합니다. “주 하나님이 가죽옷을 만들어서, (남자)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 주셨다.” 주석가들은 흔히들 이 구절을 하나님의 금지명령을 어긴 남자와 여자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종교개혁 당시 한 신학자는 오히려 이 구절을 이렇게 주석합니다. “이 문맥에서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에게 옷을 지어 입히신 것은, 흔히 이야기 듣던 대로, 은총의 행동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기억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주석이나 종교개혁 당시 신학자의 주석 모두 뭐라 할 수 없는 해석들입니다. 그럼에도 제 개인적으로는 종교개혁 당시 신학자의 주석에 더 마음이 갑니다. 만약 옷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의 행동이 은총이라고 한다면 그 뒤에 뭐라고 한 구절 더 기록될 만도 한데 너무 무미건조하게 끝나버리고 다음 구절을 휭 하니 넘어가버립니다. 문맥으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도록 말입니다.

▲ 가죽옷을 입은 남자와 여자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자마자 남자와 여자는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고 하며 그들의 첫 행동을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이 문제될 수밖에 없는 것은 창세기 2:25에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먹기 전까지는 벌거벗었지만 아무 느낌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열매를 먹자마자 부끄러워 나뭇잎으로 자신들을 가리는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남자와 여자는 옷을 입었다는 사실 자체가 자신들의 잘못을 기억나게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왜 옷을 입고 있을까? 그래 열매를 먹기 전까지는 이 옷이 필요 없었는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나서부터 옷을 입게 되었구나! 내가 죄를 지은 것이로구나!”

무화과 나뭇잎에서 가죽옷으로 바뀐 것뿐이지 그들이 다시 벗은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그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도 않았고 여전히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그들이 입은 옷을 보면서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이 무엇이었나를 계속해서 기억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단 구절이었지만 남자가 취한 행동과 하나님께서 하신 행동은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하나님의 무거운 말씀을 듣고 절망으로 떨어져 낙심할 만도 한데, 남자는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려는 희망을 내보입니다. 하지만 남자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짊어지고 가야할 그들의 잘못을 기억하도록 하십니다.

성서는 이 두 음을 오가는 변주곡이 아닐까 합니다. 절망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희망‘음’과 그들의 죄를 기억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준엄한 꾸짖‘음’ 사이의 변주곡 말입니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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